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196352
* 2005년 기사라 현재와 좀 차이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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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혼,고구려는 지금 ⑻] 금강유역 남성골산성
국민일보 | 기사입력 2005-03-01 15:56 | 최종수정 2005-03-01 15:56
금강 유역에 위치한 충북 청원군 부용면 남성골산성은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 유적 가운데 가장 남쪽에 위치한다. 남성골산성에서는 국내 최초로 고구려계 토기 가마터가 발굴됐다. 이는 이곳이 군사 기능 외에 주거 기능까지 겸했다는 의미로 고구려가 금강 유역까지 진출한 뒤 안정적 지배권을 형성했음을 보여준다.
여러 도로·철로가 지나는 남성골산성은 이달 중순 산성 자락을 통과하는 지방도로 터널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어서 훼손이 우려되고 있다. 또 산성 일대는 삼국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이 9개나 발견된 유적 밀집지역이지만 발굴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 터널공사로 훼손이 우려되는 산성
해발 106m 남성골산성은 둘레가 1㎞ 이상으로 추정된다. 2001년과 2002년 약 300여m 구간을 발굴하자 고구려 고유 화살촉과 장동호(몸체가 긴 항아리) 등의 토기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해발 106m 남성골산성은 둘레가 1㎞ 이상으로 추정된다. 2001년과 2002년 약 300여m 구간을 발굴하자 고구려 고유 화살촉과 장동호(몸체가 긴 항아리) 등의 토기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지난 1월말 발간된 충북대 박물관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골산성은 평양 청암리토성과 비슷한 이중 목책 성벽 양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토기가마 14개와 구들과 부뚜막을 가진 집터,저장 구덩이가 발굴돼 남성골산성은 단순한 방어 요새가 아닌 생산,소비,저장 구조를 갖춘 하나의 독립된 도시에 가깝다고 학계는 해석했다. 남성골산성에서 발굴된 숯을 탄소연대 측정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성의 축조시기는 대체로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됐다.
특히 이곳은 금강에서 1㎞도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금강 건너에는 백제의 옛 수도 공주가 있어 고구려 남하정책 거점성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주거 기능까지 갖춘 산성이 발견된 것은 중원고구려비가 있는 충주 중심 중원문화권에서 금강 유역으로까지 고구려의 세력권이 확대됐음을 말해주는 셈이다.
남성골산성 입구에는 충북대박물관의 조사·발굴지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쓸쓸히 서 있었다. 마지막 조사가 끝난 지 2년이 다 돼가는데도 후속조치가 없는 채 발굴 지역을 덮은 파란색 보호막마저 바람에 날아가 유적은 눈비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산성 바로 아래 산자락은 지방도 터널 기초공사로 일부가 절개돼 잿빛 콘크리트로 하얗게 뒤덮혀 있었다. 충북도는 청원군 물류터미널로 이어지는 6차선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성 주변에 300m와 370m인 상하행선 터널을 뚫을 예정이다. 본격적인 터널 공사가 시작되면 산성 둘레 36m가 파괴될 것이라고 충북도측은 밝혔다. 도청 관계자는 “터널 구간은 산을 파헤쳐 공사를 한 뒤 다시 흙을 덮는다”며 “터널공사 후 복원하기 위해 유구본(유적 형태의 본)을 모두 뜬 상태고 예산도 이미 확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번 파괴된 유적이 원형대로 복구될 지는 미지수다.
산성 정상에 오르자 산성 주변의 도로와 철로를 한눈에 들어왔다. 서쪽으로 경부고속전철과 40번국도,경부고속도로가 보였고 동쪽으로 경부선 철도가 위치해 있었다. 1500여년전에도 산성은 주요 교통로를 지키는 핵심 거점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산성 바로 아래는 수천평 규모의 군수물자 창고가 세워져 있으며,산자락 일부는 창고 담장을 쌓는 과정에서 훼손돼 있었다.
◇ 예산부족으로 사장되는 유적 밀집지
전문가들은 부용면 지역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 성이 밀집해 있고 고구려 관련된 지명도 많아 조사 및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남성골산성 반경 2㎞ 이내에는 성이 9개나 몰려있어 국내에서 유적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남성골산성 일대 봉우리 마다 산성이 있는 셈이다. 충북대 차용걸 교수는 “인근 쪽두리산성에서도 고구려계 토기조각이 수집돼 이 일대에서 고구려 유적과 유물이 추가로 발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용면 지역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 성이 밀집해 있고 고구려 관련된 지명도 많아 조사 및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남성골산성 반경 2㎞ 이내에는 성이 9개나 몰려있어 국내에서 유적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남성골산성 일대 봉우리 마다 산성이 있는 셈이다. 충북대 차용걸 교수는 “인근 쪽두리산성에서도 고구려계 토기조각이 수집돼 이 일대에서 고구려 유적과 유물이 추가로 발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쪽두리산 너머 문곡리 ‘대국터’는 고구려 장군 연개소문이 이 지역을 ‘대국지로’(大國之路)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대국터 부근 부호리 황성산(皇城山)은 연개소문이 도성터 감이라며 성을 개축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강 너머 대전에는 연개소문의 이름을 딴 ‘소문성’도 있다.
그러나 충북대 학술조사단 등 민간 조사단은 워낙 방대한 이 일대를 발굴조사할 엄두도 못내고 있다. 고구려 남진정책의 거점성이라는 남성골산성 조차 터널이 관통하는 일부에만 발굴이 이뤄졌기 때문에 전체 규모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지방자치단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청원군 관계자는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대대적 조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남성골산성은 국내 최대 고구려 주거·군사 복합유적지로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면서 “예산 부족으로 발굴은 제대로 못하면서 도로공사만 능사냐”고 안타까워했다.
청원=강주화기자 rula@kmib.co.kr
<동행취재 차용걸 교수>
△충남대 사학과 졸,동 대학원 석·박사.
△2001∼2002년 책임조사원으로서 충북 청원 남성골산성을 발굴. 1982년 이후 충북 청주 신봉동 백제고분군,충북 충주 장미산성 등 50여 곳을 발굴
△현재 충북대 역사교육과 교수,문화재전문위원,성곽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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