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B%AF%B8%EC%B2%9C%EC%99%95
미천왕
미천왕(美川王, ?~331년, 재위 : 300년~331년)은 고구려의 제15대 군주이다. 이름은 을불(乙弗) 또는 을불리(乙弗利), 우불(憂弗) 등이 전해진다. 서천왕의 손자이자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의 아들이다. 호양왕(好壤王)이라고도 한다.
생애
293년 아버지 돌고가 백부인 봉상왕에게 반역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자 을불은 도망쳐 신분을 숨기고 고용살이와 소금장수 등을 전전하였다. 300년 국상 창조리(倉助利)가 봉상왕을 폐위할 마음을 품고 을불을 찾아 모셨으며 이후 봉상왕을 폐위한 뒤 왕으로 옹립되었다.
미천왕은 즉위 초부터 중국 군현 세력과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302년에는 현도군을 공격하여 적 8천여 명을 사로잡았으며 311년에는 서안평(西安平)을 점령하여 낙랑군(樂浪郡) 및 대방군(帶方郡)의 보급로를 끊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313년에는 낙랑군의 군벌 장통(張統)이 요동으로 퇴각하였으며 314년에는 대방군을 병합하여 중국 군현 세력을 축출하였다. 317년에도 다시 현도성을 공격하였다.
중국 군현 세력이 축출된 이후 요서 지방에서 선비족(鮮卑族)의 일파인 모용부(慕容部)가 세력을 확대함에 따라 대립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318년 경, 서진(西晉)의 평주 자사(平州刺史) 최비(崔毖)의 작전에 따라 선비족의 다른 일파인 단부(段部)·우문부(宇文部)와 함께 모용외(慕容廆)를 공격하였는데 실패하였으며 이후 모용부가 요동을 장악하면서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되었다. 319년에는 서진의 최비가 요동을 잃고 고구려로 도망쳐 왔으며 하성(河城)을 지키던 여노(如孥)가 모용부의 공격에 포로로 잡히기도 하였다. 이에 미천왕은 군사를 일으켜 요동을 공격하였으며 모용외 역시 두 아들을 보내 침략해 왔다. 이에 미천왕이 휴전을 청하여 잠시 휴전이 성립되었다. 320년겨울에도 요동을 침략하였으며 이후 일진일퇴를 거듭하였다. 330년에는 후조(後趙)의 석륵(石勒)에게 사신을 보내 중국 방향에서 모용부를 견제하려 하기도 하였다.
331년에 서거하였으며 미천(美川)의 들에 장사지냈다. 342년에 고구려로 쳐들어온 전연(前燕)의 군대가 미천왕릉을 도굴하여 시신을 가져갔으며 고국원왕은 343년에 많은 공물을 바치고 시신을 돌려받았다.
가계
참고
15대왕 미천왕 관련글
미천왕(美川王) - 한국역대인물,한국사DB,위키 http://tadream.tistory.com/341
미천왕 - 위키 http://tadream.tistory.com/340
미천왕 : 소금장수 을불, 고구려 15대왕이 되다 - 네이버캐스트 http://tadream.tistory.com/354
인과응보(因果應報)-소금장수 '을불' : 미천왕 - 임동주 http://tadream.tistory.com/403
미천왕
미천왕(美川王, ?~331년, 재위 : 300년~331년)은 고구려의 제15대 군주이다. 이름은 을불(乙弗) 또는 을불리(乙弗利), 우불(憂弗) 등이 전해진다. 서천왕의 손자이자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의 아들이다. 호양왕(好壤王)이라고도 한다.
생애
293년 아버지 돌고가 백부인 봉상왕에게 반역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자 을불은 도망쳐 신분을 숨기고 고용살이와 소금장수 등을 전전하였다. 300년 국상 창조리(倉助利)가 봉상왕을 폐위할 마음을 품고 을불을 찾아 모셨으며 이후 봉상왕을 폐위한 뒤 왕으로 옹립되었다.
미천왕은 즉위 초부터 중국 군현 세력과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302년에는 현도군을 공격하여 적 8천여 명을 사로잡았으며 311년에는 서안평(西安平)을 점령하여 낙랑군(樂浪郡) 및 대방군(帶方郡)의 보급로를 끊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313년에는 낙랑군의 군벌 장통(張統)이 요동으로 퇴각하였으며 314년에는 대방군을 병합하여 중국 군현 세력을 축출하였다. 317년에도 다시 현도성을 공격하였다.
중국 군현 세력이 축출된 이후 요서 지방에서 선비족(鮮卑族)의 일파인 모용부(慕容部)가 세력을 확대함에 따라 대립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318년 경, 서진(西晉)의 평주 자사(平州刺史) 최비(崔毖)의 작전에 따라 선비족의 다른 일파인 단부(段部)·우문부(宇文部)와 함께 모용외(慕容廆)를 공격하였는데 실패하였으며 이후 모용부가 요동을 장악하면서 본격적인 대립이 시작되었다. 319년에는 서진의 최비가 요동을 잃고 고구려로 도망쳐 왔으며 하성(河城)을 지키던 여노(如孥)가 모용부의 공격에 포로로 잡히기도 하였다. 이에 미천왕은 군사를 일으켜 요동을 공격하였으며 모용외 역시 두 아들을 보내 침략해 왔다. 이에 미천왕이 휴전을 청하여 잠시 휴전이 성립되었다. 320년겨울에도 요동을 침략하였으며 이후 일진일퇴를 거듭하였다. 330년에는 후조(後趙)의 석륵(石勒)에게 사신을 보내 중국 방향에서 모용부를 견제하려 하기도 하였다.
331년에 서거하였으며 미천(美川)의 들에 장사지냈다. 342년에 고구려로 쳐들어온 전연(前燕)의 군대가 미천왕릉을 도굴하여 시신을 가져갔으며 고국원왕은 343년에 많은 공물을 바치고 시신을 돌려받았다.
가계
- 큰아버지: 봉상왕
- 아버지 : 고추가 돌고(古鄒加 咄固)
- 어머니 : 미상 ?
- 왕후 : 왕후 주씨(王后 周氏) - 342년에 모용황(慕容皝)에게 미천왕의 시신과 함께 포로로 끌려가 355년까지 인질로 고초를 겪었다.
참고
전 대 봉상왕 |
제15대 고구려 국왕 300년 - 331년 |
후 대 고국원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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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jo29694631/10109203941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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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왕 일대기 (15대 미천왕) - jo29694631 http://tadream.tistory.com/204 (비공개)
http://blog.naver.com/jo29694631/10109203941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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