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857693
장수왕[長壽王,394~491]
고구려 제20대 왕(재위 413~491).
본명 : 거련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기고 적극적으로 남하정책을 추진하여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였다.
이름은 거련(巨連)·연(璉)이며,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의 맏아들이다. 모습이 괴걸(魁傑)하고 지기(志氣)가 호매(豪邁)한 대장부로서 409년(광개토대왕 19) 태자로 책봉되고, 413년 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그해 동진(東晉)에 사신을 파견하여 국교를 맺었으며, 414년에는 지금의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광개토왕비를 건립하였다. 427년(장수왕 15)에는 도읍을 퉁거우 지방의 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平壤)으로 옮기고 적극적으로 남하정책을 추진하였다.
중국에 남조의 송과 북조의 북위가 대립하는 남북조시대가 열리자 장수왕은 중국의 각국과 다중적인 외교관계를 통하여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였다. 436년(장수왕 24)에 북연(北燕)의 왕 풍홍(馮弘)이 고구려로 망명해 온 사건과 466년(장수왕 54년)에 북위(北魏)의 청혼을 거절한 일로 북위와 갈등을 빚기도 하였으나 백제와 신라의 위협을 돌파하고자 북위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였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위협을 느낀 백제는 신라와 함께 연합을 추진하여 '나제동맹'을 맺었다. 또한 백제 개로왕(蓋鹵王)은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공격에 대한 군사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북위는 이 사실을 고구려에 알려주었고 장수왕은 백제 공격을 준비하였다. 승려 도림(道琳)을 백제에 첩자로 파견하여 백제의 허실을 탐지하는 한편 백제의 국고와 민력을 소모시키고 나서, 475년 군대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사로잡아 죽였다. 이로 인하여 백제는 수도를 웅진(熊津;지금의 충청남도 공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450년 실직(悉直;지금의 강원도 삼척)에서 고구려 장수가 신라에 의하여 살해되고 464년에는 신라에 주둔하던 고구려 군인 100명이 살해되자 468년(장수왕 56)에 고구려는 말갈 군사와 함께 신라의 실직성을 공격하였다. 481년에는 호명성(狐鳴城) 등 7성을 함락시켜 미질부(彌秩夫;지금의 경상북도 흥해)까지 진군하였다.
이로써 고구려는 동으로는 훈춘[琿春], 남으로는 아산만(牙山灣)에서 동쪽의 죽령(竹嶺)에 이르렀고, 북서쪽으로는 랴오허강[遼河] 이동(以東)의 만주지방 대부분에 해당하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였다. 이밖에 내정개혁에도 힘을 기울여 부족제도를 지방행정제도로 고쳐 5부를 신설하는 등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참조항목
20대 장수왕 관련글
장수왕(長壽王) - 한국역대인물,한국사DB,위키 http://tadream.tistory.com/364
장수왕 - 위키 http://tadream.tistory.com/363
장수왕 : 고구려의 정치,사회,문화의 전성기 - 네이버캐스트 http://tadream.tistory.com/378
장수왕[長壽王,394~491] - doopedia http://tadream.tistory.com/691
하나도 모르고 쓰는 역사 이야기<42>제20대 장수왕(1) - 광인 http://tadream.tistory.com/696
고구려왕 일대기 (20대 장수왕) - jo29694631 http://tadream.tistory.com/209 (비공개)
http://blog.naver.com/jo29694631/10109203941 (원문)
장수왕[長壽王,394~491]
고구려 제20대 왕(재위 413~491).
본명 : 거련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기고 적극적으로 남하정책을 추진하여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였다.
이름은 거련(巨連)·연(璉)이며,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의 맏아들이다. 모습이 괴걸(魁傑)하고 지기(志氣)가 호매(豪邁)한 대장부로서 409년(광개토대왕 19) 태자로 책봉되고, 413년 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그해 동진(東晉)에 사신을 파견하여 국교를 맺었으며, 414년에는 지금의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현[集安縣] 퉁거우[通溝]에 광개토왕비를 건립하였다. 427년(장수왕 15)에는 도읍을 퉁거우 지방의 국내성(國內城)에서 평양(平壤)으로 옮기고 적극적으로 남하정책을 추진하였다.
중국에 남조의 송과 북조의 북위가 대립하는 남북조시대가 열리자 장수왕은 중국의 각국과 다중적인 외교관계를 통하여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였다. 436년(장수왕 24)에 북연(北燕)의 왕 풍홍(馮弘)이 고구려로 망명해 온 사건과 466년(장수왕 54년)에 북위(北魏)의 청혼을 거절한 일로 북위와 갈등을 빚기도 하였으나 백제와 신라의 위협을 돌파하고자 북위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였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위협을 느낀 백제는 신라와 함께 연합을 추진하여 '나제동맹'을 맺었다. 또한 백제 개로왕(蓋鹵王)은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공격에 대한 군사원조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북위는 이 사실을 고구려에 알려주었고 장수왕은 백제 공격을 준비하였다. 승려 도림(道琳)을 백제에 첩자로 파견하여 백제의 허실을 탐지하는 한편 백제의 국고와 민력을 소모시키고 나서, 475년 군대를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였다. 백제의 수도 한성(漢城)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사로잡아 죽였다. 이로 인하여 백제는 수도를 웅진(熊津;지금의 충청남도 공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450년 실직(悉直;지금의 강원도 삼척)에서 고구려 장수가 신라에 의하여 살해되고 464년에는 신라에 주둔하던 고구려 군인 100명이 살해되자 468년(장수왕 56)에 고구려는 말갈 군사와 함께 신라의 실직성을 공격하였다. 481년에는 호명성(狐鳴城) 등 7성을 함락시켜 미질부(彌秩夫;지금의 경상북도 흥해)까지 진군하였다.
이로써 고구려는 동으로는 훈춘[琿春], 남으로는 아산만(牙山灣)에서 동쪽의 죽령(竹嶺)에 이르렀고, 북서쪽으로는 랴오허강[遼河] 이동(以東)의 만주지방 대부분에 해당하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였다. 이밖에 내정개혁에도 힘을 기울여 부족제도를 지방행정제도로 고쳐 5부를 신설하는 등 고구려의 전성기를 이룩하였다.
참조항목
20대 장수왕 관련글
장수왕(長壽王) - 한국역대인물,한국사DB,위키 http://tadream.tistory.com/364
장수왕 - 위키 http://tadream.tistory.com/363
장수왕 : 고구려의 정치,사회,문화의 전성기 - 네이버캐스트 http://tadream.tistory.com/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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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모르고 쓰는 역사 이야기<42>제20대 장수왕(1) - 광인 http://tadream.tistory.com/696
고구려왕 일대기 (20대 장수왕) - jo29694631 http://tadream.tistory.com/209 (비공개)
http://blog.naver.com/jo29694631/10109203941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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