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50510173107&section=04


주몽, 영원한 쥬신의 아버지
김운회의 '대쥬신을 찾아서' <12>
기사입력 2005-06-15 오전 9:46:52
 
어느 날 뉴스를 보는데 기자가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우리 민족의 발상지로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 알타이, 끝없이 펼쳐진 숲과 멀리 만년설로 뒤덮인 산봉우리, 마을 입구에는 나무에 헝겊을 매달아 놓은 성황당이 보이고 베틀과 절구, 맷돌 같은 살림살이는 우리에게 너무 낯익은 것들입니다. 특히 신성한 곳을 두고 흰 천을 매달고 제사를 지내는데 영락없는 우리의 서낭당입니다.”
  
이어서 기자가 알타이 전통 가옥으로 들어가자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노인과 어린 손녀가 손님을 맞는데 부모 양쪽으로 수백 명은 돼 보이는 조상들의 이름이 깨알처럼 적혀 있는 족보를 소중하게 꺼내놓습니다. 알타이인들은 부모 양쪽으로 적어도 6대조까지는 알고 있어야 하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닭과 말은 우리말 이름과 발음까지 똑같습니다.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합니다.
  
“아빠와 삼촌,밥과 옷 등 우리말과 같은 단어가 4천여 개나 되어 같은 알타이어족임을 실감나게 합니다. 이곳 알타이에서 말을 타고 출발하면 우리 민족의 고대영토였던 만주 일대까지 불과 2주만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먼 옛날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질러 한반도로 향했을 조상들의 흔적은 지금도 알타이 곳곳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MBC 『뉴스데스크』2004.09.07 : 우리는 한뿌리 - 최창규기자).”
   

[그림 ①] 알타이 산의 풍경들. ⓒ김운회
맞습니다. 알타이 멀지 않지요. 러시아의 노보시비르스크나 몽골의 자르갈란트 쪽으로 가면 갈 수 있는 곳이죠.
  
쥬신의 뿌리였던 유목사회는 씨족 사회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공동조상(한 아버지)에 대한 개념이 매우 뚜렷합니다. 『몽골비사』를 비롯한 수많은 몽골문헌에서 칸(汗 : kahn)의 가계도는 물론 각 부족의 자손들까지 일일이 기록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죠. 족보(族譜)는 원래 유목민의 유산이지 정주민의 유산이 아닙니다. 수많은 유교경전 가운데 몽골에 전해 내려오는 것은 오직 효경(孝經)뿐이라고 합니다[박원길,『몽골의 문화와 자연지리』(민속원 : 1999) 186쪽]. 그 만큼 한족(漢族)과는 공통성이 없는 것이죠.
  
(1) 알타이, 그 영원한 생명의 언덕
  
알타이, 오래 전에 두고 온 우리들 ‘마음의 고향’입니다. 알타이 산맥은 고고학의 보고(寶庫)로 5만년 전 이곳에 현생인류가 시베리아에서는 처음으로 정착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이들이 만든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 등의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고분들과 암각화·미라·동굴 유적 등이 수없이 발굴되고 있다고 합니다.
  
알타이산맥은 대표적인 한민족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곳으로 흔히 ‘아시아의 진주’라고 하지요. 이 산맥은 러시아로부터 몽골·카자흐스탄·중국 등의 국경지대를 따라 대략 2,000km에 걸쳐 남동쪽으로 뻗어있습니다.
  
한민족의 ‘알타이-사얀산맥 기원설’을 주장하고 있는 주채혁 교수에 의하면, 알타이와 그 동쪽의 사얀산맥의 유목 민족이 만주 싱안(興安)령 쪽으로 이동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합니다.
  
2003년 1월, 아메리카 인디언도 알타이-사얀 지역에서 기원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요. 일리아 자하로프 교수(모스크바대학 : 유전학)는 러시아 내 유목민족과 아메리카 인디언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비교해 보고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은 15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2만5천년∼4만 년 전 시베리아 사얀지방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알타이, 동쪽으로는 바이칼호 일대에 살다가 베링해를 건너갔다”고 주장합니다.
  
알타이 지역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키타이 유적인 파지리크 무덤이 있습니다. 이 무덤은 적석목곽분으로 최몽룡 교수(고고학)에 의하면 고신라의 것과 비슷하다고 합니다. 최몽룡 교수는 알타이 지역에 사는 투르크계와 몽골계 원주민은 우리 민족과 사촌관계라고 단언합니다.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뻗어 내려 형성된 대쥬신은 지난 수천년 동안 흉노제국, 북위 및 고구려제국, 몽골제국, 금, 후금(청) 등과 같은 대제국을 건설하여 동아시아 대륙을 통솔하였습니다.
  
여기서 제가 알타이 동부라고 굳이 말하는 이유는 알타이 서부 지역인들은 유럽쪽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즉 유럽 세계를 뒤흔든 훈족이 몽골계인가 투르크계인가 하는 점 말입니다. 시라토리 쿠라키치 등은 언어적 연구를 통해 흉노가 투르크 계열이 아니라 몽골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만, 최근에는 몽골계라기보다는 투르크계라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몽골의 ‘왕후의 산[노인 울라(Noin Ula)]’ 고분군 제25호에서 출토된 흉노의 인물 자수화는 흉노를 투르크 계열로 추정하는 주요한 증거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저는 흉노ㆍ돌궐ㆍ훈족이 초기에는 같은 형제들이겠지만 알타이 서부지역에서는 유럽으로 진출하고 알타이 동부지역은 주로 중국이나 허베이-요동-요서-만주 등으로 진출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알타이산맥의 주변 지역에서 나타난 많은 설화와 신화를 담고 있는 『알타이 이야기』(정신세계사)를 보면 이 지역의 신화나 설화가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많이 닮았는지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소원을 들어주는 댕기’는 우리의 ‘나무꾼과 선녀’와 ‘금와왕 이야기’를 합쳐놓은 것 같고, ‘하늘로 간 별이, 즐드스’(한 여자아이가 새엄마와 언니의 구박을 받다 죽지만 다시 환생한다는 이야기)는 ‘콩쥐팥쥐’와 거의 유사합니다. 이 가운데서 특히 주목할 것은 ‘소원을 들어주는 댕기’로 이 이야기의 줄거리는 탄자왕(개구리왕이란 뜻)이란 노인이 개구리의 생명을 구해주고 보답으로 아내를 얻어 알타이의 후손을 넓게 퍼뜨린다는 내용입니다. 알타이는 ‘황금’을 의미하는 단어로 금와왕 = 황금 개구리왕 = 알타이 개구리왕 = 탄자왕 등으로 추정이 가능합니다.
  
(2) 신화의 세계
  
20세기에 들어 신화에 대한 연구는 다양해져서 ① 제의학(祭儀學 : 제사의식에서 신화를 보는 관점 : Durkheim, Frazer, Malinowski), ② 정신분석학(Nietzsche, Freud, Jung), ③ 상징주의, ④ 비교신화학(Cambell), ⑤ 구조주의(Levi-Strauss, Levi-Bruhl, Dumezil) 등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어느 한쪽으로만 신화를 보는 것은 오히려 신화의 실존적인 의미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죠. 특히 쥬신과 관련된 신화를 이해하려면 말이죠.
  
엘리아데(Eliade, 1907~1986)는 신화는 성(聖)스러움에 대한 탐구이며 신화적 진리는 신성하기 때문에 변하기 쉬운 학문의 진리보다 큰 구속력을 갖는다고 합니다. 신화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보려고 하는 신화는 주로 건국신화이므로 엘리아데의 신성(神聖)에 대한 체험으로서의 신화라는 관점은 중요한 개념입니다.
  
말리노프스키(Malinowski, 1884~1947)는 멜라네시아의 트리브리앙 섬의 원주민 사회에 대해 현지 조사를 통해 신화는 모든 문명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사회 결속과 공동체 의식 유지가 신화의 목적이며 기능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융(Jung, 1875~1961)에 따르면, 신화는 집단적 무의식의 산물로 영적 삶의 원형(archetype)이나 구조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원형이란 개인적 구원이나 형제간의 불화, 암흑세계로의 모험 출발, 우주의 형상 등 집단적 무의식을 이루고 있는 기본구성 요소를 말하지요. 융은 이 같은 원형을 통하여 구성원들은 과거와 미래를 이해하며 주변 세계와의 조화를 이루어 의식의 경직과 같은 정신 질환에 빠지지 않게 보호해 준다고 말합니다.
  
구조주의의 지평을 연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 1908~1991)는 신화를 암호체계로 보았고 신화 연구는 이 암호체계를 푸는 일로 보았습니다. 즉 레비스트로스는 신화 속에서 암호의 단위를 분리하고 그 단위들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는 과정이라고 본 것이죠.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의 사건을 단문(simple sentence)으로 축소하고 이것을 암호의 단위로 ‘신화소(mytheme)’라 불렀지요. 이 신화소라는 개념은 쥬신의 신화 분석에 매우 유용한 것일 뿐만 아니라 쥬신의 일체성을 판정하는 데도 매우 중요합니다.
  
조셉 캠벨(Joseph Cambell, 1904~1991)은 전 세계의 인류는 생물학적으로만 동일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동일하다고 보고 신화 연구를 통해 (서로 다른 양식으로 나타나기는 하지만) 인류 공통의 정신적 구조가 있음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따라서 캠벨은 신화의 기원과 전파과정, 신화들 간의 상호 작용 등을 주요한 과제로 보았습니다.
  
이 같은 신화의 이론들이 쥬신의 건국신화와 신화의 전파과정 및 그 변용과정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될 듯도 합니다. 특히 말리노프스키·융·레비스트로스의 이론들은 쥬신 신화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우리가 ‘쥬신을 찾아서’라는 주제에서 민족의 탄생에 관한 건국신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보기엔 건국신화(建國神話)는 다른 신화와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건국신화는 그 민족의 뿌리와 관련되어 있어 성(聖)스러운 면이 강하고 어떤 신화보다도 원형이 잘 유지되는 특징이 있죠. 이것은 그 민족의 원형을 유지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 1908~1991)가 말하는 암호체계의 속성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점은 이미 제가 단군신화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많이 나타났지요?
  
한국 사학계의 일부에서는 신화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봅니다. 가령 단군조선이라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실체인데 신화나 전설의 수준으로 격하시키려는 식민사학자들의 음모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신화를 통해서 오히려 광범위하게 흩어져 사라져 가고 있는 쥬신의 뿌리와 실체를 찾아가기에 더욱 적합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제 쥬신의 건국신화(建國神話)를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봅시다.
  
현재를 기준으로 본다면 쥬신족들 가운데 가장 알타이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몽골 쥬신(몽골)입니다. 북방 유목민 가운데 오직 몽골만이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한 책을 남겼는데 그것이 유명한 『몽골비사』입니다.
  
칭기즈칸이 몽골 쥬신을 통일하기 전까지 몽골에는 기록된 신화가 없었습니다. 칭기즈칸이 몽골 쥬신을 통일한 후 그 손자인 원나라 세조에 의해 선조들 이야기가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몽골비사』입니다.
  
『몽골비사』에는 알랑-고아의 설화가 있지요. 알랑-고아는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의 딸이라고 합니다. 그 설화의 내용을 보시죠.
  
“밤바다 밝은 금빛을 띤 사람이 겔(몽골인의 천막집)의 에루게(천막 위로 난 창문)의 창문을 통해 빛처럼 들어와 나의 배를 비치자 그 빛이 내 뱃속으로 들어왔다. … 뱃속의 아이는 하늘의 아들이다 … 이 아이가 우리 모두의 칸이 되면 일반 사람들은 이 아이의 내력을 알게 되리라 (『몽골비사』)”
  
어떤가요?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이야기지요. 바로 고구려의 유화부인(柳花夫人 : 버들꽃아씨) 설화의 몽골버전(Mongol version)이죠. 여기서 나오는 알랑-고아(Alan-Go'a)라는 분은 몽골민족의 성녀(聖女)로 알랑 미인(美人)이라는 말입니다. 이 분의 이름 가운데 ‘알랑’이란 우리가 자주 들어온 아랑 설화의 그 아랑이고 ‘고아’는 곱다(beautiful)는 뜻입니다. 그리고 알랑-고아의 12대 손이 바로 칭기즈칸입니다.
  
알랑-고아의 아버지는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이라고 합니다. 이 뜻은 코리족의 선사자(善射者)라는 의미입니다. 이 선사자라는 말을 알기 쉽게 고치면 주몽(朱蒙)이라는 말이죠. 주몽이란 활의 명인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알랑-고아의 아버지는 고주몽(高朱蒙 : 코리족의 명궁)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메르겐에서 신라의 마립간[(麻立干 : 마루(宗) + 칸(汗)]이 나왔다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다시 『몽골비사』를 봅시다.
  
“코릴라르타이-메르겐(고주몽)은 사냥을 즐겨했는데 이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과 따로 떨어져 나와 코릴라르(Khorilar)라는 씨족을 만들었다. 보르칸칼돈 산은 사냥감이 많아서 오랑캐들인 신치-바얀의 땅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의 딸인 알랑-고아는 아리ㄱ-오손(아리수)에서 태어난 것이다.”
  
코릴라르는 몽골학자 가담바에 의하면 코리족에서 갈라져 나온 부족의 명칭이라고 합니다. 이 명칭은 주몽이 코리 부족에서 일단의 지지 세력을 이끌고 남으로 이동하여 나라를 세운 뒤 국명을 코리의 한 나라임을 나타내기 위해 고(高 : 으뜸) 구려(Kohri)라고 부른 것과 거의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그림 ②] 칭기즈칸. ⓒ김운회


신기한 일입니다. 몽골의 건국신화와 부여나 고구려·백제의 건국신화의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 말입니다. 나중에 분석하겠지만 칭기즈칸이 처음으로 받은 칭호가 바로 자오드 코리입니다. (코리족의 ?) 소족장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코리와 무관한 것 같지 않습니다.
  
물론 신화는 여러 민족이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난생신화(卵生神話)나 기아신화(棄兒神話 : 아기를 버림)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알랑-고아가 다섯 아들을 불러 앉힌 후 화살을 하나씩 주면서 분질러 보라고 했다는 신화(화살을 하나씩 주니까 쉽게 분질러지지만 화살 다섯을 단으로 묶어서 아들들로 하여금 차례로 분질러 보게 하니 능히 분지르는 아들이 없었다. 그러자 알랑-고아는 “너희 다섯은 이 화살과 같다. 따로 놀면 따로 꺾일 터이나 하나로 뭉치면 누구도 너희를 꺾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가르쳤다는 이야기)는 다른 신화의 여러 군데에서 발견됩니다. 선비족의 이야기 가운데도 이와 같은 이야기가 있고 그리스 이솝의 이야기(B. C. 6세기)에도 이런 이야기는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왕자 유리가 기둥 밑에 감추어둔 검을 찾아서 아버지 주몽을 찾아가는 내용은 중국의 신화(『搜神記』干將ㆍ莫邪說話)와도 유사하고 그리스 아테네의 건설자인 테세우스(Theseus)의 신화와도 비슷합니다(『플루타크 영웅전』).
  
그러나 몽골의 기원과 관련이 있는 몽골의 이동 설화는 몽골 고유의 것입니다. 이 점을 좀 더 구체적으로 봅시다.
  
『몽골비사』에는 세 개의 몽골 기원설화가 실려 있습니다. 맨 앞에 있는 늑대 설화는 돌궐의 것을 모방한 것이지만 나머지 두 개, 즉 ① 코릴라르타이-메르겐의 이동설화와 ② 알랑 고아의 설화는 몽골 고유의 설화라고 합니다(박원길, 『북방민족의 샤머니즘과 제사습속』1998).
  
그런데 몽골 기원에 관한 몽골만의 신화가 부여ㆍ고구려의 그것과 같다는 것은 부여ㆍ고구려ㆍ몽골의 민족적 연계가 초기에는 대단히 견고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화의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 민족의 집단 무의식이 숨어있는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에 같은 형태의 집단 무의식을 공유한다는 것은 같은 민족인지 아닌지를 판정하는 매우 중요한 코드(code)이기도 합니다.
  
제가 앞으로 사용하게 될 이 코드(code : 암호)라는 말은 민족적 코드(ethnic code)를 줄인 말입니다. 이 말은 레비스트로스의 ‘신화소(神話素 : mytheme - 신화의 사건을 단문으로 축소한 신화에 내재된 암호의 단위)’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오히려 신화소의 주체(主體 : entity)로 저는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호학[Science of Signs : 모든 사회 현상을 기호(sign)로 보고 그 의미를 파악해 내는 작업]에서 말하는 기호(sign)와 신화소(mytheme)의 중간적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림 ③]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 1908~1991). ⓒ김운회


코드·신화소·기호 등의 용어들은 가장 본질적(本質的 : essential)인 용어로 표현되어있지만 그 내면에는 실존적(實存的 ; existential)인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이해가 잘 안 되실 수도 있습니다. 말이 지나치게 어렵기는 하지만 신화(神話)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조금이라도 알아두고 넘어갑시다.
  
현실의 세계는 매우 복잡합니다(연속적·아날로그적·실존적). 그러나 그 현실을 묘사하는 언어의 세계는 매우 단편적이고 파편화되어 있습니다(분절적·디지털적·본질적). 현실의 세계, 즉 “있는 그대로의 세계”나 “존재 그 자체(物自體 : thing itself)”를 우리가 인식의 한 가운데로 끌어내기는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인식이나 표현의 도구가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이것이 실존(實存)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 실존의 상태를 이해해야 하는 딜레마에 항상 빠져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언어(language)라는 도구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언어는 수치적(數値的)이고 정량화(定量化)되어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묘사할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일상을 언어로 표현하다보니 언어가 가진 함정에 쉽게 함몰될 수가 있습니다. 『노자(老子)』에도 “도(道)를 도(道)라고 하면 이미 도(道)가 아니라(道可道非常道)”는 말과도 같은 맥락이죠(너무 어려우면 모르셔도 됩니다. 아래의 내용을 아시는 데는 큰 지장은 없으니까요).
  
우리가 현실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언어로 표현된 현실은 복잡하고 실존적인 형태의 현실로부터 언어가 묘사하는 단편적이고 본질적인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언어는 끝없이 바뀌는 것을 본질로 하는 현실의 세계(실존 : existence)를 언어가 묘사하는 단순한 세계(본질 : essence)로 다시 태어나게 함으로써 우리 주변을 쉽게 안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죠.
  
그렇지만 우리는 일상적인 언어생활을 하면서는 현실세계의 복잡성과 그것에 대한 언어적인 표현은 크게 다르다고 느끼지는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어로 묘사된 상황이 실존(實存)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 문자도 없는 상태에서 수천 년간 민족에게 전승되어야 하는 신화는 다릅니다. 문자도 없는 상태에서 민족의 뿌리에 대한 역사를 자자손손 끊임없이 기억시켜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될까요? 역사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역사를 긴 문장으로 전달할 수 없으므로 함축적으로 표현해야 하고 구성원 모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한 것이 바로 신화로 볼 수 있죠. 그러니 신화에는 그 민족의 집단무의식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서 역사를 그 역사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알기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되, 중요한 키워드(key word)를 심어두는 것이죠. 그러면 다른 것은 바뀌어도 이 키워드는 바뀌지 않는 것이죠. 씨앗을 품은 과일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이와 같이 어떤 신화 속에 숨어있는 변하지 않는 민족적 상징물과 독특한 민족적 행동양식을 ‘민족적 코드(ethnic code)’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코드들이 다른 신화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또 어떤 형태로 변형되는가를 봄으로써 민족 간의 연계성을 파악한다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신화의 분석을 통해서 민족의 이동 시기나 건국 시기도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쥬신의 신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이들 신화가 가진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 그 변형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3) 고주몽, 영원한 쥬신의 아버지 : 쥬신 신화
  
쥬신의 신화를 보려면 단군신화를 보고, 그 다음으로는 부여를 중심으로 봐야 합니다. 고구려나 몽골이 결국은 부여를 기반으로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지요. 단군신화는 우리가 이미 보았기 때문에 부여ㆍ고구려 신화를 봅시다.
  
먼저 부여의 건국신화의 내용을 요약하겠습니다. 자, 신화의 세계로 한번 빠져봅시다.
  
"옛날 북방에 고리(槀離)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 왕의 시녀가 임신을 하자 왕이 죽이려 하였다. 그러자 시녀가 말하기를 닭 알 크기의 기운이 (하늘에서) 자기에게 내려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시녀가 아이를 낳게 되자 왕이 이 아이를 돼지우리에다 버렸으나 돼지들이 따뜻하게 해주었고, 마굿간에 버렸는데도 따뜻하게 해주어 죽지 않았다. 왕은 그 아이가 하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여 그 시녀에게 기르게 하였다. 그 아이의 이름은 동명(東明)이라고 했는데 동명은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 왕이 이를 우려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동명은 남쪽으로 몸을 피하여 시엄수(施掩水)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자 고기와 자라들이 떠올라 다리를 놓아서 동명은 무사히 건널 수가 있었다. 그리고 고기와 자라들은 흩어졌고 동명을 추격하던 군대가 더 이상 추격할 수 없었다. 이후 동명은 수도를 건설하고 부여를 다스렸다."(『삼국지』「위서」부여전 주석)
  
위의 글은 『삼국지』에 배송지가 달아놓은 주석의 내용입니다. 원래는 위나라 명제 때 어환(魚豢)이 지은 『위략(魏略)』에 나오는 것을 인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위의 내용은 북위의 역사서인 『위서(魏書)』에는 훨씬 더 상세히 나타나고 있습니다[위서』는 남북조 시대의 사서(史書)로 북제(北齊)시대의 위수(魏收)가 저술].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여기저기에 다양하게 나오는데 반하여 부여의 건국신화는 잘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서기 1세기경의 기록인 『논형(論衡)』의 부여 건국신화에 따르면 동명(東明)은 활을 잘 쏘았는데, 왕은 나라를 빼앗길까 두려워 동명을 죽이려하자 남쪽으로 몸을 피하여 엄호수에 이르러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이루었고, 그 후 동명은 도읍을 정하여 부여(夫餘)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論衡』2卷 吉驗篇). 그 외에도 3세기경으로 책인 『위략(魏略)』, 4세기의 『수신기(搜神記)』, 5세기의 『후한서(後漢書 : 432)』등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부여의 신화에 구성하는 코드(code)를 모아보면 ① 하늘(天孫族), ② 기아(棄兒 : 아이를 버림), ③ 활의 명인(주몽), ④ 큰물과 관련된 지지자들의 존재, ⑤ 건국 등으로 요약됩니다. 다만 부여의 신화에서는 동명의 어머님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고구려의 건국 신화를 보지요.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부여의 신화에 윤색을 가해 탄생됩니다. 한번 보세요.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왔다. 스스로 말하기를 선조는 주몽(朱蒙)인데 주몽의 어머니는 하백(河伯)의 따님이었다. 하백의 따님은 부여 왕에 의해 방안에 갇혔는데 햇빛이 그의 몸을 비추어 이를 피하였지만 그 빛은 계속 그녀를 따라다녔다. 곧 그녀에게 태기가 있어 알을 하나 낳았는데 그 크기가 곡식의 닷 되 정도였다. 부여왕은 이 알을 버려 개에게 주었는데 개는 이 알을 먹지 않았고 돼지에게 주었으나 돼지도 먹지 않았다. 길거리에 내다 버렸으나 마소가 피해 다녔고 들에 버리자 새들이 이를 보호해주었다. 마침내 왕은 그 알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이 알을 따뜻한 곳에 두었는데 아들이 태어났고 그 아이가 자라서 자(字)를 주몽이라고 하였는데 그곳 풍속에 주몽이란 활의 명인이라는 뜻이었다."(김부식,『삼국사기(三國史記)』「고구려 본기」)

위의 두 신화를 비교해보면 고구려는 분명히 부여에서 나온 종족임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건국신화, 또는 출자설화는 고대국가에서 왕실(王室)의 정통성(正統性)에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습니다. 부여ㆍ고구려 건국신화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왕실의 정통성이 부계는 천제(天帝 : 하느님)의 핏줄을 잇는다는 것이죠. 그런데 고구려는 여기서 한발 나가서 모계는 경제적 풍요를 보장하는 물의 신, 즉 농업신[하백녀]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① 토착세력과의 유대의 강화 및 민족적 융합, ② 민족적 신성함을 고양시키려는 의도 등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고구려의 건국신화가 실려 있는 책이나 자료는 ① 한국 측 자료로는 『三國史記』,『三國遺事』,『東明王篇』(『東明王篇』의 주석에 실려 있는 『舊三國史』에도 고구려의 건국신화가 있음), ② 중국 측 자료로는 『위서(魏書)』,『양서(量書)』,『주서(周書)』,『수서(隨書)』,『북사(北史)』등이 있습니다(오늘날까지 전하는 동명왕신화의 기록들은 거의 대부분 고구려에 관한 것이며, 부여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부여의 경우 북부여의 신화는 해모수신화이고, 동부여신화는 해부루 · 금와에 관한 신화라는 정도만 남아있습니다). 저는 일단 가장 일반적으로 고구려 건국신화로 인식되는 『삼국사기(三國史記)』「고구려 본기」의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삼국사기』의 주몽신화는 이규보의 『동명왕편』에 인용되어 있는 『구삼국사(舊三國史)』의 주몽신화를 요약한 것인데 『위서』와 거의 같습니다. 다만 주몽이 남으로 내려올 때 『위서』는 두 사람(오인ㆍ오위)이고 『삼국사기』는 세 사람(오이ㆍ마리ㆍ협보) 등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중국 측 사서의 경우와 한국 측의 자료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 측의 기록에서는 다만 왕의 시비(侍婢 : 시녀)가 하늘에서 기운을 받아 아이를 낳는다든가 하백녀가 햇빛[日光]에 의해 잉태되어 알을 낳는 형태로만 신화가 구성되어 있는 반면에 한국 측의 기록에서는 해모수와 ‘버들꽃아씨’, 즉 유화(柳花) 부인을 등장시킴으로써 건국시조인 주몽의 부모를 더욱 신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해모수는 하늘나라의 아들이고 ‘버들꽃아씨’(유화부인)는 물의 신[水神]인 하백의 딸로써 유목민인 천손족(天孫族)과 지상의 토착민이 결합되는 과정을 함께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후대에 내용이 다소 변형 보완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삼국사기』에는 『위서』에 없는 내용인 해모수신화(解慕漱神話)와 해부루신화(解扶婁神話)가 있다는 것이죠. 즉 『삼국사기』에는 부여왕 해부루가 자식이 없어 고민하다가 곤연(鯤淵)에서 금와(金蛙)를 얻은 후 동부여를 건국하는 해부루 신화(解扶婁神話)와 유화 부인이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와 관계하여 주몽을 잉태하는 해모수신화(解慕漱神話)가 나타나있는데 중국 측에는 이런 기록이 없지요. 이것은 ① 사관이 이를 누락시켰거나, 아니면 ② 후대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여기서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삼국유사』에는 “『단군기』에서 말하기를 단군께서는 서하 하백의 따님과 함께하여 아이를 낳으시니 그 이름이 해부루이다(檀君記云 君與西河河伯之女要親 有産子 名解扶婁 : 『三國遺史』卷1 「 高句麗」)”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단군신화와 부여ㆍ고구려 신화가 연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유화부인(버들꽃아씨)과 함께한 천제(天帝)의 아드님이 바로 단군(檀君)이니 주몽(동명)은 단군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해부루와 해모수는 『삼국사기』에 나타난 기록으로 보면 전후가 바뀌기도 하고 기록이 왔다 갔다 하는 등 혼란스럽지만 단군과 고구려의 신화가 연계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결국 주몽(동명), 대쥬신의 영원한 아버지는 바로 단군의 아드님이시지요.
  
그래서 우리는 단군신화 - 부여 신화 - 고구려ㆍ몽골ㆍ백제 신화 등이 하나의 범주로 통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단군이나 주몽(동명)이라는 개념이 왕건(王建 : 고려 건국시조)이나 이성계(李成桂 : 조선 건국시조)와 같은 하나의 실존인물일 수도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단군이나 주몽은 실존인물이 아니라 쥬신의 집단 무의식의 일부입니다. 즉 단군과 주몽(동명)은 쥬신의 집단 무의식에 내재한 민족적 정체성(ethnic identity)의 표상, 쉽게 말하면 쥬신의‘한 아버지(공동의 조상)’라는 것이지요.
  
지금 우리의 관심은 부여와 고구려의 변용 과정이며 동시에 쥬신 역사에서 어떤 형태의 일체성을 가지는 것인지를 찾아가는 것이죠.
  
고구려의 신화에서 기본적인 코드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요? 기아(棄兒)와 활의 명인 등은 이전과 동일합니다. 그러나 하늘이 보다 분명한 햇빛으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고, 주몽의 신변 위협이 더욱 커져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출하면서 주몽의 어머님의 역할이 훨씬 강화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위서』나 『삼국사기』에 보다 분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단 『위서』를 보도록 하죠.
  
“부여 사람들은 주몽이 사람이 낳은 존재가 아니므로 그가 역심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고 그를 죽이자고 청하였으나 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주몽에게 말을 기르도록 하였다. … 그래도 부여의 신하들이 주몽을 죽이려하자 주몽의 어머니는 ‘이 나라 사람들이 너를 죽이려하므로 너는 지혜와 재주가 있으니 멀리 다른 곳으로 가서 업을 도모하도록 해라’라고 했다(『위서』「고구려전」).”
  
『삼국사기』에는 『북사(北史)』의 기록을 인용하여 주몽과 하백녀는 신묘(神廟)가 있어 신성하게 섬겼다고 합니다. 즉 고구려의 건국시조와 그 어머님인 ‘버들꽃아씨(유화부인 : 하백의 따님)’가 시조신으로 숭배되고 있었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고구려가 멸망할 때 유화의 조각상에서 피눈물을 흘렸다는 기록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버들꽃아씨(유화부인)’은 나라의 수호신(守護神)으로 신성하게 모셔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맹이라는 국가적 제전에서도 수신제(水神祭 : 수신을 수혈에서 모시고 나와 국내성 동쪽의 압록강으로 옮겨 물 위에 설치한 신좌에 두고 제사)가 있어서 동맹제의 한 축을 이루었습니다(以十月祭天 國中大會 名曰東盟 … 其國東有大穴 名隧穴 十月國中大會 迎隧神 還于國東[水]上祭之 置木隧於神坐 : 『三國志』「魏書」高句麗).
  
이와 관련하여 보면, 고대 몽골인들은 조상의 영혼도 자신이나 씨족을 지켜주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하여 경배하였다고 합니다[박원길,『몽골의 문화와 자연지리』(민속원 : 1999) 216쪽]. 그래서 『몽골비사』에는 성모(聖母) 알랑-고아의 샤먼적(예언자적) 성격도 강하게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 코드로 보면 우리가 앞에서 본 몽골신화는 부여보다는 고구려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신화의 코드를 통해서 몽골은 부여에서 나왔지만 고구려와 비슷한 시기에 분화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됩니다. 몽골의 시조신인 성모(聖母) 알랑-고아는 ‘버들꽃아씨(유화부인)’의 몽골버전(Mongol version)인 셈이지요.
  
물론 민족 신화가 다른 민족의 신화에 영향을 미치거나 전파되는 예는 많이 있어 신화만 가지고 동일한 종족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민족이든지 아무런 까닭 없이 이웃의 신화를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지요. 특히 건국신화는 경우는 민족적ㆍ정치적인 신화(ethnic and political myth)이므로 더욱 그러합니다. 어떤 신화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른 형태의 계승의식의 반영일수도 있고 민족적 정체성(ethnic identity)의 구현일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죠. 그리고 그것은 신화의 코드 속에 숨어있게 됩니다.
  
이 코드는 복잡한 현실 세계를 안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문화적 기능(cultural function)을 하는 것이지요. 이 점에 있어서 신화는 모든 문명의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사회 결속과 공동체 의식 유지가 신화의 목적이며 기능이라고 주장한 말리노프스키(Malinowski)의 혜안(慧眼)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지요.
  
이런 관점에서 몽골의 경우를 봅시다.
  
몽골은 다른 민족의 신화 일부를 차용하기도 하지만 ⓐ 코릴라르타이-메르겐(고주몽) 신화와 ⓑ 알랑-고아 신화는 천년 이상 벌판을 떠돌면서도 견고하게 가지고 다닌 신화입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자신의 뿌리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지요. 마치 집을 떠난 어린 소년이 한 장 남은 엄마 사진을 죽을 때까지 지니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지요. 이것은 버리거나 잊어서는 안 되는 민족의 코드이지요.
  
그래서인지 대부분 몽골인들은 한국에 와본 경험이 없으면서도 한국에 대해서 매우 좋게 생각합니다(한국에 와 보면 상황이 달라지지요. 한국인들은 미국이나 중국 등에는 얼마나 잘해 줍니까? 그리고 자기들보다 조금 못 하다 싶으면 얼마나 가혹합니까?). 그리고 한국은 몽골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들로 생각한답니다. 몽골은 중국을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칭기즈칸의 후예로 알려진 바이칼의 부리야트족들은 바이칼 일대를 코리(Khori)족의 발원지로서 보고 있으며 이 부리야트족의 일파가 먼 옛날 동쪽으로 이동하여 만주 부여족의 조상이 되었고 후일 고구려의 뿌리가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정재승 선생에 따르면 이런 얘기는 동몽골이나 바이칼 지역에서는 상식적인 전설이라고 하지요. 심지어 동명왕을 코리족 출신의 고구려칸(Khan)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까지 본 대로 그 방향이 다른 것 같습니다. 즉 몽골의 기원은 코리족의 바이칼 방향으로의 이동으로 봐야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몽골비사』가 기록된 것보다도 수백 년 전의 중국 사서들은 코리족들이 아리ㄱ 오손 → 오난 강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고올리 성터들의 유적들이 그 방향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죠.
  
여기서 다시 부여와 고구려로 돌아갑시다. 고구려가 부여와 동족이었다는 것은 “동이(東夷)들 사이에서 전하는 옛말에 따르면 고구려는 부여의 다른 일파이므로 대부분이 같았으나 의복(衣服)이나 기질(氣質)이 달랐다(『삼국지』「위서」 고구려전)”라고 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습니다.
  
부여와 고구려의 신화를 보면 동명과 주몽에 대한 다소의 혼란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부여와 고구려가 같은 종족에 의해 세워진 국가였기 때문에 나타난 것 같습니다.
  
부여의 시조인 동명과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이 동일하게 취급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주몽은 동명성왕이라고 하지만 주몽을 동명이라고 쓴 예는 없습니다. 즉 중국의 사서 가운데 「고구려전(高句麗傳)」이 있는 책(『魏書』, 『周書』, 『隨書』)은 고구려의 시조를 주몽이라고 합니다. 대무신왕(大武神王)의 경우 즉위 3년에 ‘동명묘(東明廟)’를 세우는데 이것은 주몽의 사당인 ‘시조묘(始祖廟)’가 아니고 부여족이 숭배하는 ‘동명(東明)’에 관한 사당으로 보인다는 견해가 있습니다(李志映 「三國史記 所載 高句麗 初期 王權說話 硏究」). 즉 주몽과 동명은 다르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제가 볼 때는 주몽과 동명은 같은 의미로 사용된 말입니다. 비록 고구려 신화에서 주몽을 동명(東明)이라고 하진 않았지만 그보다 동명성왕(東明聖王)으로 더욱 높인 것으로 보아 부여의 신화에 나타나는 ‘동명’과 고구려의 신화에 등장하는 ‘주몽’이 외형적으로는 다르게 보일지는 몰라도 결국은 같은 존재를 지칭하고 있다고 봐야한다는 말이지요. 물론 부여의 건국 주체세력과 고구려의 건국 주체세력은 다르겠지요. 마치 왕건(王建)과 이성계(李成桂)가 다르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부여나 고구려에 있어서 건국의 아버지가 지닌 표상은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쥬신이라는 민족의 집단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건국 시조에 대한 원형(archetype)에 대한 코드(ethnic code)라는 것입니다.
  
즉 『삼국사기』에는 부여의 왕실에서 서자로 태어난 주몽이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하면서 신변의 위협을 받다가 탈출하여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三國史記』高句麗本紀 第一) 그 신화의 구조는 부여의 동명 신화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봅시다. 부여의 신화에 “동명은 활을 잘 쏘았기 때문에”라는 말이 나오고 고구려 신화에서는 “그 아이가 자라서 자(字)를 주몽이라고 하였는데 그곳 풍속에 주몽이란 활의 명인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명과 주몽의 삶의 역정은 거의 동일합니다. 따라서 주몽 - 동명 - 건국시조 등은 마치 하나의 수레의 바퀴처럼 엮여서 돌아가고 있지요.
   

[그림 ④] 동명성왕릉(북한 소재). ⓒ김운회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광개토대왕비에서는 추모(鄒牟[저우무])로 나와 있고 『위서(魏書)』고구려전(권 100), 『주서(周書)』고려전(권 49), 『수서(隋書)』고려전(권 81)에는 주몽(朱蒙[주멍]),『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 본기(문무왕 10년)와 『일본서기(日本書紀)』덴지(天智) 천왕 7년 10월조에는 주부(仲牟[チュウボウ])로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은 성이 고(高)씨이고 이름이 주몽(朱蒙)이다(고구려 본기).”는 기록이 있습니다(그러니 동명과 주몽은 하나의 존재를 일컫는 말이지요). 이렇게 동명이란 이름은 부여의 시조뿐 아니라 고구려 왕실과 백제의 시조에서도 사용한 흔적이 보입니다[서병국『高句麗帝國史』(혜안 : 1997) 30쪽]. 백제에서 시조의 묘를 동명묘(東明墓)라고 했다고 하죠. 그래서 저는 주몽이나 동명성왕은 쥬신이라는 민족이 의지하고 기대는 하나의 민족 기원의 코드라고 보고 있습니다.
  
제가 주몽과 동명을 같은 존재라고 보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이기도 합니다. 주몽이란 활의 명인이라는 의미이고 동명은 하늘의 자손, 또는 개국(開國)을 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물론 외형적으로만 보면 그 뜻은 달라 보일수도 있지만 주몽이란 개인적인 역량과 카리스마의 표현이고 동명이란 개국이라는 중요한 영웅적 행위를 표현하는 것으로 한 인물 속에 체현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고 고구려의 신화에서는 하나로 융합되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동명(東明)이라는 말은 동쪽[東], 밝음[明] 등을 뜻하는 것으로 하느님을 상징하는 말이 됩니다. 우리는 앞에서 해모수, 해부루 등의 말을 보았는데 ‘부루(夫婁)’나 ‘비류(沸流)’도 동명(東明)과 마찬가지로 밝거나 신성함을 의미합니다. 일찍이 양주동 선생은 ‘()’은 ‘광명(光明)ㆍ국토(國土)’의 뜻으로 ‘발(發)ㆍ벌(伐)ㆍ불(弗)ㆍ비(沸)ㆍ불(不)ㆍ부리(夫里)ㆍ화(火)ㆍ원(原)ㆍ평(平)ㆍ평(坪)ㆍ평(評)ㆍ혁(赫)ㆍ명(明)ㆍ백(白)ㆍ백(百)ㆍ백(伯)ㆍ맥(貊)ㆍ박(泊)ㆍ박(朴)ㆍ호(瓠)’ 등의 글자를 빌려서 표현한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쥬신에게 있어서 불[火]이란 신성함의 상징인 동시에 가계나 씨족의 번영을 상징하는 코드입니다. 몽골의 경우에도 “불씨를 꺼뜨리고 불을 없앤다.”라는 말은 가장 흉악한 저주의 말로 가족의 씨[種]를 말린다는 의미이죠. 오늘날 한국에서 집들이를 할 때나 개업식을 할 때 성냥을 선물로 주는 것도 같은 이유겠지요.
  
한마디로 동명이란 태양을 숭배하는 천손족(天孫族 : 범쥬신족)의 대표적 코드(code)입니다. 그래서 고구려에서는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국가적 행사를 동맹(東盟)이라고 불렀는데(『삼국지』「위서」) 이것이『양서(梁書)』에서는 동명(東明)으로 전하고 있습니다(『梁書』「高句麗傳」). 결국 동맹이나 동명은 같은 말이라는 것이죠. 여기서 말하는 동명이란 태양을 숭배하는 천손족이 나라를 열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통하여 민족적 단합과 결속을 도모하여 민족 역량을 최대로 결집시키기 위한 국가적 행사라는 것이죠. 이것은 그대로 예맥의 전통, 곧 쥬신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개천절(開天節) 행사를 국가적으로 성대하게 치른 것이 동맹이라는 말이지요. 오늘날 이 동맹의 원래 모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몽골의 나담 축제를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고구려와 근원이 같은 선비 탁발부(拓拔部)의 경우 이 같은 범민족적 행사에 참가하지 않으면 대인(大人 : 부족장)을 처형하기도 하였으니 고구려도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즉 각 부족들은 동맹이라는 국가적 제전에 반드시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죠. 동맹은 국왕이 직접 주재하여 그 스스로가 천제와 물의 신의 후손으로 신성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움으로써 시조의 신성(神聖)함이 이 국가적 행사를 주관하는 현재의 국왕에게 현재화(現在化)하고 국왕은 신성한 존재가 되어 통치의 정당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건국 신화(시조 신화)는 단순히 과거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건국 신화는 그런 과거 지향적 기능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강조하고 그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말이지요. 쉽게 말해서 현재의 상황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며 미래의 방향을 설정한다는 점에서 건국신화는 고대국가에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이지요.
  
이 모든 통치의 정통성과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의 한 가운데 바로 동명성왕 고주몽(동명), 단군의 아드님, 쥬신의 아버지가 있는 것이지요.
  
여기서 잠시 천손(天孫)이라는 의미를 유목민의 시각으로 다시 한 번 살펴봅시다. 사실 천손(天孫)이라는 의미는 비단 유목민만이 강조하는 것은 아니죠. 중국의 경우에도 황제를 천자(天子)라고 하지요?
  
그렇지만 자연을 개척하기보다는 자연에 오로지 순응만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유목민족에게 있어서 하늘은 모든 권력이나 역량의 원천으로 인식됩니다. 『몽골비사』의 첫 구절에 “칭기즈칸은 이미 하늘로부터 그 운명을 타고 났다.”로 시작됩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아기를 가졌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유목민족에게 ‘하늘의 뜻[天意]’이라는 말은 사회적으로 공인된 도덕과 같은 것이지요. 예를 들어 쿠빌라이칸이 “당태종이 친히 정벌하고도 정복하지 못한 고려의 세자(世子)가 스스로 짐에게 귀의하다니 이는 진정 하늘의 뜻이로다.(『高麗史』)”라고 하는 등 쥬신은 유달리 하늘의 뜻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위엄을 높이기 위해 하늘과의 연계를 강조하는 중국인들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몽골(몽골쥬신)은 원래 반항적이지 않고 매우 복종적이라고 합니다. 복종이 미덕이지요. 이 같이 맹종하는 습속들은 지금까지도 한국ㆍ일본ㆍ몽골 등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몽골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평등하게 둥글게 둘러앉아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고 용인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하늘의 뜻’과 같기 때문이죠. 그러나 평화제의가 거절당하면 중국인처럼 여러 가지 전략적인 행동으로 움직이지 않고 바로 무력행동에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참가자들의 대다수는 죽을 때까지 투쟁하며 항복하는 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합니다[박원길,『몽골의 문화와 자연지리』(민속원 : 1999) 183쪽]. 마치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의 모습을 보는 듯 하죠?
  
이제는 백제의 신화와 위의 신화들을 비교해 봅시다. 『북사(北史)』에는 백제의 건국을 다음과 같이 애기합니다.
  
"색리(索離)라는 나라의 왕이 지방에 나간 사이에 궁중에 남겨진 시녀가 임신을 하였다. 왕이 돌아와서 그 시녀를 죽이려 하자, 시녀가 말하기를 ‘왕께서 아니 계시는 동안 달걀만한 양기(陽氣)가 내려와서 제 입으로 들어와 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왕은 수상하게 생각되었지만 그래도 시녀를 살려두기로 했다. 후에 시녀가 아이를 낳자 돼지우리에 버렸지만 돼지가 입김을 불어 얼어 죽지 않았고 말 우리에 버리니 말도 입김을 불어 죽지 않았다. 왕은 이 아기가 아마 신이 보낸 것 같다고 여겨 주워 기르고 그 이름을 동명(東明)이라고 하였다. 동명은 자라서 활의 명수가 되었다. 왕은 동명을 두려워하여 다시 죽이려 하자 동명은 남쪽으로 몸을 피하고 도중에 엄체수(淹滯水)라는 강에 이르러 활로 강물을 때리니 물속에서 고기 떼, 자라 떼가 떠올라서 다리를 만들었다. 동명은 그 다리를 건너 부여에 이르러 왕이 되었다. 동명의 후손에 구태(仇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어질고 신의가 깊어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 대방(帶方) 땅에 나라를 세우고 공손도(公孫度)의 딸을 아내로 얻어 동이들 가운데 큰 세력을 떨치게 되었다. 처음에 백(百) 집의 사람을 거느리고 강을 건넌[濟] 까닭에 백제(百濟)라고 한다. 동쪽에는 신라와 고구려가 있고 서쪽에는 바다가 있다(『북사(北史)』94권 「백제」).
  
백제의 건국시조에 대한 기록은 여러 군데 나타나고 있습니다. ① 한국측 자료로는 『삼국사기』(권23 백제본기 1, 시조 온조왕 즉위조), 『삼국유사』(권2 기이 2, 남부여조) ② 중국측 자료로는 『주서(周書)』(卷49 「列傳」百濟傳), ③ 일본측 사서로는 『속일본기(續日本記)』(卷40, 桓武天皇 9年 秋七月) 등이 있습니다. 백제의 건국과정에서 상세히 분석하겠지만 여기서는 쥬신 전체의 신화와의 연계성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특이한 것은 일본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둡시다. 『속일본기』에는 “백제의 태조(太祖)가 도모대왕(都慕大王)이었다”는 기록이 보입니다.
  
백제의 건국신화는 부여ㆍ고구려와 대동소이하지만 유심히 보면 동명(東明)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훨씬 부여적(夫餘的)이라는 것을 감지해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내용도 부여의 신화를 거의 복제해낸 것입니다.
  
이상하죠? 건국시기를 본다면 부여 → 고구려 → 백제의 순서일 터인데, 그 신화는 부여와 고구려는 조금 다르고 백제의 신화는 오히려 부여의 복제품이라는 사실이 말입니다. 그렇지요. 이 안에는 수많은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백제의 건국신화에는 부여의 신화에 구성하는 코드(code), 즉 ① 하늘, ② 기아(棄兒 : 아이를 버림), ③ 활의 명인, ④ 큰물과 관련된 지지자들의 존재 등이 그대로 있으며 주몽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동명이라는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고구려와는 차별화하면서 보다 ‘부여의 재생’에 역점을 두고 있지요. 제가 백제를 남부여, 또는 반도부여라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죠. 그러면서 동명의 후손으로 구태라는 분을 등장시킴으로써 혈통적으로는 부여에 더 가까우면서 실질적으로 건국의 시조가 되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게 된다는 점에서 고구려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이것은 부여가 더욱 강력하게 부활하기를 염원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고구려에서 강화된 어머니의 역할이 다시 감소되고 맙니다.
  
결국 같은 기원의 신화라도 미묘한 코드의 차이나 변용이 나타나고 그것은 실제적인 민족의 분열과 대립을 보여주는 바로미터(barometer)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백제의 건국신화와 그 건국과정은 쥬신의 다른 신화나 건국과정들에 비하여 아직도 미해결된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저는 백제의 건국과 시간적인 거리가 가장 가까운 『북사(北史)』의 기록을 인용한 것입니다. 백제의 시조에 대해서 동명설(東明說), 온조설(溫祚說), 비류설(沸流說), 구태설(仇台說), 도모설(都慕說) 등 복잡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부여에서 지속적으로 여러 무리가 반도 쪽으로 내려온 것을 알 수가 있죠?). 이 부분은 ‘백제편’에서 충분히 다루겠습니다. 그 때쯤이면 여러분들의 의문도 풀릴 것입니다.
  
부여 - 고구려ㆍ몽골 - 백제의 건국신화를 보면 코드의 변용은 있었지만 결국 전체적인 코드는 대동소이하며 이것은 민족적 일체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이들 건국신화는 민족의 일체성을 암시하는 많은 코드들이 있으며 그것으로 판정해보면 부여 - 고구려ㆍ몽골 - 백제 등은 하나의 민족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신화는 명백히 한족(漢族)에게서는 나타나지가 않기 때문이죠.
  
(4) 쥬신의 코드, 활(弓)
  
쥬신의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코드가 있습니다. 하나는 태양, 즉 하늘에서 내려온 빛에 의해 회임(懷妊)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건국시조들이 대부분 활의 명인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늘, 또는 그 하늘의 자손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단군신화의 환웅만이 아니라 부여의 해모수(解慕漱), 일본의 니니기(瓊瓊杵) 등에서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쬐이는 햇빛에 의해 건국시조가 태어난 예를 들면 부여의 동명과 부여계의 신화들, 고구려의 주몽, 신라ㆍ일본의 아메노히꼬(天日槍), 몽골의 알랑-고아 신화, 거란의 야루아버지(耶律阿保機 : 야율아보기), 선비의 투바귀(拓跋珪 : 척발규) 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천손(天孫)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쥬신 신화의 가장 일반적인 코드입니다. 단군신화가 전형적인 예이지요. 그런데 단군의 계승자인 주몽의 신화는 단군신화와는 달리 보다 땅위에 사는 인간을 중심으로 묘사된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역할을 더욱 강화한 것이지요.
  
그렇지만 천손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알타이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코드(code)입니다. 이것은 신령스러운 산, 신령스러운 나무 등과 더불어 북방 유목 민족의 수직적인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건국 시조들이 활의 명인이라는 점을 살펴봅시다. 부여(夫餘)나 백제의 동명이나 고구려의 주몽(동명성왕)이나 몽골의 메르겐(Mergen) 등을 봅시다. 활은 쥬신 신화의 대표적인 코드죠. 그렇다면 이 코드를 풀어야만 이 신화가 가지는 의미를 알 수 있겠죠?
  
쥬신의 신화 속에서 나타나는 기본적인 내용은 쥬신족들은 활의 명인을 매우 우대하고 칭송하는 관습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활의 명인들이 나라를 건국하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보면 한반도의 조선(朝鮮)의 건국도 마찬가지죠?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대표적인 명궁이죠). 도대체 왜 그럴까요?
  
넓은 초원을 무대로 살아가야 하는 쥬신족들에게 있어서 활은 생명의 동아줄 같은 것입니다. 수렵과 유목에 의해 삶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에게 활은 매우 중요한 삶의 도구가 될 수밖에 없지요. 아무리 그렇다고 활만 잘 쏜다고 그저 왕으로 삼아요? 좀 지나친 것은 아닐까요?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쥬신에게 있어서 활과 화살은 단순히 사냥을 위한 살상용 무기만이 아니죠. 화살은 ① 사회적 맹약, ② 왕의 권위, ③ 명(命)의 전달자로서 사절(使節)의 불가침성(不可侵性), ④ 소유권의 표시, ⑤ 부족내의 통일과 평화 등의 심볼로서 사용되는 것으로 대단히 신성한 것이죠[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마니즘』(민속원 : 2001) 213쪽].
  
간단히 말하면 활은 바로 쥬신의 심볼(symbol)입니다. 요즘도 반도쥬신(한국인)은 활로 세계를 정복하고 있지요. 한국에서 양궁 선수가 되는 것이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것보다 어렵다고들 합니다.
  
활의 기능을 좀 더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재미있는 사례를 들어봅시다.
  
진수의 『삼국지』에는 오르도스 지역 쥬신족 장수 여포(呂布)가 유비(劉備)와 원술(袁術)의 부하 장군인 기령(紀靈)의 싸움을 말리기 위해 자기가 화극(畵戟 : 창)의 작은 가지에 활을 쏘는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포는 ‘내가 저 창 끝에 있는 작은 가지를 한번 쏘아 명중시키면 전쟁을 중단하고 아니면 계속 싸우시오’라고 하더니 활을 쏘았다. 여포가 쏜 화살은 창 끝의 작은 가지에 명중하였다. 그러자 여러 장수들은 놀라서 ‘장군께서는 하늘이 위세를 갖추고 있소이다.’ 라고 경탄하였다(『三國志』「魏書」呂布傳).”
  
마치 황당한 무협지의 한 장면 같이 들립니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가 힘들죠. 제가 나관중 『삼국지』(소설『삼국지』)에서 이 장면을 보았을 때는 지어낸 이야기로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그대로 진수의 정사 『삼국지』에 있어서 매우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고로 여포는 무예의 명인이었고 그것을 기반으로 차이나드림을 이루려했으나 한족(漢族)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인맥(人脈) 구축의 실패로 비운(悲運) 속에 생을 마감한 사람이었죠[김운회,『삼국지 바로읽기』(삼인 : 2004) “여포를 위한 아리랑” 참고].
   
[그림 ⑤] 몽골의 전사 (원나라때 비단에 그린 그림). ⓒ김운회

위의 기록을 보면 여포가 화살을 사용한 것은 흔히 나관중 『삼국지』마니아들이나 한족(漢族)이 생각하듯이 무예를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죠. 평화의 상징으로 화살이 사용되고 있으며 하늘로부터 어떤 신령스러운 힘이 활의 명인에 내려서 평화를 이룩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인 것이죠.
  
따라서 활은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주요한 매개체이며 활의 명인이란 결국 하늘의 뜻을 실행하는 그 대리자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지요. 하늘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원하고 그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자가 바로 천명을 받은 자이지요. 주몽(동명성왕)은 바로 그런 분이며 칭기즈칸의 조상이지요.
  
그리고 이 같은 사고는 바로 천손사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활로써 적을 공격하여 죽이더라도 그것은 천명(天命)에 의한 것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나라 때도 서양 사람들은 ‘천하의 도살꾼’으로 알았던 몽골인(몽골쥬신)들을 직접 보고서는 그들의 부드럽고 겸손하며 순박하고 소탈한 성품에 많이 놀랐다는 것이죠. 칭기즈칸의 원(元)나라는 일단 세계를 정복한 후 철저히 교통로를 보호하고 가장 안전하게 상인들을 보호합니다. 세계 역사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죠.
  
세계의 그 어떤 민족과 정부도 원(元)나라만큼 동서양의 교역을 아무 탈 없이 유지한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아시아에 팔다리도 여러 개인 괴물들이 산다고 믿어 가기를 꺼리던 유럽인들이 원나라 이후에는 헤아릴 수도 없이 울란바트로 - 대도(大都 : 현재의 베이징)까지 들어옵니다. 세계가 비로소 하나로 통합되는 이른바
  ‘세계화시대(The Age of Globalization)’ 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열리게 됩니다. 쥬신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세계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이기도 합니다.
  
다시 쥬신의 심볼 활로 돌아갑시다.
  
쥬신에게 활이 중요한 것은 현실적인 이유 이상의 활과 관련된 쥬신 특유의 집단 무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쥬신에게서 활은 악령(惡靈)을 제거하는 신성한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기독교에서 십자가가 악령을 물리치는 것이라면 쥬신에게 있어서 활은 악령으로부터 쥬신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죠[박원길, 『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샤마니즘』(민속원 : 2001) 213쪽].
  
결국은 쥬신에게 있어서 활의 명인은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군장과 종교적인 수장을 겸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단군왕검(檀君王儉)도 종교수장(단군 : 샤먼)과 정치적 군장(왕검)을 함께 나타내는 말이지요]. 이것이 활과 활의 명인이 가지고 있는 코드(code)의 내용입니다.
  
이 같은 샤마니즘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쥬신의 왕조가 최초의 정복왕조라고 할 수 있는 거란(契丹)이었습니다. 『요사(遼史)』에 따르면, 요나라의 태조는 “(천명을 받은 군주는 마땅히 하늘을 섬기고 신을 경배한다(受命之君 當事天敬神 :「耶律倍傳」)”라고 하여 샤마니즘을 아예 국교(國敎)로 숭상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島田正郞, 『遼朝官制の硏究』(1979) 321쪽]
  
이상의 분석을 통해서 부여 - 고구려ㆍ몽골 - 백제의 건국신화를 보면 코드의 변용은 있었지만 결국 전체적인 코드는 대동소이하며 이것은 쥬신이라는 하나의 민족의 일체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씨족 사회를 근간으로 하는 유목 사회는 공동조상에 대한 개념이 매우 뚜렷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이전까지 저는 중국의 사서(史書)를 고증하거나 현대 생물학적인 방법으로 부여 - 고구려ㆍ몽골 - 백제 등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을 증명해왔습니다. 이제 신화를 통해서 이를 다시 검증하여 보았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건국신화는 민족의 일체성을 암시하는 많은 코드들이 있으며 그것을 분석해보면 부여 - 고구려ㆍ몽골 - 백제 등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것이지요. 이번이 이야기가 여러분들이 범쥬신(Pan-Jüsin)을 폭넓게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열도쥬신(일본)의 신화는 어떤지 한번 분석해봅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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