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59644

몽골 황제와 닮은 트럼프의 거래 기술
[사극으로 역사읽기] MBC 사극 <왕은 사랑한다> 네 번째 이야기
17.09.17 11:16 l 최종 업데이트 17.09.17 11:16 l 글: 김종성(qqqkim2000) 편집: 장지혜(jjh9407)

한미 FTA를 유리하게 바꾸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잠시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끝난 것은 아니다. 동맹국들과의 무역에서 손해 보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는 강고하다. 

트럼프는 불구가 된 미국을 혁신하겠다는 비전을 담은 <불구가 된 미국> 제8장에서 "어떻게 해야 다른 나라에 빼앗긴 우리의 일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 뒤 "그 답은 우호적인 교역 파트너들과 더 나은 무역협정을 맺는 것에 있다"고 답했다.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되찾고 생계를 부지하는 길은 동맹국들과의 FTA를 개정하는 데 달려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내뱉은 말을 얼른 주워 담을 때도 많지만, 중요한 사안에서는 뜻을 쉽게 굽히지 않는 스타일이다. 중대한 문제에서는, 목표가 좀 무리할지라도 끈기 있게 접근한다. 

좋은 예가 있다. 그가 대통령후보 출마 의지를 최초로 피력한 시점은 42세 때인 1987년이다. 그 후 그는 '백악관 문'을 확 두드리지 않고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살짝 건드리기만 했다. 그 때문에 비웃음도 많이 샀다. 출마하는 시늉만 내다가 결국 포기할 거라는 비난이 많았다. 하지만 근 30년 만에 기회가 찾아오자, 손바닥으로 문을 확 밀어버리고 백악관으로 뛰어들어 대통령이 되었다.   

트럼프는 처음에 세운 신념에 강한 확신을 갖는다. 1987년 저서인 <거래의 기술> 제2장에서는 "내 경험으로 보아 신념을 위해 싸우면 본래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기는 해도 대개는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며 자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성격을 볼 때, 지금은 잠잠하지만 기회만 포착되면 나름의 신념을 갖고 FTA 개정의 문을 다시 두들겨댈 것이다. 

고려와의 무역에서 적자 보기 싫었던 몽골 

한국한테 절대 손해 보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태도는 MBC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에 나오는 몽골제국(원나라)의 무역정책을 연상시킨다. 트럼프처럼 몽골 황제(대칸)들도 고려와의 무역에서 적자 보는 것을 싫어했다. 

중국대륙을 차지하고 이를 토대로 동아시아 최강국이 된 왕조들은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농경민인 중국 한족이고, 또 하나는 유목민인 북방 혹은 동북방 민족들이다. 

최강국과 동맹국 사이에서는 조공무역이란 이름의 교역이 이루어졌다. 조공무역은 신하국인 동맹국이 '바치는 형식'으로 선물을 보내면, 황제국인 최강국은 '하사하는 형식'으로 답례품을 보내는 것이었다. 일종의 물물교환이었다. 

농경민인 중국 한족이 최강국일 때는, 동맹국들이 대체로 흑자를 봤다. 한족은 전통적으로 군사력이 막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방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전략을 웬만하면 쓰지 않았다. 

이 점은 한중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중국 한족은 기원전 109년에 위만 조선을 대대적으로 침공했을 뿐, 그 이후로는 한민족을 상대로 큰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서기 7세기에 고구려를 침공한 수나라와 당나라의 지배층은 한족이 아니라 유목민인 선비족에 가까웠다. 당나라 이후에 등장한 한족 정권인 송나라와 명나라는 한민족한테 전쟁을 걸지 않았다. 

군사력이 강하지 않은 탓에 중국 한족은 조공무역에서 적자를 봐주는 방법으로 동맹국들을 자기 쪽에 묶어두었다. 조공은 적게 받고 답례는 많이 했던 것이다. 군사력 대신 경제력으로 동맹국들을 제압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족 왕조가 최강일 때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 왕조와의 무역 횟수를 늘리는 데 주력했다.

유목민이 최강일 때는 사정이 달랐다. 유목민은 경제력은 약한 반면, 군사력은 강했다. 그래서 일부러 적자를 보는 방법으로 동맹국의 환심을 살 필요가 없었다. 강한 군사력으로 동맹국들을 묶어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시기에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최강국과의 무역에서 대체로 적자를 봤다. 이 때문에 최강국과의 무역 횟수를 가급적 축소하려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조선은 명나라가 최강국일 때는, 이 나라를 상대로 1년에 3회, 많게는 4회 조공을 했다. 조공을 줄였으면 하는 명나라의 희망을 무시하고 그렇게 밀어붙였다. 그러다가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최강이 된 뒤에는, 청나라를 상대로 1년에 원칙상 1회밖에 조공을 하지 않았다. 명나라는 농경민인 한족이고, 청나라는 유목민 성격이 강한 여진족이었다. 그래서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이다. 


▲  몽골 기마병들. 중국 내몽골자치구 흥안맹 우란하오터시의 칭기즈칸묘(칭기즈칸 사당)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왕은 사랑한다>의 몽골제국은 전형적인 유목국가였다. 트럼프처럼 이 나라 황제들도 고려와의 무역에서 손해를 안 보려고 했다. 

조공무역은 사신단이 상대방 나라를 방문하는 기회에 이루어졌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사신단에 의한 교역이 공식 무역이었다. 여기에 참여한 양국 실무자들은 상호 교환할 품목과 수량을 사전에 협의했다. 이 과정에서 몽골인들은 트럼프처럼 욕심을 부렸다. 비싼 상품을 받아내고 헐한 상품을 답례하는 한편, 많은 수량을 받아내고 적은 수량을 답례하려 했던 것이다. 

고려와 몽골(원나라) 사이의 이런 정황이 서강대 김한규 교수의 <한중관계사 1>에 다음과 같이 정리돼 있다(이 책 속의 생경한 한자어를 쉬운 말로 바꾸었다). 

"상호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던 이전 시대의 교역과는 달리, 고려·원나라 시대에는 고려의 조공이 원나라 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되었다. 원나라는 사절을 고려에 보내어 모종의 물품을 보낼 것을 강요하였다. 또한 원나라는 고려가 보낸 물품의 종류나 수량이 만족스럽지 못한 때는, 다시 사절을 보내 스스로 필요한 물품을 수색하고 그것의 공납을 독촉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고려는 몽골과의 사신단 무역에서 적자를 입었다. 이 시기 고려인들은 농경민 국가인 송나라가 건재했던 과거 시절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만약 지금도 왕조체제가 이어지고 있고 한국이 미국에 조공을 하고 있다면, 트럼프는 위 인용문처럼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 '한국은 무슨 물건을 얼마만큼 보내고, 한국은 이 물건을 이만큼만 받아라'는 식으로 무역흑자를 얻어내려 할 것이다. 

그런데 몽골한테는 고려를 한없이 압박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몽골은 고려를 신하국으로 만들었지만, 그것은 전쟁을 통한 결과물이 아니었다. 몽골 기마대는 저 멀리 동유럽까지 휩쓸면서 곳곳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고려와의 전쟁에서는 끝내 승부를 보지 못했다. 

몽골은 무신정권이 이끄는 고려를 상대로 약 40년간 전쟁을 벌였지만, 군사적으로 굴복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무신정권이 무너진 뒤 고려 왕실과 평화조약을 맺고 전쟁을 끝냈을 뿐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몽골은 고려를 다른 나라와 똑같이 취급할 수 없었다. 

<왕은 사랑한다>에는 몽골인 왕비인 제국대장공주(장영남 분)가 충렬왕(정보석 분)한테 패악질을 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처럼 고려왕들이 몽골인 왕비 때문에 골치를 썩은 것은 사실이지만, 몽골이 공주를 보내면서까지 고려와 결혼동맹을 맺은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동맹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고려를 특별히 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몽골은 고려와의 무역에서도 유목민의 약탈적 특성을 무한정 발휘할 수 없었다. 고려를 잘못 건드리면 화를 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다. 이런 정서는 몽골 정부 내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일례로, 중국어로 쓰인 몽골 역사서 <원사>의 왕약 열전에 따르면, 한족 출신의 몽골 집현전 대학사인 왕약은 "(고려) 백성들이 사납게 돌변하면 우리가 힘을 소모하게 된다"며 고려를 경계했다. 

고려를 무한정 자극할 수 없기에, 몽골은 고려와의 무역에서 무한정 흑자를 추구하지 않았다. 비공식 무역에서는 고려한테 흑자를 양보했다. 공식 무역인 사신단 무역에서는 일방적인 흑자를 거두면서도, 비공식 무역에서는 고려가 흑자를 보도록 허용했던 것이다. 

사신단이 수행하는 공식 무역과 별도로, 사신단 단원들이 수행하는 개별적 무역도 있었다. 고려·몽골 무역에서는 이런 개별적 교역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몽골은 이런 무역에서 고려가 흑자를 거두는 것을 훼방하지 않았다. <한중관계사 1>에 이런 대목이 있다. 생경한 한자어를 쉬운 말로 바꾸었다. 

"특히 원나라 시대에는 고려의 사신들이 수많은 수레와 상자에 싣고 토산물을 중국으로 운수해서, 중국인들이 '고려는 겉으로는 사신 일로 온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무역하러 온다'고 말할 정도였다."

위 인용문의 '중국'은 문맥상 '몽골 치하의 중국'이고 '중국인들'은 문맥상 '몽골인들'이다. 고려 사신단 사람들이 개인 무역을 한다며 수많은 물건을 싣고 오는 것을 보면서, 몽골인들은 "저 사람들, 외교가 아니라 장사 때문에 왔어"라고 말할 정도였다. 비공식 무역에서는 고려가 흑자를 보는 게 용이했기 때문에, 사신단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물건을 많이 준비해 갔던 것이다. 

고려 정부는 그런 비공식 무역을 이용해 적자의 상당부분을 만회할 수 있었다. 이런 가능성을 알면서도 몽골은 비공식 무역을 관대하게 허용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고려와의 동맹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었던 것이다.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 제2장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긍정적 사고의 힘을 믿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나는) 실제로는 부정적 사고의 능력을 믿고 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거래를 할 때는 보수적 입장을 갖는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고려하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있으면, 막상 일이 닥치더라도 견뎌낼 수가 있다."

몽골은 고려와의 전쟁에서 데인 경험이 있다. 그래서 고려와의 관계를 최악으로 몰고 가지 않으려고 애썼다. 최악의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고려가 비공식 무역에서 흑자를 얻는 것을 용인했던 것이다. 

몽골 황제들은 고려와의 공식 무역에서 흑자를 얻어내려 애썼다. 이 점에서는 몽골 황제들과 트럼프가 같다. 하지만, 몽골 황제들은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비공식 무역에서는 적자를 봐줬다. 신념을 갖고 장기적으로 밀어붙이지만 최악의 경우를 항상 예상한다는 트럼프 본인의 말대로라면, 이 점에서도 몽골 황제들과 트럼프가 같게 될 여지가 전혀 없지 않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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