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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가 살아온다 <23> 제4부 가야의 힘과 미 ⑥ 토기가마의 비밀
국제신문  박창희기자 

경남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윗장명마을에 있는 가야시대 토기 폐기장 유적. 토기파편이 시루떡처럼 쌓여 언덕을 이루고 있다.

가야시대 도요촌
 
가야시대에도 도요촌(陶窯村)이 있었을까. 있었다면 어디일까.

경남 함안군 가야읍 묘사리 장명마을은 학자들이 가야시대 도요촌이 자리한 곳으로 주목하는 지역이다. 상당한 근거가 있다. 장명마을에는 토기가마터와 폐기장 유적이 비교적 생생하게 남아 있고, 입지 또한 도요촌으로 손색이 없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부서진 노(爐) 조각과 토기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어 ‘노천 박물관’이 따로 없다는 느낌도 든다.

남해고속도로 함안IC에서 법수면 쪽으로 난 지방도를 따라 2㎞ 가량 가다 좌회전, 농로를 따라 들어가면 장명마을이 나온다. 마을 앞쪽은 ‘한바다’라 불리는 함안평야와 맞닿아 있고 주변은 완만한 구릉이 형성돼 있다.

‘아랫장명 도요지’라 불리고 있는 유적지는 지난 97년 여름, 아라가야향토사연구회(회장 조희영)의 유적 지표조사 과정에서 존재가 드러나 지난 99년말 함안군의 의뢰로 경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함안지역 일원에 퍼진 각종 토기의 제작거점이 바로 장명마을이었던 것. 발굴팀은 2기의 토기가마와 유물을 조사한 결과 이 일대에 대단위 전문 토기생산 집단이 존재한 것으로 추정했다. 토기가마는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 기반암을 굴착해 만든 반지하식 등요(登窯·굴가마)로, 대량생산체제가 갖춰져 있었음을 암시했다.

소성(燒成)상태가 불량하긴 했으나 유물도 다수 수습됐다. 송이버섯 형태의 토기제작도구(製陶具)인 내박자(內拍子)를 비롯해 단경호, 통형고배, 노형기대, 압수부배, 시루 등 다양한 종류의 토기(편)가 확인됐다.

경남문화재연구원 김시환 연구원은 “대지조성, 경작 등으로 유적이 부분적으로 파괴돼 완전한 조사가 되진 않았으나, 아라가야 성장기인 4세기대 함안지역의 토기제작 및 공급체계를 엿보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묘사리 일원은 고대 도요촌의 입지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신음천(옛 대문천)-남강-낙동강으로 연결되는 지리적 이점에다, 남강 연변 및 배후습지에서 양질의 태토를 구할 수 있고, 연료수급에 용이한 구릉성 야산을 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 위쪽 이른바 ‘윗장명’이라 불리는 김기만(65)씨 가옥 뒤에는 토기폐기장으로 추정되는 유적이 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법수면에는 ‘우거도요지’가, 군북면에는 ‘유현도요지’가 각각 자리해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세곳의 자연환경이 비슷해 상호 연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국립김해박물관은 지난달 17일부터 법수면 우거도요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다.

생산과 유통

‘장명 도요촌’에서 제작된 토기는 어디까지 퍼져 나갔을까. 이는 아라가야 성장기의 영역 및 교류범위를 파악하는 문제로 학계의 뜨거운 관심사이다.

경남문화재연구원은 아랫장명 도요지의 조업연대를 4세기 2/4분기~4/4분기로 추정하고, “함안군의 외곽에 해당하는 법수면 윤외리고분군, 황사리고분군, 의령군 예둔리고분군 등에서 출토되는 토기가 아랫장명에서 나온 유물과 제작기법, 색조, 기형 등이 거의 동일하다”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아랫장명에서 일괄 제작되어 인접지역에 공급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백승옥 함안군 학예연구사는 “장명마을의 도요지가 보여주듯, 함안지역은 가야사의 비밀을 풀어줄 유적이 많아 향후 한국 고고학의 메카가 될 수 있는 곳”이라며 “주요 유적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계획을 수립해 학술적 규명을 한뒤 역사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도요지들

가야지역 도요지가 함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남 창녕군 여초리 칠봉산 남쪽 사면에 위치한 ‘여초리 가마터’는 국내 최초로 조사된 4세기대 가마터로, 가야·신라토기의 초기 생산체제와 제작기술 해명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지난 93~94년 국립진주박물관에 의해 2기의 토기가마가 발굴조사됨으로써 그 구조가 밝혀졌다. 가마터는 낮고 완만한 구릉의 사면에 자연경사를 이용하여 설치한 타원형의 터널식 등요였다. 여초리 B유적 토기가마는 길이가 12.2m, 최대폭이 1.9m, 바닥 경사는 약 11도로 조사됐다. 형태상으로 가늘고 긴 특징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나온 유물들은 자연유가 흐를 만큼 매우 단단하게 소성된 회청색 경질토기가 주류지만, 회색 또는 적갈색 연질토기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이는 당시 소성조건을 달리하여 도질토기와 적갈색 연질토기를 같은 구조의 가마에서 구웠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해시 능동유적에서도 2기의 토기가마가 조사됐다. 이곳의 가마는 6세기대로 추정됐으며, 길이 5.3m, 폭 1.5m로 비교적 소규모였다. 규모로 볼때 장유지역의 소집단이 자체 필요에 의해 생활용 토기를 제작한 지역단위 가마터로 짐작된다. 

능동유적에서는 전형적인 김해지방 토기인 외절구연고배와 서부경남지역의 고배, 신라식 고배 등이 동시에 출토돼 가야토기와 신라토기의 분화·융합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야의 옛 땅에는 아직 많은 토기와 토기가마가 잠자고 있다. 이를 깨워 말을 시킬때 가야사는 비로소 본 모습을 햇살아래 드러낼 수 있다.


김해가야시대 도요촌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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