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주간조선 1999-9-22 , http://www.dragon5.com/news/news19990922.htm
[취재 뒷이야기] 초원유감(草原遺憾)
안녕하십니까? 이번 주에 '고구려 정복로 1만3000리를 가다'를 쓴 최유식 기자 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중국 곳곳에 산재한 카오리청, 우리말로는 고려성(高麗城)이라는 데 대한 얘기를 해볼까합니다.
(얘기하기에 앞서서 여기서 고려라는 말은 모두 고구려(高句麗)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 자체도 하나의 별도 얘기가 되겠지만 잠시 설명하자면 고구려의 국호는 고구려가 아니라 고려가 맞습니다. 중국 사서에는 고구려라고도 하기도 하고 고려라기도 합니다. 수나라가 고구려에 패하고난 뒤에는 비하하는 의미로 아래 하(下)를 써서 하구려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광개토대왕비나 중원고구려비 등 고구려인들이 직접 만든 기록에는 모두 고려라고 쓰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와 언어가 달랐던 중국인들이 고구려인의 발음을 적당히 자기네말로 끼워 맞춰 만든 게 고구려지요. 학자들은 당시 고리나 구리가 정확한 발음이 아니었나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고구려를 계속 쓰고 있는가? 학자들은 이미 오랫동안 써와서 이제와서 바꿔서 고려라고 하면 국민 전체가 혼란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래 국호가 조선인 고조선도 같은 경우입니다.)
이번에 저희 정복로 답사단이 둘러본 랴오닝성이나 내몽골자치주에는 고려라는 이름을 붙인 지명이 참 많습니다. 랴오닝성의 자그만 산골 마을에서부터 내몽골자치주 따싱안링산맥의 산록 초원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있습니다. 그 형태도 고려성 외에 고려영자(영자는 부락, 마 을 정도로 해석), 고려하 등으로 가지각색입니다.
저희와 함께 정복로 답사에 나선 고구려연구회의 서길수회장과 서영수 단국대 교수는 이 점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곳곳에 있는 고려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은 되도록 다 다녀보았지요. 이 지역에 대한 정밀지도와 1920~1930년대 일본, 러시아의 전문가들이 시베리아 철도 건설 등을 이유로 이 지역을 조사해놓은 보고서 등에는 이런 '고려' 자(字)가 붙은 지명들의 자세한 위치가 밝혀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현장에 가보면 고려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고고학적인 증거들은 별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예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길림성에서 따싱안링산맥으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 눙안(農安)이라고 곳이 있습니다. 요나라 때 황룡부라고 불렀던 동북평원의 요지이지요. 초원의 유목민족과 동북평원의 수렵-농경 민족 간의 교통로이자 물자 교류의 중심지라고 할만한 곳입니다.
이곳에 카오리청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보았는데 요나라 때 성이었습니다. 저희를 따라간 고고학자(이름은 본인의 요청으로 밝히지 않습니다. 나중에 이유를 언급하지요.)는 토성벽 속에 박힌 붉은 기와를 들어 '고구려 것' 아니냐고 하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습니다.
발해만상에 있는 국화도라는 섬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지로부터 30분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다보면 이 섬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자그만 부속섬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는 거의 완형에 가까운 토성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답사단은 이 섬에 카오리청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일정 마지막에 달려갔습니다. 배를 타고 들어갈 때 유람선 선장에게 물었더니 역시 "카오리청"이란 대답이 날아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명나라 때 만들어진 성이었어요. 기와편은 거의 없고 명나라 때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편 몇 개가 나왔을 뿐입니다. 국화도향정부에 가서 물어보니 마찬가지 대답이었습니다. 벌써 중국 문화재당국이 조사해서 17세기에 만들어진 명대 성으로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였습니다.
이런 사례는 더 있습니다. 1930년대 러시아 학자가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을 위한 조사차 이곳을 방문해 만든 렐리제프 보고서에 내몽골자치주 울란호터 근처에 카오리청이라고 언급한 곳이 있어 가봤더니 금나라 때 망루로 추정되는 곳이었어요. 그 인근에 또 한군데를 가봤더니 그곳에서도 "당나라 때 동전이 많이 나왔다"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이렇게 모두 아닌 것 같은데 왜 현지인들은 이곳을 '카오리청'이라고 할까요? 답사단도 늘 고민스럽고 궁금한 부분이었습니다.
저희는 크게 세가지 추론을 해보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요즘 식으로 말해 고구려성의 축성술이 워낙 뛰어나서 '성(城)하면 고려성'으로 인식이 굳어져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상품브랜드 중에 애프킬라와 비슷한 거죠. 뿌리는 모기약에 다른 상표가 많이 나왔는데도 우리는 지금도 애프킬라를 모기약의 의미로 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고구려 사람들의 축성술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사서에 "고구려 사람은 성을 잘 쌓아 쉽게 공격하기 힘들다"는 구절이 나올 정도입니다. 고구려 석성을 주의깊게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담벼락 처럼 늘어선 성 중간에 요철처럼 툭 튀어나온 부분이 있습니다. 이걸 치성(雉城)라고 하는데 정면에서 달려드는 적을 좀더 효율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성 방어장치 중의 하나입니다. 바로 이 치성이 고구려의 특허품에 해당합니다. 요나라 이후 중국은 대부분 이 치성과 또하나 고구려의 독창적인 축성술인 옹성을 성 건설에 도입하게 됩니다. 그러니 '성=고려성'이라고 할만 했을 겁니다.
두 번째는 '고려인에 의해 만들어진 성'일 가능성입니다. 고구려가 망하고 난 뒤 만주지역엔 발해가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발해는 고구려의 정통성을 승계한 나라라는 의미에서 국호를 고려라고 했습니다. (역시 발해라는 국호도 중국이 붙여준 것입니다.) 따라서 발해사람은 고려인이 되는 것이죠. 발해가 요나라에 망한 뒤 고려인들은 중국 내지와 거란 지역으로 많이 이주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들중 축성술에 뛰어난 사람들이 요나라의 명에 의해 축성하는 데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메이드 바이(Made by 고려인)'이라는 의미에서 카오리청 아니었느냐하는 분석입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은 그곳에 원래 카오리청이 있었는데 나중에 요, 금, 명대에 다른 나라들이 그 성을 고쳐서 이용했을 것이라는 추정입니다. 원래 성이 위치하는 요지는 후대에도 눈에 띌 수밖에 없으니 그곳이 그곳인데다 고구려인이 성을 잘 쌓으니 그걸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이용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추론을 해보면서도 어느 것 하나 그럴 듯하다고 느껴지는 게 없었습니다. 우리가 정서적으로 고구려 것이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바라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 아닐까 하는 찝찝한 구석이 남은 탓입니다.
카오리청에 얽힌 이 이야기를 굳이 장황하게 말씀드린 이유는 기실은 딴 데 있습니다. 고구려 문제에 관한한 우리 사회는 양극을 달리고 있습니다. 한 쪽에는 학계, 또 한쪽엔 재야 사학계가 있어 서로 제 갈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재야사학계는 뚜렷한 학문적 근거 없이 터무니 없이 고구려 역사를 과장하는 경향이 뚜렷하고 우리 학계는 "그 사람들은 작가"라며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 소 닭보듯 하는 형국입니다.
그러나 부끄럽기는 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92년 한중 수교 이후 대륙을 탐사하고 연구할 기회가 무수히 많았는데도 '연구비' 타령만 하면서 제대로 잊혀진 고구려 역사를 밝혀내는데 소홀했습니다. 일제시대부터 이어온 실증사학의 틀에 얽매여 뻔히 문헌과 금석문에 나와있는 내용도 고구려 것이면 부정하고 봤다는 겁니다. 여기에 반발할지 모르는 학자분들을 위해 한 예를 소개하지요.
얼마전 고구려성임이 확인된 아차산성만 해도, 처음 발굴할 때 고구려성이라는 얘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던 발굴팀의 팀원(제자)은 백제성이라고 주장하는 팀장(스승)의 서슬 때문에 감히 '고구려성'이라는 얘기를 못꺼냈다고 합니다. 그 때문이 이 산성은 한동안 백제성 인줄만 알고 지냈다고 합니다.
수십년이 흘러 그 스승이 죽고 나서 그제서야 고구려성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발굴이 이뤄져 고구려성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스승의 명을 거스르고는 학계에서 생 존할 수 없는 낡은 국사학계의 풍토가 만들어낸 웃지 못할 비극입니다.
그리고 이런 학계의 반대편에는 역사와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재야사학계가 있습니다. 오늘 제게 온 독자의 이메일을 하나 소개하지요.
"최기자님! 고구려성 및 유적은 서안, 낙양에도 있고 돈황과 트루판에도 있다고 합니다. 그깟 고구려 영토를 서쪽으로 조금 늘린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차피 모두 가짜인데! 일제가 써준 역사를 텍스트로 하여 아직도 우리의 역사는 한반도와 남만주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중심지는 중원, 그러니까 황하를 중심으로 한 북중국의 한 복판이라는 설이 있습니다.물론 그 이웃이었던 백제와 신라도 현재의 중국대륙에 있었겠지요.
저는 역사 연구가는 아니고, 어린 학생시절 국사시간을 접할때마다 거의 모든 내용들에 대해 "과연 그랬을까, 정말 맞아?"하고 의문을 가지면서 이면의 다른 국사에 계속 관심을 가져온 사람입니다. 저같은 사람은 우리나라에 의외로 많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우리 역사를 믿지 않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삼국의 중원 존재설은 분명히 논리적 실증적 근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야학설이라는 것 때문에 역사교육의 기득권과 그로부터 소득을 오랫동안 창출해온 제도권 학자들로부터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
이분의 주장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이미 카오리청을 찾는 저희의 작업에서도 느끼실 수 것입니다. 대개 "어느 곳에 고구려 유적이 있다더라"는 얘기가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확인도 해보지 않은 채 그것을 당연한 사실로 여깁니다. 하지만 10여군데 이상 고려라는 지명이 나오는 현장을 살펴본 저로서는 이제 그런 전문만을 믿고 그건 고구려 것이라고 할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말을 여러분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현재의 역사라고 해서(현재의 관점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해서) 왜곡하거나 실증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 또한 역사과학의 상식입니다.
저는 고구려 역사에 대한 분석과 천착은 지금부터라고 봅니다. 하나하나 현장을 보고 분석해 과학적으로 진실을 밝혀가야할 것입니다. 조급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직 때가 안됐지만 언젠가 고구려의 역사가 우리의 시대의식이 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가장 필요한 건 웅변이 아니라 역사과학입니다.
이번 저희의 답사 결과가 양쪽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의 일환이 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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