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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숨겨둔 "서우망월"..천년넘게 맑은물 쏟아내
역사의 숨결어린 요동 - 고구려 유적 답사기행<9>
중부일보 2010.03.08 남도일보 2012.01.26 00:00
우물에서 ‘코뿔소가 초승달을 바라보다’
건안성 북쪽 성벽
성 안에 옛 우물이 있다고 해서 몇몇 사람에게 물어 보았지만 모두 머리를 도리질할 뿐이다. 우리를 안내했던 왕계창 노인도 모른다 하니 필자는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을지 막연했다. 그런데 우연히 수문가에 사는 한 농가에 들렀다. 이 집 앞마당에서는 한 노인이 몇 명의 일손을 데리고 방금 수확한 배를 선별하여 포장한다고 바삐 서두르고 있었다. 필자가 다가가서 말을 건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마을에 옛 우물이 있느냐고 묻자 강충의(姜忠義·73)라는 이 노인은 필자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필자의 동기를 듣고는 우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오래 전 마을 부근 채석장으로 가던 한 청년이 끌고 가던 기다란 채석용 쇠지렛대를 풀밭에 떨어뜨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방금 떨어뜨린 쇠지렛대가 감쪽같이 사라졌단다. 당황한 청년이 풀밭을 뒤지니 쇠지렛대 머리 부분이 풀밭 구멍 속에 삐죽 내밀고 있어 빼내어 보니 물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파 보니 지름 약 1.2m의 커다란 청석판이 나왔고 그 아래에 돌로 쌓은 우물이 보였다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은 연개소문이 망해서 이곳을 떠날 때 묻어둔 우물이라고 했다. 당시 이 우물을 방치한 채 세월이 흐르다 보니 그 자리가 흙에 덮이면서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게 됐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이곳에 우물물이 있으니 그 주변에도 지하수가 있지 않을까 해서 마을사람들은 우물을 파려고 몇 번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이 마을의 음용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진정부(鎭政府)에서도 그 근처에 우물을 파보았으나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강충의 노인의 원적은 산동으로,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한다. 이 노인은 원래 금전산 동쪽 배나무 군락이 있는 곳에서 약 150m 떨어진 곳에 살았다. 지금은 수문 근처로 이사했는데 원래 살던 집은 아들 내외와 손자가 함께 살고 있다 한다. 석공 출신인 이 노인은 마실 물이 없어 멀리서 길어 와야 하는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재작년에 이웃들과 함께 배나무 밭 근처의 우물터를 온통 파헤친 끝에 청년이 발견했다는 청석판을 찾아냈다. 그들은 청석판을 들어내고 밑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우물 벽과 우물터를 새롭게 정비하였으며, 비닐 관으로 우물물을 산비탈 아래에 있는 집으로 끌어다 함께 음용하고 있다. 필자는 강충의 노인의 부탁을 받고 우리를 이 우물터까지 안내해준 그의 손자 강광인(23·姜廣仁)씨를 따라 그가 살고 있는 집안 물독에 받아 놓은 우물물을 마셔 보았다. 힘들게 찾게 된 우물물이어서인지, 아니면 천년이 훨씬 넘은 우물물이어서인지 맛이 유달리 시원하고도 달콤했다.
강광인씨의 말에 의하면 이 우물물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넘치는 법이 없다고 한다. 더 신기한 것은 매달 음력 초하루쯤이면 이 우물물이 각별히 맑아진다 한다. 특히 구름 없는 밤이면 산성 서남쪽 등구산 봉우리와 창공에 떠있는 초승달이 이 우물 수면에 비치는데 그 모양이 꼭 코뿔소가 달을 쳐다보는 것과 흡사하여 이 우물을 서우망월(犀牛望月)이라고 낭만적인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연개소문의 고장다운 현지인의 자랑
일부 사서에서 연개소문을 포악하고 잔인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 반면, 개주에서는 연개소문을 마치 신처럼 받들고 있다. 고려성촌이나 비운채에서는 물론, 청석령 다른 지역에서도(심지어 개주시 인근 지역까지도) 연개소문 화제가 나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서로 뒤질세라 먼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전설에 따르면 연개소문은 키가 작고 채수염을 보기 좋게 길렀으며 양 어깨에는 늘 칼 두 자루를 엇박자로 꽂고 활도 메고 다녔다. 연개소문은 칼을 잘 쓰고 활도 잘 쏘았는데 칼을 쓸 때는 공중에서 번개처럼 번쩍이었고 활을 쏘면 말을 달리면서도 백발백중이었단다. 그는 무예가 출중하였을 뿐 아니라 붓으로 글을 쓰면 명필이고 천문지리에도 통달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고려성(건안성) 밖에서 아무리 우물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데 산성 안 돌산 비탈에서 우물을 다섯 곳이나 파냈으니 풍수지리를 모르고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현지의 나이 든 사람들은 연개소문에 대해 마치 한 고장 사람을 자신이 직접 본 듯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했고, 그와 같은 뛰어난 장수가 있던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개주 지역은 역사적으로 여당(麗唐) 전쟁의 최전방 전쟁터여서 그 시기의 전설이 가장 많이 전하는 곳으로 이름 있다. 전설이 많았던 것은 연개소문이라는 역사적 인물과 함께 개평(蓋平·연개소문의 군사를 평정시켰다는 의미)이라는 지명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여기에서 전해지는 당나라 역사인물의 설화도 고구려와 연개소문에 관련된 것이 많다.
이를테면 비운채 북쪽 청석령 저수지 북쪽 기슭에 그리 높지 않은 작은 산이 있는데 산 위에는 ‘당왕산(唐王山)’이라 새긴 비석이 있고 말발굽 같은 작은 돌 구덩이가 도처에 널려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당 태종 이세민은 이곳에서 당나라군이 고구려 건안성을 오랫동안 공격했으나 함락하지 못하자 울적해져 매일 말을 타고 이 산꼭대기를 오르내리며 건안성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10여 일을 그렇게 오르내리니 그가 다니던 곳에 말발굽 자국이 찍히어 오솔길이 생겼다고 해서 후세사람들이 ‘당왕산’이라고 했다. 우리가 이 산에 올라가 보았더니 여기에는 도로포장에 쓸 골재를 채취한다며 온통 파헤쳐져 있고 ‘당왕산’이라고 새긴 비석만이 외로이 하늬바람에 떨고 있었다.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령조선문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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