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tcha.com.ne.kr/king/goguryo/king11.htm 


동천왕(東川王)

고구려 11대 왕으로서 이름은 우위거(憂位居)이며, 초명은 교체(郊彘)이다. 산상왕(山上王;재위197-227년)의 아들로서 동양왕(東襄王)이라고도 하며, 213년 태자로 책봉되었다. 어머니는 관노부(灌奴部) 주통촌(酒桶村) 사람으로 산상왕의 작은 왕후이다. 그의 출생과 관련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즉, 207년(산상왕 11) 11월에 교제(郊祭)에 쓸 돼지가 달아나서 담당자가 쫓아가서 관노부(灌奴部)  주통촌(酒桶村)에 이르렀으나 머뭇거리다가 잡지 못하였는데, 20세 쯤 되는 아름답고 요염한 한 여자가 웃으면서 앞으로 가서 잡으니 그 후에야 쫓아가던 사람이 잡을 수 있었다. 산상왕은 그것을 듣고 이상하게 여겨, 그 여자를 보려고 밤에 몰래 여자의 집으로 가서, 시종을 시켜 말하게 하였다. 그 집에서는 왕이 온 것을 알고 감히 거절하지 못하였다. 왕은 방으로 들어가 여자를 불러서 관계하려 하자, 여자가 고하였다. “대왕의 명을 감히 피할 수 없으나, 만약 관계하여 아들을 낳으면 버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왕은 그것을 허락하였다. 자정이 되어 왕은 일어나 궁으로 돌아왔다. 그후 208년에 그곳의 한 처녀가 산상왕의 아들을 낳았다. 처녀는 소후(小后)에 봉해졌고, 교제(郊祭)에 쓸 돼지의 일에서 시작되어 그 어미를 침석에 들게 하였으므로, 그 아들의 이름을 교체(郊彘)라 하게 된 것이었다. 또한 중국의 진수가 기록한  삼국지 위서에 동천왕의 출생과 관련하여 이렇게 쓰여있다. 『주몽의 후손 궁(宮; 태조왕)은 나면서부터 눈을 뜨고 볼 수 있었는데 이 사람이 태조이다. 지금의 왕은 태조의 증손인데 역시 나면서부터 사람을 보는 것이 증조 궁과 비슷하였다. 고구려에서 서로 비슷한 것을 불러 위(位)라고 하므로 이름을 위궁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왕은 어질고 마음이 넓었다. 그의 치세는 중국이 위(魏),오(吳),촉(蜀)으로 대립하고 있던 삼국시대였다.

228년 졸본(卒本)에서 시조묘(始祖廟)에 제사하였다.

230년 7월에 국상 고우루(高優婁)가 죽자, 우태 명림어수(明臨於漱)를 국상(國相)으로 삼았다.

234년 위(魏)나라가 사신을 보내 화친하였다. 9월에 태후 우씨(于氏)가 죽었다. 태후는 임종시에 유언하였다. “내가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였으니 앞으로 지하에서 무슨 면목으로 국양(國壤)을 뵈올 것인가? 여러 신하들이 만약 차마 [나를] 구렁텅이에 떨어뜨리지 않으려거든 나를 산상왕릉 곁에 묻어주기 바란다.” 마침내 그 유언대로 장사지냈다. 그리고 그해 중국 위(魏)나라에서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맺었다. 

236년(동천왕 10) 오나라 손권(孫權)이 사신 호위(胡衛)를 파견하여 화친을 청해 왔으나 사신을 죽여 위(魏)나라에 보냈다.

237년에 위(魏)나라에 사신을 보내 연호를 바꾼 것을 축하하였다. 이 해가 경초(景初) 원년이다. 참고로 위나라의 연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20-226년까지 황초(黃初), 227-232년까지 태화(太和), 233-236년까지 청룡(靑龍), 237-239년까지 경초(景初), 240-248년까지 정시(正始), 249-253년까지 가평(嘉平), 254-255년까지 정원(正元), 256-259년까지 감로(甘露), 260-263년까지 경원(景元), 264년 함희(咸熙)를 사용하였다.

238년에는 위나라가 공손 연(公孫淵)을 토벌할 때 군사 1,000여 명을 보내어 위를 도왔다. 공손 연(公孫淵)은 228년 숙부 공손 공(公孫恭)의 지위를 빼앗아, 제4대 공손씨가 되었던 인물이다.

242년에 중국과 낙랑군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인 서안평(西安平)을 공격하였다.

243년 정월에 왕자 연불(然弗)을 세워 왕태자로 삼고, 나라 안에 사면을 베풀었다.

245년 3월에 동해 사람이 미녀를 바치니 왕은 그 여자를 후궁으로 맞아들였다.

246년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丘儉)의 반격을 받았으나 왕은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비류수에서 맞아 싸워 크게 이기고 적 3천여 명을 베었다. 군사를 이끌고 다시 양맥(梁貊)의 골짜기에서 싸워서 또 이기고, 3천여 명을 베거나 사로잡았다. 왕은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위나라의 대군이 오히려 우리의 적은 군대보다 못하고, 관구검이란 자는 위나라의 명장이지만 오늘 [그의] 목숨이 내 손아귀에 있다.” 그리고는 철기(鐵騎) 5천을 거느리고 나아가 공격하였다. [관구]검이 방형의 진[方陣]을 치고 결사적으로 싸우니, 우리 군대는 크게 궤멸되고 죽은 자가 1만 8천여 명이었으며, 왕은 기병 1천여 기(騎)를 데리고 압록원(鴨?原)으로 달아났다. 그해 10월 환도성(丸都城)이 함락되고, 장군 왕기(王)의 추격으로 강계(江界)·장진(長津)·황초령(黃草嶺)을 거쳐 남옥저(南沃沮) 방면으로 피신했고 다시 북옥저 지방으로 피난했다. 이때 용장(勇將) 밀우(密友)와 유유(紐由)의 계책으로 적을 격퇴시켰다. 즉, 동부(東部)의 밀우(密友)만이 곁에 있다가 왕에게 말하였다. “지금 추격병이 가까이 닥쳐 와서 형세가 벗어날 수 없습니다. 청컨대 신이 죽을 각오로 막겠습니다. 왕께서는 달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결사대를 모집하여 그들과 함께 적진으로 가서 힘껏 싸웠다. 왕은 몰래 빠져나가 산 골짜기에서 흩어진 군졸을 모아 스스로 호위하면서 “밀우(密友)를 찾아 오는 자에게는 후하게 상을 주겠다.”고 말하였다. 하부(下部)의 유옥구(劉屋句)가 나서며 “신이 가보겠습니다.” 하고, 전장에서 밀우가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곧 업고 돌아왔다. 왕은 그를 무릎에 눕혔는데, 한참만에 이윽고 깨어났다. 왕은 몰래 이리저리 돌아서 남옥저에 이르렀으나, 위(魏)나라의 군사가 좇아오기를 그치지 않았다. 왕은 방도가 막히고 기세가 꺾여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데, 동부사람 유유(紐由)가 나서며 말하였다. “형세가 매우 위급하나 헛되이 죽을 수는 없습니다. 신에게 어리석은 계책이 있습니다. 청컨대 음식을 가지고 가서 위나라 군사에게 제공하면서 틈을 엿보아 그 장수를 찔러 죽이려고 합니다. 만약 신의 계책이 성공하면, 왕께서는 분연히 공격하여 승부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좋다”고 하였다. 유유가 위나라 군대로 들어가 거짓으로 항복하며 말하였다. “우리 임금이 대국에 죄를 얻어서 도망쳐 바닷가에 이르렀으나, 몸 둘 땅이 없어서 장차 진영 앞에 나와 항복을 청하고 목숨을 맡기려고, 먼저 저를 보내 변변치 못한 음식을 가지고 와서 부하들에게 먹이려 합니다.” 위나라 장수가 그 말을 듣고 그 항복을 받으려 하였다. 유유는 식기에 칼을 감추고 앞으로 나아가, 칼을 빼서 위나라 장수의 가슴을 찌르고 함께 죽으니, 위나라 군대가 마침내 어지러워졌다. 왕은 군사를 세 길로 나누어 급히 공격하니, 위나라 군대가 소란해져서 군진을 이루지 못하고 마침내 낙랑(樂浪)으로부터 물러갔다. 왕은 나라를 회복하고 공을 논하였는데, 밀우와 유유를 으뜸으로 삼았다. 밀우에게는 거곡(巨谷)과 청목곡(靑木谷)을 주고, [유]옥구에게는 압록원과 두눌하원(杜訥河原)을 식읍으로 주었다. 유유에게 벼슬을 추증하여 구사자(九使者)로 삼고, 그 아들 다우(多優)를 대사자(大使者)로 삼았다.

하지만 환도성이 복구할 수 없을 만큼 파괴되어 247년에 수도를 임시적으로 동황성(東黃城; 지금의 평양성)으로 옮기고 백성과 종묘사직을 옮겼다. 

248년에는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화친을 맺었다. 9월에 왕이 세상을 떠나 시원(柴原) 에 장사지내고  시호를 동천왕이라 했다. 나라 사람들이 그 은덕을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가까운 신하 중에 자살하여 따라 죽으려고 하는 자가 많았으나, 새 왕은 예가 아니라고 여기고 그것을 금하였다. 장례일이 되어 묘에 와서 스스로 죽는 자가 매우 많았다. 나라 사람들이 땔나무[柴]를 베어 그 시체를 덮었으므로, 마침내 그 땅을 시원(柴原)이라고 이름하였다.

그의 맏아들 연불(然弗:延弗)이 중천왕이 되었다.

<두산대백과사전>참


      동천왕(山上王) - 한국역대인물,한국사DB,위키 http://tadream.tistory.com/329
      동천왕 - 위키 http://tadream.tistory.com/328
      동천왕 : 신하와 백성의 사랑을 받은 고구려 11대왕 - 네이버캐스트  http://tadream.tistory.com/351 
      [홍순래의 꿈으로 본 역사] 〈12〉 고구려 동천왕 탄생설화 - 스포츠경향  http://tadream.tistory.com/400
      상대를 깔봐서 큰 코 다친 '동천왕' - 임동주  
http://tadream.tistory.com/401
      동천왕(東川王) - 차석찬  
http://tadream.tistory.com/443
      
고구려왕 일대기 (11대 동천왕) - jo29694631  http://tadream.tistory.com/200  (비공개)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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