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주간조선 1999.10.7 /1572호
고구려 정복로 1만 3천리를 가다
[답사를 마치고] "고구려는 신화 아닌 미래의 꿈"
중국 깊숙한 곳곳에 말 달린 흔적…체계적인 장기조사 필요
고구려는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과거의 신화인가, 아니면 분단시대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우리의 꿈인가. 그동안 신라사나 백제사에 비해 부진했던 고구려사 연구가 최근 활기를 찾고 있지만 아직까지 고구려의 웅장한 실체는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고 있다.
고구려의 활동 무대가 1300년의 역사를 넘어 현장감이 없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한중 수교 이후 고구려의 고도 국내성이 있는 지안(集安)과 랴오뚱(遼東) 등에 대한 탐사가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긴 했다. 그러나 이런 국지적 답사는 한편으론 고구려의 활동 무대를 남만주 일원으로 고정시키는 편향된 시각을 갖게 하는 역작용도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고구려의 최전성기인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대의 서북 원정로인 북만주와 랴오뚱, 랴오시(遼西), 흐베이(河北)는 물론 따싱안링(大興安嶺), 동몽골 초원에 대한 학술 답사는 고구려의 힘과 실체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5000km 넘는 대장정을 통해 우리 답사단은 고구려 제국의 신화, 그 웅장한 스케일의 한꺼풀을 벗길 수 있었다. 그동안 문헌사료와 옛 지도로만 고구려의 전성기를 그려왔던 필자에게도 이번 답사는 하나의 감흥 그 자체였다. 학술답사의 성과로 가장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고구려의 군사작전 범위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광대하였다는 점이다. 지도로만 보면 따싱안링은 우리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보였지만, 푸순(撫順)이나 지린(吉林)에서 따싱안링을 넘어 동몽골 초원으로 가는 길이나 랴오허(遼河)에서 따릉허(大凌河)를 건너 하북지역으로 진출하는 노정은 생각보다 어려운 길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맥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초원지대의 고원인 따싱안링은 자동차보다 말을 타고 넘기가 더 수월할 것이라는 게 모두의 느낌이었으며, 기마전투를 능기로 하는 고구려 군에게 큰 장애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흐베이 진군로도 마찬가지였다. 자오양에 있는 후연 수도 용성(龍城) 유지를 비롯하여, 연진(燕秦)시대의 장성 유지를 따라 이어지는 우북평, 어양, 상곡군(郡)의 유지를 거쳐갔는데 거란과 후연의 숙군성을 통제하에 넣고 있었던 고구려가 진서에 나와 있는 대로 연진 장성지대를 따라 베이징(北京) 외곽의 고북구(古北口)를 넘어 후연의 연군을 공략한 것이 불가능한 사실이 아니었음을 실제 답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시라무렌강 유역서 염수의 비밀 풀어 고구려사 연구가 단순히 문헌자료만으로 해결이 안되며 뛰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실감한 대목이었다. 현지인이 견문과 여러 차례의 조사를 통해 시라무렌강 유역에서 염수의 비밀을 푸는 소득을 거둔 것도 현장 답사의 승리였다.
이번 답사는 몇가지 숙제도 남겼다. 1920∼1930년대 러시아 학자들의 보고서와 일본의 현지 측량 지도 등에 나타나는 따싱안링 일대 고려성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따싱안링, 시라무렌강 유역, 동몽골, 랴오시, 흐베이에 걸쳐 고려마을, 고려샘, 고려성, 고려영 등의 지명이 산재하고 있다. 이러한 용어들은 고구려 유적은 물론 심지어 상경성을 비롯한 요금(遼金) 대의 유적에도 사용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점은 하나의 연구과제이다. 이러한 명칭들이 빠른 속도로 중국식 지명으로 바뀌고 있어 체계적인 연구가 시급하다.
짧은 시간 동안 광범위한 고구려 전성기의 유지를 모두 살펴보고 그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지난한 일이었으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좀더 고구려 제국의 실체에 접근하게 됐다는 점이다. 종래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발로 뛰는 현지 답사를 통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이런 성과들을 종합, 체계화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고구려는 과거의 신화가 아니라 미래의 꿈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서영수 단국대 한국학부 교수 / 한중관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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