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5257
드라마라 과장? 최영은 정말 잘 싸웠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SBS 드라마 <신의>, 다섯 번째 이야기
12.10.03 19:00 l 최종 업데이트 12.10.03 19:00 l 김종성(qqqkim2000)
▲ 드라마 <신의>의 최영(이민호 분). ⓒ SBS
드라마 <신의>의 최영은 가공할 만한 전투력을 뽐내고 있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공상 같은 무협지에서나 볼 수 있는 무술 실력을 최영은 보여주고 있다.
그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시청자들은 "저건 드라마니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최영의 경우만큼은 사정이 다르다. 물론 드라마 속의 전투 장면은 순전히 허구에 불과하지만, 실제의 최영은 드라마 못지않은 전투력으로 당대 사람들의 격찬을 받았다.
1355년, 공민왕이 속으로는 몽골제국을 증오하면서도 겉으로는 몽골에 협조할 때였다. 중국 한족 농민들의 반란에 시달리던 몽골 정부가 고려에 파병을 요청했다. 반란군 진압에 협조해달라는 것이었다.
이때 마흔 살 된 대호군(대장군)인 최영은 반란군인 장사성 군대와 중국 남부에서 전투를 벌였다. 수십 차례의 전투 끝에 최영은 전함 8천 척 규모의 반란군을 거의 다 진압했다. 장사성 군대에 큰 타격을 입힌 것이다.
장사성 군대와의 전투가 막바지였을 때, 최영은 하마터면 객지에서 전사할 뻔했다. <고려사> '최영 열전'에서는 "최영이 몇 번이나 창에 맞았다"고 말했다. 아무리 군인이라도 마흔 살 된 사람이 짧은 시간 내에 여러 번이나 창에 찔린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전투를 지휘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최영은 연거푸 창에 찔리면서도 투혼을 잃지 않았다. 최영 열전에서는 그가 계속 용감히 싸워 적군을 거의 다 죽이거나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처럼 공중에 붕붕 날아다닐 정도는 아니지만, 그 이상의 초인적 정신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런 정신력이 가미됐기에 최영의 전투력은 한층 더 빛이 났다.
젊은 적군을 어린애 다루듯 쓰러뜨려
▲ 최영 장군의 무덤인 최영장군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산에 있다. ⓒ 김종성
1376년, 최영의 주군인 공민왕이 사망하고 우왕이 등장한 지 2년이 흐른 때였다. 최영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환갑이었다. 이때 서해안에 일본 해적인 왜구가 출현해서 고려군을 무너뜨리자, 최영이 출정을 자청하고 나섰다.
열두 살 밖에 안 된 우왕은 출정을 만류했다. 우왕은 나이는 어렸지만 최영을 의지했기 때문에, 최영이 혹시나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염려하는 마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영은 끝내 출정을 강행했다. 그는 지금의 충남 부여에 해당하는 양광도 홍산에 진을 치고 왜구와의 한판 승부를 준비했다.
그런데 이곳 지형이 고려 장교들에게 공포심을 주었다. 최영 열전에 따르면, 이곳에는 정면과 좌우 양쪽으로 세 개의 절벽이 있고 그 사이로 길 하나가 뚫려 있었다. 삼면의 절벽 위에서 왜구가 매복을 하고 있을 수도 있었기에 고려군이 겁을 먹은 모양이다.
최영 열전에서는 고려 장교들이 절벽 사이로 진격하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왜구가 자신들을 매복지로 유인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 최영이 판단한 것은 '솔선수범을 보여주자'였다. 그는 고려군의 맨 앞으로 나가서 정면 돌파를 감행했다. 최영 열전에서는 최영의 기세를 '돌진'으로 표현했다. 환갑이 된 장군이 이렇게 앞장을 서니, 다른 장병들도 어쩔 수 없이 달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무지막지하게 달려오는 최영의 기세에 눌린 왜구 병사들은 마치 바람에 풀잎이 쓰러지듯이 쓰러져 나갔다. 사극을 보면, 연로한 장군이 젊은 적군들을 어린애 다루듯이 쓰러뜨리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런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이것 좀 과장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고려사> 최영 열전이 최영의 라이벌인 이성계 쪽의 작품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성계 쪽에서 최영의 활약상을 축소시키면 시켰지 과장했을 리는 없다. 그러므로 왜구 병사들이 정말로 바람에 풀잎 쓰러지듯이 쓰러졌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입술에 화살 맞고도 역공... 최영의 초인적인 정신력
▲ 최영 장군의 상상도. 최영장군묘 입구에 있다. ⓒ 김종성
노장 최영의 칼날에 왜구가 우수수 쓰러지던 그 순간, 바로 옆의 숲속에서 최영을 응시하던 적병이 하나 있었다. 그는 활을 들어 최영의 안면을 겨냥했고, 화살은 정확히 최영의 입술에 꽂혔다. 순간, 최영의 안면에서는 유혈이 낭자했다.
왜구 병사는 적장을 맞추었다는 생각에 잠시 들떴던 모양이다. 최영을 맞힌 뒤에 그는 잠깐 방심했다. 그렇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화살을 맞은 최영이 표정을 태연히 한 채 숲속의 자신을 발견할 때까지도 그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쏜 적병을 발견한 최영은 활을 들었고, 잠시 뒤 적병은 고꾸라졌다. 적병은 최영이 자신에게 반격을 가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최영을 지켜보다가 역공을 당한 것이다.
적병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최영은 그제야 입술에 꽂힌 화살을 뽑아냈다. 그런 뒤에 더욱 더 전투를 독려해서 왜구의 대부분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완벽한 대승이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홍산대첩이다. 고려군의 사기 저하로 하마터면 패할 뻔했던 전투가, 최영의 초인적인 정신력 덕분에 고려군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이런 사례들에서 나타나듯이, 최영은 초인적인 정신력이 가미된 무술 실력에 힘입어 고려 말의 각종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막판에 이성계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그는 무패의 전적을 자랑하면서, 이성계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었다. 마흔 살 때와 예순한 살 때도 그처럼 용감하게 싸웠다면, 젊었을 때는 훨씬 더 용감하게 싸웠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의 최영은 드라마에서처럼 공중을 날아다닐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탁월한 정신력으로 고려 말의 전투 현장을 장식한 무신(武神)이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얼마 전 종영된 MBC 드라마 <무신>이란 제목에 걸맞은 진짜 주인공은 바로 최영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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