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늠름한 기마무사
가야가 살아온다 <20> 제4부 가야의 힘과 미 ③ 철갑옷의 비밀
국제신문
국립김해박물관에 복원 전시된 가야의 무사. 이같은 철갑옷은 지금까지 가야지역에서 70여벌이 출토됐다
늠름한 기마무사
철기(鐵騎), 즉 철갑을 입은 중무장한 기병이라면 얼른 고구려군을 떠올리기 쉽지만, 가야에도 이런 철기가 있었다. 가야지역 고분에서 출토되는 철갑옷과 마갑, 무구, 마구 등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부산 동래구 복천박물관 제2전시실에는 가야의 철기병이 복원 전시돼 있다. 머리에는 몽고발형주라 불리는 길쭉한 투구를 쓰고, 목가리개(경갑)를 둘렀으며 몸에는 철갑옷을 껴입은 1천6백여년전 기마 무사다. 말 역시 머리에 투구(마면주)를 쓰고 몸에 마갑을 빈틈없이 둘렀다. 말안장과 재갈, 등자 같은 마구도 갖췄다.
왠만한 창이나 화살 공격에도 끄떡없을 성 싶다.
여기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철갑옷이다. 제작기법이 정교해 가야 철 기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가야지역에서 출토된 철갑옷은 모두 70여벌. 이는 한반도 철갑옷의 90%에 해당한다.
두께 1㎜의 하이테크
지난해 6월 국립김해박물관은 ‘한국고대의 갑옷과 투구전’을 열면서 국내 처음으로 철갑옷을 복제했다.
복제를 맡았던 경주민속공예촌 내 ‘삼선방’의 김진배(41) 대표는 “철판을 오려서 단조를 하고 접합 부위에 리베팅을 해 철갑옷과 찰갑(비늘갑옷) 등을 복제했다”며 “두드려가며 곡면을 잡아내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갑옷 복제에는 약 한달이 걸렸다고 한다.
이때 모델이 된 것이 김해 퇴래리 출토 판갑옷. 가슴 부위에 고사리 문양을 덧대어 장식성을 높인 가야의 가장 대표적인 종장판정결갑옷이다. 높이는 64.8㎝이며 무게는 대략 10㎏ 정도다. 두께는 1㎜를 넘지 않는다.
갑옷을 집중연구해온 부산 복천박물관 송계현 관장의 설명. “두께가 1㎜를 넘으면 무거워져 실용성이 줄어든다. 너무 얇은 것도 문제는 있으나 30~40m 거리에서 화살을 쏠 경우 판갑과 수직으로만 맞지 않으면 튕겨버린다. 설령 수직으로 맞는다 해도 위력은 현저히 약화될 것이다. 여러모로 볼때 판갑옷은 방어에 유용했을 것이다.”
퇴래리 판갑옷은 모두 27개의 철판조각으로 되어 있고 연결했을 때 곡면처리가 되도록 입체적으로 재단되어 있다. 갑옷에는 또 8㎝ 내외의 간격으로 구멍이 뚫려 있고 구멍마다 작은 못이 고정돼 있다. 정결(釘結)이라 불리는 이 기법은 요즘의 리베팅과 같다.
이렇게 사용되는 못은 80개가 넘는다. 5세기 이후의 판갑에 사용된 못은 매우 작아 주물을 하지 않으면 만들기 힘든 형태다.
재단이 입체적으로 된 것도 눈길을 끈다. 전문가들은 나무 본을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 인체에 맞는 곡면을 만들기 위한 것인데, 이 부분은 정교한 기술이 요구된다. 연결된 철판을 불에 달궈 반복해서 두드리는 단조(鍛造)도 빼놓을 수 없는 공정. 이때 사용되는 것이 단야구(鍛冶具)다. 가야의 무덤에서 나온 쇠집게나 망치는 오늘날 대장간에서 보는 도구들과 흡사하다.
이들 단야구는 가열된 철판을 일일이 재단해 잘라내거나 갖다붙이는데 쓴다.
판갑 제작은 이처럼 복합적이고 입체적 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단조기술의 발달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갑옷의 형태가 마무리되면 개폐를 용이하게 하는 경첩으로 앞판과 뒤판을 연결한다. 입체 디자인과 정결, 단조기술이 결합돼 비로소 하나의 철갑옷이 완성되며 이것이 가야 철 기술의 핵심이다.
철갑옷에 스민 꿈
철갑옷이 무덤에서 완제품으로 출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녹슨 쇳덩어리 형태로 철투구나 마구 등이 함께 발견된다. 이 철갑옷들은 작업실로 옮겨져 화학처리를 통해 약화된 철조각을 단단하게 한 다음, 마치 퍼즐을 맞추듯 낱낱의 쇳조각을 끼워 맞춘다. 갑옷 한벌을 보존처리 하는데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2년까지 걸린다.
철갑옷이 본격 등장하는 시기는 4세기초로 울산 중산리 등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 나왔고 부산 복천동, 경남의 김해 대성동·양동, 함안, 합천, 경북 고령 등지의 가야고분에서도 다량 출토됐다.
판갑옷은 제작방법 및 철판의 형태에 따라 사각판(方形板), 긴사각판(長方形板), 삼각판(三角板) 등으로 구분된다. 가야지역의 갑옷은 세로로 긴 철판을 이어 만든 종장(縱長)판갑옷이 많다.
비교적 큰 철판을 이용하여 만든 판갑옷과 달리, 물고기 비늘모양의 철판을 가죽끈으로 엮어 만든 찰갑(札甲)도 있다. 4세기초 고구려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부산 복천동, 경북의 경산 조영동 등 삼국시대 고분에서도 출토되고 있다.
4세기대의 판갑옷은 보병용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당시의 전술이 보병전임을 시사한다. 5세기대가 되면 비늘갑옷의 출토량이 늘어나고 말투구, 재갈, 안장 등의 마구가 함께 부장되는 경우가 많아 이 시기에 중무장한 기마전사가 가야지역에 등장했음을 암시한다.
송계현 관장은 “가야의 철갑옷은 4세기대부터 출토되어 5세기대에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다”며 “철갑옷이 무덤에 다량 부장된 것은 권력 및 권위를 상징하는 풍습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고 지적했다.
가야의 철갑옷은 자체 문자기록을 갖지 못해 잊혀져온 가야사를 조각조각 기억하고 있는 ‘철의 타임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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