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ulturedic.daum.net/dictionary_content.asp?Dictionary_Id=10032025
고구려 무용의 개요
고구려 고분인 장군총, 무용총, 각저총, 수렵총 등에서 발견된 벽화는 선의 묘사와 색채의 조화가 생동하는 박력을 느끼게 하고 말을 달리는 무사의 모습은 기마 민족다운 고구려인의 웅건하고 패기에 찬 실물을 보는 듯하다. 또 무용총의 벽화에서는 전문 무용가와 음악인이 독립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의 제천 의식으로 10월에 거행되던 동맹은 천신에 대한 감사와 기원의 추수 감사제로서 또한 전 국민이 추앙해 받드는 조상신인 수신(隧神)을 함께 모시는 거룩한 행사였다. 이 밖에도 고구려에서는 성신(星神)과 사직신(社稷神)에게 각각 제사를 지냈다.
동맹을 비롯한 이와 같은 제신에 대한 국가의 강대한 제사에는 존엄한 음악과 신비로운 무용이 그 중추가 되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그 내용과 형태가 과연 어떠하였을까가 문제인데, 고구려인의 강건하고 용맹한 기질로 미루어 매우 직선적이요 동적인 모습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14에 의하면 고구려는 1세기 초기에 중국과 접촉을 하였다. 서역과의 교통이 열리고 문물이 수입되기 시작한 것은 한 무제 때이다(기원전 128∼123). 유명한 실크로드의 개척이 이루어진 후로 서역계의 무악(舞樂)이 전래되어 비파와 공후 그리고 호악(胡樂)과 호무(胡舞)가 전해졌다. 반대로 수와 당의 무악에 영향을 끼쳐, 칠부기(七部伎), 구부기(九部伎), 십부기(十部伎)와 같은 궁정 연회 무악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고구려는 특히 무악이 발달하여 오히려 중국에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또한 고구려는 광대한 만주와 요동지방을 바탕으로 강한 국가를 형성하였다. 왕조 체제가 굳건하여 지배 계층의 무덤까지 당시의 위세 당당했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 많은 고분이 발굴되고 있어 고분 벽화와 유물을 통해 당시의 문화 예술과 무용 자료를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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