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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류왕과 연개소문에 대한 평가는 달라져야 한다
2012/06/19 22:14 lucgodard
연개소문은 우리가 흔히 당나라를 상대로 저항한 구국의 위인으로 평가 받는다. 반대로 영류왕 고건무는 당나라에 아부하다가 맞아죽은 사대주의자로 많은 사람들이 평가한다.
과연 그러한 평가가 정당할까? 우리는 일단 기저에 고구려는 북방의 강국이라서 불패의 신화가 있는것처럼 착각한다. 그러나 항상 고구려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이겨온 것은 결단코 아니다. 더불어 항상 강격책만 쓴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전연의 모용황이나 위나라 관구검에게 탈탈 털린 역사도 존재한다. 너무 단순하게 전쟁이냐 복종하는가? 라는 이분법으로 모든 상황을 보면 많은 것을 잃어버릴수 있다. 영류왕이 화친책을 쓴다고 하여 당나라가 쳐들어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면 영류왕은 그냥 앉아서 나라를 내어주었을까? 그럴리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영류왕이 왜 화친 정책을 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 <영류왕이 유약한 왕인가?> 하는 점이다. 고건무는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을지문덕과 함께 <수서>에도 등장하는 전쟁영웅이다. 고구려 장수들의 이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중국사서에 등장한 인물이라면 대단한 장수라고 볼수 있는데 실제 수나라 수군을 방어한 인물이 바로 고건무이다. 내호아의 정병 수만을 계책으로 격파한 사람이 바로 고건무인데 이 고건무가 바로 영류왕인 것이다. 실제로 이미지가 상반되어서 그런지 영류왕=고건무를 연결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다. 보통 을지문덕은 알아도 고건무의 존재는 모른다. 이렇게 영류왕은 유약한 왕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영류왕이 왜 화친책을 써야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먼저 고수 전쟁은 598년 영양왕의 선제공격을 시작으로 4차 침공이 영양왕 25년이니까 615년이 되겠다. 그러니까 장장 18년간 수나라의 대군과 싸웠다고 볼수 있겠다. 1차 30만, 2차 113만 3800명, 군사수를 알수없는 3,4차를 친다면 적어도 이기간 침공한 적의 숫자는 200만에 이를것이다. 이는 고대 전사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찾아보기 힘든 대전투이다. 알다시피 그래서 수나라는 망했다.
그러면 고구려는 이겼으니 좋았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대의 전쟁이란 남의 땅을 먹고 그 인구를 먹어서 그 생산량을 취해야한다. 왜냐면 전쟁은 많은 물자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고구려 땅에서 방어전을 펼쳤고 전후에 수가 당으로 교체되는 혼란기에도 중원의 땅을 도모한적이 없다. 자신만만하게 선제 공격을 하던 것과 모순되는 점인데 엄청나게 피폐해져 있다는 것은 불 보 듯 뻔하다.
영류왕은 고수 전쟁이 끝나고 얼마안되어 왕위에 오른다. 영류왕은 당장 전쟁을 할 능력이 안된다고 본것이다. 더구나 고구려의 경우 문자왕 이후에 귀족들의 권력다툼이 심해져서 왕권이 강력한 국가가 아니다. 내부 권력 다툼이 수시로 일어나던 상황이라는 것도 문제였다. 당나라는 624년 건국했고 문제가 되는 이세민은 626년에 제위에 올랐다. 644년에 고구려를 침공하게 되는 것이다.
왕위에 오른 영류왕은 영양왕의 적자가 아니라 더구나 이복동생이다. 결국 내부적으로 왕권이 확립되어 있지 못하고 경제는 파탄 상태였을것이다. 여기서 볼 것은 고구려의 전략이다. 유명한 <청야전술>은 성밖의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전술이다. 보통 과거의 전쟁에서 약탈이 허용된 것은 먼저 군량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고 그 주민을 데려가는 것은 바로 국력과 관계가 되기 때문인데 청야 전술은 그런면에서 효과적이지만 자국의 농토도 황폐화시키며 그것은 자연히 인구 감소와 재정 악화를 불러올수 밖에 없다.물자가 훨씬 풍부한 수나라가 망한 것을 생각하면 고구려의 피해는 엄청났을 것이다. 18년간 전쟁을 25년간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을것이다. 더구나 영류왕이 화친책만 쓴것도 아니다. 그 유명한 천리장성을 쌓으면서 북방을 대비하려했던 것이다.
그러면 연개소문은 화친책을 쓰지 않았을까? 그렇지않다. 영류왕과 같이 당으로부터 도교를 수입하고 당태종이 군사를 일으키자 백금을 바치기도 했다. 더구나 연개소문이 영류왕이 온건론에 대항해 강경파로 정변을 일으켰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이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려한 신채호 선생의 생각일뿐이다. 신채호 선생은 훌륭한 분이지만 시대상 어쩔수 없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믿을수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던 것이다.
실제로 연개소문은 증조부때부터 막리지를 한 집안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신흥귀족의 최대세력이었을 것이다. 이에 영류왕은 이 세력을 외부 즉, 천리장성 공사를 감독하게 보내려고 했을 것이고 이런 세력다툼이 원인이 되었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생각이 더 설득력이 크다.
문제는 연개소문이 뛰어난 인물로 추앙받아야 마땅한가 이다. 일단 도덕적인 결함이 충분하다. 신하가 왕을 시해해서 토막내 버린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엄청난 도덕적 결함이다. 실제 당나라가 공격하기 전까지 많은 지방 성주와 귀족들이 그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있는데 그것은 수나라와의 전쟁에서와는 달리 고당전에서는 많은 성주들이 스스로 항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이 진행될수록 더욱더 심화된다.
또한 전쟁 양상도 바뀌었다. 유명한 왜곡은 당태종이 죽을때 <다시는 고구려를 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규모 원정을 준비하던 당태종이 정벌을 중지하라고 했을 뿐이다. 실제 이 시기 완전히 전쟁 양상이 바뀌었다. 당나라는 끊임없이 군사를 보내어 소규모 국지전으로 고구려 국토를 황폐화시켰고 외부로는 고구려를 완전히 고립시켰다. 이 시기 연개소문은 신라의 구원을 거부했고 백제가 망할때도 관여하지 않았다. 실로 국제 정세에 너무 어두웠다고 볼수 있는데 이미 보장왕 20년에 이르면 당나라 군대는 물길로 평양성을 포위하기에 이른다. 21년에도 평양성은 포위되었다. 이는 제해권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했다면 고작 연개소문은 24년을 권력을 잡기위해 정변을 일으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단지 당나라와 싸웠다고 구국의 영웅이라고 평한다면 할 말이 없다.
차라리 어차피 할 전쟁이라면 최대한 미루고 시간을 끌며 최대한 힘을 비축해야하는건 기본적인 전술이다. 더구나 상대가 더 강한 세력일 때는 더욱 그래야 한다. 고구려는 거의 50년간 대군단의 침공을 받았다. 이를 견뎌낼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고구려의 축적된 국력이지 연개소문의 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개소문 사후 내부적으로 분열되기 이전에도 이미 고구려는 주도권을 다 상실한 상태였다.
숱한 고난에서도 700년간 고구려가 버틴 힘은 강경적인 성향만이 아니라 유연성에 기인한다. 고구려는 수도가 함락되어도 멸망하지 않았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원인에 영류왕의 잘못은 찾을수 없다. 하지만 연개소문이 고구려 멸망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여지는 없다. 따라서 영류왕=사대주의자 연개소문=민족영웅이라는 논리는 터무니없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정당하게 말하면 영류왕은 수나라- 고구려 전쟁 영웅으로 연개소문의 쿠데타에 참살당한 왕이고 연개소문은 왕을 시해하고 권력을 독점했으며 밖으로 당나라와 싸웠으며 그의 사후 고구려는 망했다고 평가하는게 옳다. 신채호 선생 이외에 어던 역사적 사실을 보아도 연개소문이 민족 영웅이 될 껀덕지는 없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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