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동, 습격, 공격, 폭도화… 외신들이 본 한국 극우들의 ‘반란’
주요 외신들은 윤석열 지지자들이 서부지법 폭동에 이르게 된 ‘맥락’에 주목했다. 어떤 이유로, 무엇을 근거 삼아 이런 폭동을 일으켰는지를 설명하는 식이다. 〈가디언〉은 미국 의회 점거 사태와 비교하며 ‘한국도 방금 1월6일의 순간을 목격한 걸까?’라고 묻는다.
김다은 기자 입력 2025.01.24 09:34 호수 906
 
1월2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철제 간판이 지난밤 새벽 폭동으로 인해 훼손된 채 외벽에 기대어져 있다.ⓒ시사IN 박미소
1월20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철제 간판이 지난밤 새벽 폭동으로 인해 훼손된 채 외벽에 기대어져 있다.ⓒ시사IN 박미소
 
‘1·19 서부지법 폭동(서부지법 폭동)’에 대한 외신의 평가는 일관됐다. AP통신은 이를 ‘폭동(riot)’으로 표현하며 침입자들의 폭력행위를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탄핵 소추된 대통령이 구속되자 지지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이들이 법원에 난입하고(broke in), 폭동을 일으키고(rioted), 파괴하고(destroying), 던지고(throwing), 뭉개고(smashing), 경찰에게서 경찰보호 장비를 빼앗으며(wrestle away from officers) 경찰과 대치해 폭력을 휘둘렀음을 설명한다. 윤석열의 구속이 지지자들의 폭동에 도화선이 되었다고도 설명한다.
 
여러 외신은 이번 사태를 법원에 대한 ‘폭력적 침입(violent intrusion, 〈블룸버그〉)’ ‘습격(strom, 로이터)’ ‘공격(attacking, 〈타이페이타임즈〉)’이자, ‘(지지자들이) 폭도화(暴徒化, 〈아사히신문〉)’한 사건으로 정의했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촉발된 가장 큰 정치적 위기라는 평가도 내놓았다(france24). 해외 통신사들의 관련 기사와 사진, 영상 등은 〈알자지라〉 〈캐내디언프레스〉 〈시드니모닝헤럴드〉 〈아이리시 이그제미너〉 〈베트남타임즈〉 등을 통해 전 세계 각 지역에 타전됐다.
 
이 사건은 인터넷 오픈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도 올랐다. 1월20일 오후12시37분에 ‘2025 Seoul western district court riot(2025 서울서부지법 폭동)’라는 위키피디아 페이지가 처음으로 생성됐다. 해당 사건은 ‘우익 테러리즘(right wing terrorism)’이자 ‘폭동(rioting)'으로 규정됐다. 위키피디아의 문서는 누구나 수정할 수 있지만 신뢰성과 정확성을 위해 기사 등 출처를 밝혀야만 페이지 내용을 수정할 수 있게 제한을 뒀다.
 
외신들은 서부지법 폭동을 단일한 사건으로만 읽어내는 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폭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충격만을 다룬 기사는 많지 않았다. 대개의 기사들은 침입자들이 일으킨 폭력적 상황에 대한 서술과 함께 최상목 권한대행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도저히 상상조차 어려운 불법 폭력 사태”이라고 평가했다는 점, 경찰이 시위대를 체포하고 이들에 대한 단호한 형사적 처벌을 준비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건 자체는 이례적이지만 한국 정부가 이를 빠른 속도로 수습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보도가 대부분이다.
 
1월14일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보수 시민단체 회원들이 과천정부청사앞 도로를 막고 윤석열 대통령을 풀어주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1월14일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보수 시민단체 회원들이 과천정부청사 앞 도로를 막고 윤석열 대통령을 풀어주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가디언〉 〈블룸버그〉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외신들은 이번 사건에 이르게 된 ‘맥락’에 주목했다. 즉, 누가, 어떤 이유로, 무엇을 근거 삼아 이런 폭동을 일으켰는지를 설명하는 식이다. 예컨대 〈가디언〉의 1월20일 기사 제목은 이렇다. ‘한국도 방금 1월6일의 순간을 목격한 걸까?’ 2021년 1월6일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미국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월19일, 한국에서 윤석열 지지자들이 서부지법에 난입한 날은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후보의 임기가 시작되기 하루 전이었다. 〈가디언〉의 해당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4년 전 워싱턴 의회의 폭동과 한국 언론에서 다뤄진 탄핵반대 집회의 모습들은 (윤석열 지지자들의) 법치에 대한 공격이 전적으로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고된 폭동이었다는 것이다.
 
주요 외신들은 1월3일, 공수처가 윤석열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한 이후부터 윤석열 지지자와 트럼프 지지자의 공통점, 그리고 윤석열·전광훈 등의 주장과 트럼프의 주장이 얼마나 비슷한 정치적·종교적 수사를 활용하고 있는지를 짚어왔다. 그 흐름은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되었다. 12월3일 늦은 밤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시민들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찾아 새벽까지 그곳을 지키며 경찰과 군에 맞서며 대치했다. 외신들은 한국 시민들의 저력에 주목했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언급하며 한국 민주주의의 지난 역사를 조명하기도 했다(〈시사IN〉 제900호 ‘외신, 윤석열 계엄령에 ‘충격’ 한국 시민 수준에 ‘감탄’ 기사 참조). 비상계엄 선포는 ‘자신의 발에 스스로 총을 쏜(〈뉴욕타임스〉)’ 독재자의 일탈인 만큼, 이제 한국이 민주주의 시스템 안에서 내란 수괴와 그의 수하를 어떻게 처벌하고 정치를 정상화 할 것인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1월3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한남동 관저에 진입한 후에도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되자 외신은 탄핵 반대 집회에 나선 이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외신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미 의회 점거자들이 외쳤던 ‘STOP THE STEAL(스탑 더 스틸)‘이라는 구호가 탄핵 반대 집회에도 등장한다는 점, 참가자들이 트럼프 지지자들이 쓰는 빨간색 ‘마가(MAGA)’ 모자와 유사한 ’탄핵 반대’ 모자를 쓰고 성조기를 흔들며 집회에 참여한다는 점이었다. 비상계엄 선포가 윤석열이라는 지도자 개인의 일탈에서만 비롯된 현상이 아니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탄핵반대 집회에 참가한 윤석열 지지자가 영어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1월3일자 방송 화면. ⓒBBC 영상 갈무리
탄핵반대 집회에 참가한 윤석열 지지자가 영어로 인터뷰를 하고 있다. 1월3일자 방송 화면. ⓒBBC 영상 갈무리
 
외신들은 적극적으로 탄핵반대 집회의 참가자들의 면면을 보도해왔다. 1월3일 BBC 방송을 살펴보자. 탄핵반대 집회에 나선 노년의 참가자는 외국인 진행자를 향해 영어로 인터뷰를 이어간다. “우리는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 윤석열을 체포하기 전에 나를 죽여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다 죽을 각오를 하고 있다.” ‘STOP THE STEAL’이라고 적은 피켓을 든 중년 여성 참가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것을 믿으며 탄핵이 위법이라는 사실도 지지해줄 것을 믿는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목숨을 바친다’는 각오를 자주 언급했다. 〈뉴욕타임스〉의 ‘STOP THE STEAL이 한국의 시위 슬로건이 된 사연’ 기사에는 매일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하는 72세의 김권섭씨 사연이 나온다. 그는 “매일 아침 집에서 나올 때 아내에게 이게 살아있는 내 모습을 보는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대의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라고 말한다고 기사는 전한다. 이들은 “한겨울에도 윤석열 집 앞에서 밤샘 기도를 하고 그를 위해 죽을 각오(〈파이낸셜 타임즈〉)”를 하는가 하면 “한국·미국의 국기를 들고 나와 트럼프가 당선된 순간 마침내 상황이 나아질 거라 믿었다(〈워싱턴포스트〉).” 기사 속에서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하는 이들은 주로 복음주의 개신교도 혹은 미국이 한국 전쟁에 개입해 남한을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냈다고 믿는 이들이다.
 
尹, “극우 유튜버 세계관에 빠진 최초의 지도자”
 
〈르몽드〉에서는 현재 한국의 극우 지도자들이 세 가지 방식으로 트럼프의 전략을 베끼고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 야당(민주당)이 공산주의에 물든 ‘내부의 적’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유튜브의 음모론을 적극 활용해 주장을 강화한다. 둘째, 선거 사기라는 수법을 통해 계엄 즉, 민주제도에 대한 위협을 정당화한다. 셋째, 사법 논쟁을 일으킨다. 트럼프는 1·6 의사당 난입 사태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기소됐지만 2024년 7월, 미국 연방대법원에 의해 법적 처벌을 면했다. 법원은 재임 중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상 면책 특권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심지어 트럼프는 재집권을 시작한 1월20일, 취임과 함께 1·6 폭동 사태로 기소된 1500여 명을 사면하고 극우 인사들을 감형했다.
 
트럼프의 이같은 행보는 윤석열 지지자들에게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 지금의 고난이 윤석열의 재기와 함께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실제 윤석열 법적 대리인단들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 ‘트럼프 판결’을 인용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억지 주장에 가깝다. 미국 헌법에는 대통령의 형사상 면책특권 관련 규정이 없지만 우리는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면책특권 범위가 명시된 조항(헌법 제84조)이 엄연히 존재한다. 미국에서도 ‘헌법적 권한 안에서 이루어진 공적 행위’만을 면책대상으로 보고 있다. 윤석열은 헌법에서 규정한 요건과 형식을 충족하지 않은 채 비상 계엄을 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월20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60대 대통령 취임식의 일환인 총사령관 무도회에서 무대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AP Photo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월20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60대 대통령 취임식의 일환인 총사령관 무도회에서 무대에 올라 연설하고 있다. ⓒAP Photo
 
〈르몽드〉는 트럼프가 윤석열을 구할 것이라는 한국 극우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측은 한국의 위기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지적한다. 최근 트럼프가 한국의 계엄 이후 상황에 대해 언급한 것은 단 한 차례다. 1월18일 미국 CBS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모두가 나를 혼돈이라고 부르지만 한국을 보라”라고 농담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적어도 트럼프는 자신이 ‘혼돈’이라는 것을 안다. 트럼프는 극우 지지자들을 활용할 뿐 이들의 주장에 빠져있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윤석열은 다르다. 1월4일자 〈뉴욕타임즈〉 기사는 이 점을 짚는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극우 유튜브의) 알고리즘 중독으로 인해 시작된 세계 최초의 반란일 가능성이 크다.” 극우 유튜브 세계관에 빠진 최초의 정치 지도자라는 것이다.
 
외신들은 트럼프의 재집권과 함께 윤석열을 위시한 한국 극우들의 ‘반란’을 지켜보고 있다. 〈르몽드〉는 ‘상대방에 대한 복수’가 한국 정치의 특징이 되었다고 짚으며 일부 유튜버가 쏘아올린 극우적 상상력과 세계관이 한국의 정치적 분열을 강화할 것이라 전망한다. “보복의 악순환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정치와 사회에서 좌파와 우파의 분열은 심화될 것이다” 한국은 타협과 상호존중이라는 민주적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는가? 비상계엄 직후 해외에서 주목한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은 한달 만에 전혀 다른 질문 앞에 섰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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