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의 마지막 전장인 노량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두 장군이 있었다. 조선의 이순신과 명나라의 등자룡 장군이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의 전쟁에서 명나라는 21만 명이란 대병사를 파견 하였지만 조속히 전쟁을 마무리 못한 것은 전시작전권을 행사한 무능한 명나라 장수들 때문이었다. 당시 파병된 명나라 병부상서(국방장관) 송응창, 총사령관 심유경과 이여송 같은 장수들이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해 전란을 키웠다. 1598년 정유재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방장관 형개는 관망 상태였고 총사령관 유정은 협상으로 전쟁을 마무리 하려고 했고 진린 제독 역시 소극적인 전투로 임했다.
그러나 유독 명나라 장수로 용감한 군인정신과 기개를 보여준 인물이 있었다. 등자룡 鄧子龍 장군이다. 명나라 수군 작전 함장인 등자룡 장군은 이순신과 같이 노량 전투에서 최후까지 장수로서 직분을 다하였다. 그는 명나라 장수로 전장에서 죽은 유일한 장수이다. 노량해전이 위기촉발의 시각이었다. 진린 도독과 조명 연합 수군들은 노량 전투의 작전사령부 묘도에서 철군하는 왜병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순신이 나섰다.
“장군, 적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퇴각하는 중입니다. 적을 보내선 안 됩니다. 당장 출정을 하여 적을 칩시다.”
진린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니오. 철군하게 내버려 둘 것입니다.”
“뭐라고요? 적을 돌려보낸다고요? 지금까지 작전은 뭡니까? 내가 나설 것입니다.”
“무명의 장수가 무슨 권한으로 그런 말을 하나? 전작권은 내게 있다.” 진린이 이순신을 윽박질렀다.
“저들을 돌려보내면 전쟁으로 참화를 당한 조선의 백성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것입니다. 저놈들을 다 죽여야 합니다. 정 장군이 그렇게 나온다면 저라도 나가서 싸우겠습니다.”이순신이 하소연을 하였다.
“입 닥쳐라. 이곳의 사령관은 나 진린 도독이다.”
그때 명나라 등자룡 장수가 뛰어나왔다.
“이순신의 말이 맞습니다. 장군, 왜병을 돌려보내선 안 됩니다. 저들은 조선과 우리 명나라에 치명적인 상처를 준 적군입니다.”등자룡 장군이 진린에게 간청하였다.
“장수는 잠자코 있으라. 왜병이 철수하고 있다. 그들이 가면 전쟁은 끝난다.”
진린은 퇴로를 열어 왜병이 도주하는 길을 터주고 있었다.
“그들은 적군입니다. 적군을 보내면 우리가 이곳에 온 명목이 안섭니다.”
“병선 참모는 잠자코 있으라고 했잖소.”
“장군, 우리가 이역만리 조선에 출정을 한 것은 왜병을 무찌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안 한단 말입니까? 그것도 다 이길 수 있는 전쟁인데 말입니다. 지금 이순신을 비롯한 조선 수군들이 아우성입니다. 도망가는 왜병들을 살려 보내선 안 됩니다.” 진린의 반대에도 등자룡 장군은 도망가는 왜군을 섬멸해야 한다고 우겼다.
“피를 흘려선 안 됩니다. 저들이 조용히 빠져나가면 전쟁은 끝납니다.”
“어찌 장수가 전쟁에서 적을 보고 피한단 말입니까? 장수가 전장에서 죽는 것이 명예로운 일입니다.”
이순신이 작전 사령관 진린의 거부에도 병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달렸다. 등자룡도 함대를 이끌고 이순신의 뒤를 따랐다. 왜병에 비해 게임이 안 되는 병사로 적진에 뛰어든 것이다. 도망가는 5만의 왜병들이 이순신 함대와 등자룡의 함대를 공격하였다. 전투 중에 이순신이 전사했다. 중과부족, 따라서 등자룡 장군도 왜병의 칼에 맞아 죽었다. 잔인한 왜병은 등자룡의 목을 베어가지고 도망갔다. 노량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그는 진정한 영웅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이순신과 목이 베어진 등자룡 장군 신신 앞에 진린이 섰다.
“어리석은 패기였소, 무모하게 다 끝난 전쟁에 목숨을 건단 말이요.” 라고 읊조렸다.
정유재란 때 왜성 전투와 노량 전투에서 명나라 군은 8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장수는 오로지 등자룡 장군 한분 만 전사를 당했다. 장수로써 의와 명예를 전장에 바친 진정한 장수였다.
마침내 전쟁은 끝나고 6만의 명나라 군사가 철군을 하였다. 진린은 장군의 목 없는 등자룡의 시신과 5,000명의 해군을 이끌고 여수돌산과 거금도, 진도, 흑산도를 거쳐 중국으로 돌아갔다. 전쟁이 끝난 후 국방장관 형개는 만력제(신종)에게 등자룡의 용병술과 병선 참모로 역할을 다한 진정한 노병이라고 극찬한 상서를 올렸다.
등자룡 장군은 고향인 강서성 의춘에 묻혔다. 그리고 그의 동상은 풍성시 두지진에 세워졌다. 그런데 그의 동상엔 목이 없었다. 목없는 장군의 청동상에 나무로 만든 목을 붙였다는 것이다.
* 鄧子龍 장군은 누구인가?
중국 강서성 의춘의 명월산에서 부유한 선비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병과에 합격하여 수군 장수가 되었다. 그는 병선을 조정하는 작전장수였다.
나이 70에 수군 장수로 조선에 파병한 것은 그만큼 병선 조정과 운항을 잘 하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상군도에서 급조된 병선 100척과 수군 천명을 이끌고 낮선 조선을 향하여 떠났다.
무사히 조선의 남해안에 도착하자 마침 산동 반도에서 출정한 진린 의 300척 함선과 수병4,000명과 고금도에서 합세하였다. 고금도에 주둔한 조선수군과 합류하여 조.명연합 수군을 만들었다. 진린이 사령관이었고 그는 병선을 움직이는 작전참모 였던 것이다.
'조선 > 임진왜란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이'의 실제 주인공 백파선은 서글프다, 왜? - 오마이뉴스 (0) | 2013.07.17 |
---|---|
조선 수군의 영웅들 - Pgr21 (0) | 2013.04.20 |
한백록 장군 - 강원도민일보 (0) | 2010.02.10 |
한백록(韓百祿) - 실록 (0) | 2010.02.10 |
충장공 한백록 - 청주한씨 (0) | 2010.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