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w4fLY7 (문서파일)
* "古代 東北亞 沿岸航路와 榮山江․洛東江流域 - 姜鳳龍" 중 "2.낙랑․대방군의 해상교역 주도와 영산강․낙동강유역 - 2) 영산강유역의 ‘新彌諸國’과 낙동강유역의 ‘加耶諸國’" 내용에서 가야 부분만 가져왔습니다.
낙동강유역의 가야제국(加耶諸國)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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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영산강유역 세력집단을 ‘신미’라 통칭할 수 있다면, 낙동강유역 세력집단은 무어라 통칭할 수 있을까? 낙동강유역 세력집단을 지칭하는 명칭은 한․중․일의 사서에 다양하게 나오고 있어 오히려 주저되는 바이지만, 일반적으로 ‘가야’라 통칭함이 무난할 것 같다. 그렇다면 영산강유역에 ‘신미제국’이 있었다면 낙동강유역에는 ‘가야제국’이 있었던 셈이 된다.
가야제국의 대표적 유력 소국으로는 구야한국을 들 수 있다. 낙동강 하구 서안의 김해에서 일어난 구야한국은, 금관국 혹은 가락국으로도 칭해지는 가야제국의 한 유력 소국으로서, 바닷길과 강길이 교차하고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연결하는 요지에 위치하고 있어, 가야제국을 선도하는 기능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인정된다. 실제로 앞에서 살핀 『삼국지』 위서 동이전 왜인조의 기사에서 당시 연안항로 상의 주요 거점 포구로 구야한국을 특별히 거명한 것은, 낙랑․대방군이 김해의 구야한국에게 가야제국의 대표성을 제한적으로나마 인정하였음을 의미한다. 김해의 회현리나 양동리 일대에서 중국 고대 화폐인 화천이나 대표적 중국 교역품의 하나인 한경(漢鏡) 등이 비교적 풍부하게 출토되고 있는 것은 이를 반영한다. 또한 낙동강유역 세력집단을 총칭하는 ‘가야’라는 명칭이 ‘구야’에서 연원했을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는 것 역시 구야한국의 위상이 높았음을 대변해준다.
그렇지만 구야한국의 가야제국에 대한 영도권은 그다지 강력하지 못했다고 보는 견해 역시 유력하다. 즉 가야제국은 각자 개별적인 gateway community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크며, 가야제국 전체를 통괄하는 상위의 세력으로 설정하기 어려울 것으로 파악한 견해가 그것이다. 이는 일면 타당해 보인다. 3세기까지 주로 낙동강 하구 및 경남해안 일대에 분포하고 있던 ‘가야제국’은 각기 포구도시국가의 성격을 띠면서 저마다 낙랑․대방군이 주도하는 연안항로의 교역체계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앞에서 살펴본 사천 늑도 지역은 물론이고 화천이나 오수전 등 중국 고대화폐와 한경(漢鏡) 등이 출토된 창원이나 고성 지역 역시 김해 못지않은 gateway community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크다 할 것이다.
가야제국의 저명한 산물인 철은 중국의 철(錢)처럼 결제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수출품으로 낙랑․대방군과 한․예․왜에 수출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야와 신라지역은 물론 왜 지역의 고분에서 다량 출토되는 철정(鐵鋌)은 화폐 대용으로 사용된 일종의 ‘철괴(鐵塊)’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런 만큼 가야의 철은 가야제국의 대외교역을 크게 활성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담당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대외교역의 활성화가 진전되어감에 따라 구야한국의 가야제국에 대한 맹주적 지위는 더욱 강화되어 갔을 것으로 보인다.
주석
주석
13) 낙동강유역의 세력집단에 대해서는 한국의 사서(『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동국여지승람』 등) 및 금석문(광개토왕릉비)는 물론 중국 및 일본의 사서(『삼국지』․『송서』․『남사』․『남제서』․『통전』․『양서』․『북사』․『수서』/『일본서기』․『신찬성씨록』 등)에 두루 관련기사가 보이고 있다. 그 명칭도 狗邪, 拘邪, 加耶, 加倻, 伽倻, 加羅, 伽羅, 迦羅, 呵囉, 柯羅, 加良, 伽落, 駕洛 등으로 다양하게 나온다. 이중 ‘가라’ 계통의 명칭은 고령을 지칭하는 경향성을, ‘가야’나 ‘가락’ 계통의 명칭은 김해를 가리키는 경향성을 띠긴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한편 ‘가야’ 계통의 명칭이 신라말․고려초 이후에 김해 뿐 아니라 고령, 더 나아가 낙동강유역의 유력한 소국들이 ‘某가야’라는 식으로 칭하게 되면서 낙동강유역 소국연맹체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정착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어 참고된다.(김태식, 『가야연맹사』, 일조각, 1993, 16~20쪽)
14) 이현혜, 「4세기 가야지역의 교역체계의 변천」『한국고대사연구』1, 1988 ; 『한국 고대의 생산과 교역』, 일조각, 299쪽.
15) 김해 구야한국에 반하여 난을 일으킨 8국의 포구도시국가(‘포상팔국’) 중에서 위치비정이 가능한 사물국, 골포, 고사포국이 각각 사천, 창원, 고성인 것은 우연이 아닐 듯싶다.
16) 『三國志』 魏書 東夷傳 韓(弁辰)條, 「國出鐵 韓濊倭皆從取之 諸市買皆用鐵 如中國用錢 又以供給二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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