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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15대 미천왕(300〜331)은 매우 특별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그는 왕이 되기 전 소금장수였다. 어떻게 임금의 손자가 소금장수가 되었다가, 임금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큰아버지를 피해 궁궐에서 도망치다


초기 고구려에는 힘센 5부족이 있었다. 왕위는 소노부에서 배출되다가, 계루부로 교체되기도 했다. 하지만, 차츰 계루부의 힘이 커져, 다른 부족에서 넘볼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이제 왕위는 계루부 왕실 내에서 다투게 되었다. 248년 12대 중천왕의 두 동생 예물과 사구가 반란을 일으키다가 죽임을 당한 일이 벌어졌다. 임금에게 동생이란 언제든지 자신의 왕위를 넘볼 수 있는 경쟁자이기도 했다. 왕이 자신의 동생을 죽인 사건은 세계 역사에서 자주 있던 일이다. 그런데 고구려에서는 중천왕 시기만이 아니라, 그 아들인 서천왕 시기인 286년에도 왕의 동생인 일우와 소발의 반란 모의 사건이 벌어졌다. 서천왕은 이 계획을 미리 알고, 동생들을 잡아 죽여 버렸다. 연이어 터진 반란 사건은 서천왕의 아들인 상부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어릴 적부터 교만하고 의심이 많은 인물로 성장했다.

 

292년 서천왕이 죽자, 상부가 왕위를 계승하여 14대 봉상왕이 되었다. 봉상왕은 가장 먼저 작은 아버지인 안국군 달가를 의심했다. 달가는 280년 숙신족과 전쟁에서 승리한 명장으로,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또한, 왕실에서도 영향력이 큰 인물인 만큼 그에게는 두려운 정치적 라이벌인 셈이었다. 봉상왕은 즉위 후 불과 몇 달도 되지 않아 사람을 시켜 달가를 죽여 버렸다. 봉상왕은 한 걸음 더 나가 자신의 동생인 돌고가 반역의 마음을 품었다고 죽였다. 왕의 동생이 연이어 3대째 죽음을 당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돌고의 아들인 을불은 살아남기 위해 몰래 궁궐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머슴살이와 소금장수를 한 을불


궁궐을 나와 갈 곳이 없던 을불은 수실촌에 사는 음모란 자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시작했다. 음모는 을불이 왕의 조카인지 알지 못했으므로, 그에게 심한 일을 시켰다.

“을불아, 연못에서 개구리가 몹시 요란하게 울어서 잠을 청할 수가 없구나. 네가 연못에 돌을 던져 개구리가 울지 못하도록 해라.” 

을불은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하는 등 열심히 일을 하고, 밤에도 돌을 연못에 던지어 개구리가 울지 못하게 해야 했으므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개인적인 자유도 없는 노예생활과 다름없는 머슴살이가 너무 괴로워 을불은 1년 만에 그 집에서 나오고 말았다.

 

을불은 동촌 출신 재모와 함께 소금장수를 했다. 소금은 해안가나 내륙의 소금 연못 등지에서만 나는 것이지만, 누구나 먹어야만 하는 것이기에 내륙에 사는 사람들은 소금을 소금장수에게 사야만 했다. 을불은 서해안에 있는 염전에서 소금을 받아다가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소금을 팔러 다녔다.

 

 

도둑으로 몰린 을불


그러던 어느 날 을불은 배를 타고 압록강변에 이르러, 사수촌의 한 노파의 집에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노파는 을불에게 하룻밤을 재워주는 대가로 소금을 요구하였다. 을불은 노파에게 소금 한 말을 주었다. 그런데 노파는 욕심을 내었다.

“이봐 젊은이, 소금을 좀 더 줄 수 없겠나.”
“숙박비로 소금 한 말을 드린 것은 많이 드린 것입니다. 더 달라시면 저는 어떻게 장사를 합니까.” 

소금을 더 주지 않자, 노파는 화가 나서 을불 몰래 자신의 신발을 소금 속에 넣어두었다. 을불은 이를 알지 못하고, 다음날 소금을 지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노파가 쫓아와 소리를 쳤다.

“이놈의 도둑놈. 거기 서라. 남의 신발을 왜 훔쳐 가는 것이냐. 내 신발 내놔라.” 

을불은 자신이 도둑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노파는 을불의 소금 속에서 신발을 찾아내었다. 노파는 을불을 압록태수에게 고소했다. 압록태수는 을불이 도둑질을 했다고 판결하고, 신발 값으로 소금을 받아 노파에게 주고, 을불에게는 몽둥이로 매를 맞는 벌을 주고 풀어 주었다. 소금장수를 할 수 없게 된 을불은 이후 거지처럼 살아야 했다. 누가 보더라도 왕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폭군 봉상왕을 몰아낸 창조리


한편, 봉상왕은 사치를 즐겨 궁궐 짓기를 좋아했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렸을 때도 아랑곳하지 않고 백성들을 불러다 궁궐 짓는 일을 시켰다. 국상(국무총리에 해당)인 창조리가 공사 중지를 간청했지만, 왕은 국상인 백성의 인기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핀잔을 주며 듣지 않았다. 봉상왕은 한편으로는 사람을 시켜 자신의 왕위를 넘볼 경쟁자인 조카 을불을 찾아내 죽이려고도 했다.

 

거듭된 흉년에도 왕이 백성을 생각하지 않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정책을 지속하자 창조리는 여러 대신들과 상의하고 난 후 봉상왕을 몰아내겠다는 결심을 했다. 창조리는 다음 왕으로 을불을 모시기로 하고, 조불과 숙우 두 사람을 시켜 을불을 찾았다. 이들은 비류하에서 배를 타고 있던 을불을 만났다. 을불은 거지와 다름없는 몰골을 했지만, 행동은 의젓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조불과 숙우는 을불에게 나가 절을 하며 물었다.

“지금 임금이 정치를 잘못하여, 국상을 비롯한 신하들이 왕을 몰아내려고 합니다. 을불님은 인자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심성을 지니셨으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만하시니, 저희들이 모시고자 합니다.” 

을불은 봉상왕이 보낸 무리에게 쫓긴 바도 있었으므로, 그들을 쉽게 믿지 못했다.

“저는 시골 촌부에 불과하오. 왕손이 아니니 다시 자세히 보시오.”  

하지만, 숙우 등은 을불의 행동과 말이 왕실의 자손임을 분명하게 알았다.

“지금 임금이 백성의 마음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여러 신하들이 간절히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하여 을불님이 나서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니 저희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마침내 을불은 이들의 간절한 청을 받아들였다.

 

서기 300년 9월 봉상왕은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다. 창조리는 사냥에 따라나온 여러 대신들에게 말했다.

“나와 마음을 같이 하는 자는 나처럼 갈댓잎을 모자 위에 꽂아 주시오.” 

창조리는 여러 대신들이 자기와 같은 뜻을 가졌음을 알고 마침내 봉상왕을 왕위에서 몰아냈다. 봉상왕을 별실에 가두어 두었고 군사들로 그 주위를 지키게 했다. 봉상왕은 신하들이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봉상왕의 두 아들도 따라 죽었다.

 

창조리는 을불을 모셔다가 옥새를 바치고 왕으로 즉위하도록 하였다. 소금장수였던 을불은 마침내 고구려 15대 미천왕이 되었다.



미천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서대총. 서기 342년 고구려를 공격해 수도를 함락시킨 모용선비는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의 시신을 훔쳐간다.  거대한 무덤 가운데가 크게 파헤쳐져 있다. 모용선비에게 미천왕은 두려운 존재였다. <출처 : 김용만>


고구려 영토를 넓힌 미천왕


미천왕은 왕위에 오른 후, 영토를 넓히는 일에 열심이었다. 당시 고구려의 상대는 진나라였다. 진나라는 사마염이 세운 나라로 위나라를 무너뜨리고, 280년 오나라마저 멸망시켜 중국의 삼국시대를 통일한 나라다. 하지만, 불과 20년이 지나지 않아 8왕자들의 반란을 시작으로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미천왕을 이를 놓치지 않고 302년 직접 군사 3만 명을 이끌고 진나라의 현도군을 침략하여 8천인을 잡아서 평양으로 데려왔다. 또 313년과 314년에 각각 진나라의 낙랑군과 대방군을 쫓아버렸다. 낙랑군과 대방군이 차지했던 진나라와 동방의 여러 국가와의 중계무역의 이익을 뺏을 수 있었다. 아울러 평양주변과 황해도 일대의 넓은 평야 지대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당시 고구려에는 철제 농기구와 소를 이용한 농사방법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따라서 농민들은 새로운 농경지에서 보다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고구려는 미천왕 시기에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미천왕은 더욱 영토를 넓히고자 했지만, 이때 방해자가 등장했다. 그것은 요서 지역에서 성장한 모용선비였다. 이들은 봉상왕 시기에도 여러 차례 고구려를 공격해 온 적이 있고, 심지어 몰래 병사를 보내 서천왕의 무덤 속에 있는 보물을 훔치려다가 실패하고 도망간 적도 있었다. 미천왕은 모용선비를 미워하여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모용선비는 317년 진나라(서진)가 수도를 남쪽으로 옮겨는(동진) 과정에서 혼란에 빠진 한족들을 끌어들여 세력을 크게 키우고 있었다. 새로 진나라에서 임명된 평주자사 최비는 모용선비의 세력이 커지는 것에 불만을 갖고 319년 미천왕에게 사신을 보내왔다. 최비는 고구려가 우문선비, 단선비와 함께 모용선비를 공격해줄 것을 요청했다. 모용선비를 멸망시킨 후 그 땅을 나누어 가지자고 제안을 한 것이다.

 

미천왕은 최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미천왕은 이 기회에 요하를 건너 영토를 넓힐 수 있고, 서쪽 국경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판단하여 곧 군대를 보냈다. 고구려군은 요하를 건너 대릉하 주변에 위치한 모용선비의 수도인 극성을 공격했다. 단선비와 우문선비도 군대를 보내어 연합공격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연합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모용선비의 계략에 빠져 고구려와 단선비는 우문선비가 모용선비와 비밀리에 협조하는 것이라고 의심하고 군대를 철수하고 말았던 것이다. 모용선비는 홀로 남은 우문선비를 공격해 물리치고, 이 작전을 계획한 당사자인 평주자사 최비를 붙잡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서 공격했다. 최비는 두려워서 수천의 기병을 이끌고 고구려로 도망쳐왔다. 그 결과 진나라의 평주지역은 모용선비가 차지하고 말았다.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연합작전이 실패하는 바람에 모용선비를 격파하지 못했고, 요하를 건너 서방으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고구려 역사에서 아쉬운 순간이었다. 당시 북중국 지역에는 5호 16국 시대가 막 개막되고 있었다. 진나라는 강남으로 쫓겨난 상태라 어떤 세력이라도 이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모용선비가 가로막아 서방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 미천왕은 이후 자주 모용선비를 공격했지만, 이미 힘이 커진 이들을 압도할 수가 없었다.

 

 

미천왕과 고구려


미천왕은 거지처럼 살 때에도 왕실의 자손이라는 당당한 자세를 잃지 않고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숙우와 조불이 그가 남루한 옷차림을 했어도 그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미천왕의 이러한 당당함은 그가 왕이 되었을 때 고구려를 더욱 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한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또 백성들의 생활을 직접 경험한 왕이었기에 백성들에게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고구려는 농업과 상업이 앞선 시기보다 발전하고, 영토도 커져 장차 고구려가 크게 성장할 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다. 비록 방해자를 만나 그의 원대한 계획은 미완성에 그쳤지만, 그는 4세기 초 고구려를 크게 발전시킨 뛰어난 임금이었다.


참고 도서 : 김용만, [인물로 보는 고구려사], 창해출판사, 2001년


 김용만 /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글쓴이 김용만은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삼국시대 생활사 관련 저술을 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한국고대문명사를 집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새로 쓰는 연개소문전] 등의 책을 썼다.

그림 장선환 /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학과와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화가와 그림책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http://www.fartzz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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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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