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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병권 장악과 숙청
고구려 연개소문 집권 후 왕권 무력화
2011. 09. 14 00:00 입력 | 2013. 01. 05 07:10 수정
안악 3호분 벽화에 묘사된 고구려 귀족의 행렬도. 연개소문의 행차를 연상할 수 있다. 필자 제공
고구려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오래전부터 권력 장악을 의도했다거나 그에 대한 야심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영류왕이 당에 대해 저자세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연개소문이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유혈 쿠데타는 그의 운명이었다. 성공 여부를 계산할 여유도 없었다. 고구려왕과 귀족들이 원하는 대로 고이 죽을 수 없어 쿠데타를 감행했다. 연개소문은 단순히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고구려 최고위층을 몰살시키고 정권을 잡았다.
그는 이념이나 도덕적 명분과는 거리가 먼 교활한 야수였다. 양심에서 자유로운 사나이, 자기 목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합리성과 현실적 유용성에 대한 판단만으로 행동할 수 있는 사나이, 이런 것이 연개소문이라는 냉혹한 사나이의 본질이었다.
그 야수는 위기의 순간에도 역전의 타이밍이 언제인지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었고, 시간의 틈새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기회를 포착했다. 무엇보다 그의 부하들은 잘 훈련돼 있었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확고했다.
반격의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한순간에 일으켰다. 연개소문이 광장에서 학살을 시작했을 때 그의 다른 부하들은 왕의 죽은 아우 대양의 아들 고장(高藏)을 납치하러 갔다. 집의 문을 쳐부수는 소리가 크게 울렸고, 연개소문의 병사들이 대거 몰려와 집을 삼중사중으로 포위했다.
그들은 왕족인 그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고장은 언제 잡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예상대로 병사들이 자신을 연행했다. 어디로 실려 가는지도 몰라 가마수레 속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문을 통과하는 것 같았는데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궁정이었다. 고장은 수레에서 내려져 병사들에게 끌려가다시피 했다. 그리고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떠밀려 어느 자리에 앉혀졌다. 백부인 왕과 4촌 형인 태자 상권의 피로 이미 더럽혀진 왕좌였다. 고구려 28대 보장왕은 이렇게 연개소문의 허수아비가 됐다. 끊임없이 연개소문의 눈치를 보고 살게 된 그는 정사에 전혀 간여할 수 없었고, 연개소문이 내린 결정에 어김없이 재가를 해주는 자가 도장이었다.
연개소문은 왕을 옹립하면서 동시에 우선 수도의 무력장치를 접수했다. 고구려 수도 평양에는 수도 주둔 중앙사단에 해당하는 대당(大幢)이 있었다. 동서남북과 중앙 5부의 병력으로 구성된 대당의 각 대인들은 고위 귀족들이었고, 대당은 귀족회의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유혈 쿠데타로 대당 병력의 20%를 장악하고 있는 동부대인 연개소문이 병력 80%를 장악하고 있는 4부의 대인들을 제거한 상태였다. 그는 왕명을 들먹여 주인을 잃은 4부의 병력을 장악하고, 4부 대인자리에 자신의 부하들을 앉혔다.
죽은 자들의 부하들은 왕의 인사발령장을 받은 동부 출신 장군들의 부임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했다가는 왕명을 거역한 역적이 된다. 수도의 병력을 장악한 연개소문은 대당의 최고 사령관 대당주(大幢主)인 대모달(막리지)에 취임하고 합법적인 왕명으로 숙청을 단행했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거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을 귀족 80명이 한꺼번에 소환됐고 그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친척 가운데 연륜이 있는 예스맨을 하나 골라 귀족회의 의장직인 대대로의 자리에 앉혔다. 그의 이름은 도수류금류(都須流金流)였다. 이렇게 연개소문은 중앙을 장악했다.
문제는 연개소문이 제거하거나 처형한 자들이 대를 이어 온 귀족가문의 수장들이며, 제각기 방대한 농장과 무사집단과 군사조직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데 있었다. 고위 귀족 180명이 사라졌으니 그 후유증이 작을 수 없었다. 죽은 자들이 만든 부대는 주의대상이 됐고, 그 부대의 고위 장교들과 하사관들 가운데도 숙청자가 나왔다. 주인과 자리를 잃은 자들은 유랑했고, 연개소문의 목을 노리는 낭인이 됐다.
연개소문은 외출 시 경호를 너무나 엄중히 했다. 그는 병사들에 의해 2중 3중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그 대열은 너무나 엄정해 돌발적인 전투 상황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행차가 나갈 때에는 앞서는 선도가 저음의 소리를 크고 길게 질러 사람들을 피하게 했다. 무질서한 사람들의 무리가 시야를 가려서는 경호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치통감’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나갈 때는 반드시 대오(隊伍)를 가지런히 했고, 앞에서 이끄는 사람에게 길게 소리치게 하니 사람들은 모두 달아났는데, 웅덩이나 골짜기를 피하지 아니하니 길에는 다니는 사람이 끊겨서 그 나라 사람들이 이를 심히 고통스럽게 여겼다.”
지방의 장관인 대성주(大城主)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와 숙청도 이어졌다. 제거된 중앙의 귀족들과 끈이 닿아 있는 자들이 우선대상이었다. 왕이 발행한 소환장을 소지한 파발이 지방의 성에 도착하면 대성주들은 자리를 비우고 평양으로 가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왕명을 거부한 대역 죄인이 됐다.
하지만 모든 대성주가 명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희생을 감수하고 성민들과 함께 중앙의 연개소문에게 대항한 경우도 있었다. 징벌은 바로 이어졌다. 연개소문은 군대를 이끌고 와 성을 접수하거나 함락시키고 왕명을 거역한 성주를 잡아갔다.
하지만 그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 가운데 특히 안시성의 성주는 달랐다. 그는 휘하의 장군과 장교들 나아가 성민들의 절대적인 충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안시성의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안시성주가 유능한 지휘관이었다는 것이다.
부하들은 상관의 유무능을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법이다. 얼마 안 있어 당 태종이 세계를 제패한 정예군대를 이끌고 안시성을 쳐들어 올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상관이 필요했다. 연개소문의 말만 듣는 눈치 빠르고 무능한 사람이 성주가 되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연개소문은 안시성주를 해임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왔다. 하지만 성민들이 일치단결해 중앙의 군대를 물리쳤다. 이로써 안시성은 연개소문과 그 일당이 둥지를 틀고 있는 중앙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했다.
안시성의 자치성은 너무나 강고해서 3년 후 의도하지 않은 참사를 낳기도 했다. 645년 당태종의 침공 시 안시성은 구원하러 온 고구려 중앙군과 연계된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그것은 당태종이 우려했던 바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시성 성주는 성을 장악할 우려가 있는 고구려 중앙군의 입성을 거부했다. 안시성의 군수 지원 없이 당태종의 군대와 싸우던 중앙군은 패배했다. 안시성은 중앙군에게도 당군에게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연개소문은 안시성주를 해임하지 못했고, 둘 사이에 일정한 타협이 이뤄졌다. 여기서 일단 연개소문의 지방 성주 교체에 제동이 걸렸던 것 같다. 만일 아무런 일도 없이 연개소문의 사람들로 당나라와 인접한 전방의 대성주들이 모두 교체됐다면 고구려는 당태종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졌을 수도 있다.
장군과 장교들은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순수하게 작전을 짜고 수행해야 한다. 정통성이 결여된 독재자의 눈치를 보는 자가 성주 자리를 차지하면 작전의 순수성이 떨어지고 패전으로 이어진다. 작전에 정치가 개입되면 재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구려 유혈 정변의 상흔이 아물지 않았고, 불확실성이 짙은 상황에서 남쪽 신라에서 초대하지 않은 사람이 찾아왔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절박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안위 문제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신라의 근친왕족 김춘추는 적국 고구려에 새로 등장한 실질적인 통치자 연개소문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서영교 중원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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