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pgr21.com/pb/pb.php?id=freedom&no=28333
* "임진왜란 해전사 - 1. 불멸의 원균 - Pgr21"에서 "1. 경상우수영의 규모" 부분만 따로 가져왔습니다.

경상우수영의 규모
 
처음에 각 수영의 규모는 다 비슷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각 왜변을 겪으면서 주로 침입하는 곳 등 각자의 상황에 맞추어 변형되었다고 하는군요. 임란 즈음에는 각 좌수영은 작아지고 우수영은 커졌다고 합니다. 임란 중에도 심심하면 바뀌고 후에도 바뀌면서 당시 확실한 숫자를 찾기는 어려운 듯 하네요. 가장 확실한 것은 전라좌수영의 5관 5포입니다. 경상좌수영은 현재의 부산 다대포부터 시작해서 동해로 울산 등으로 올라가면서 8포, 전라우수영의 경우 8~11관으로 예상하더군요. 어차피 지도에 나온 보성 왼쪽부터 전라도 해역은 모두 전라우수영 걸로 생각하면 될 겁니다.

그렇다면 경상우수영은? 일단 기본적으로 알려진 건 8관 16포입니다. 이 중 웅천, 진해, 고성, 거제, 사천, 남해, 곤양, 하동의 8관은 확실하다고 보시면 될 듯 하네요. 인터넷에 퍼진 여러 논의를 보면 8관 20포, 11관 19포 등 다양합니다. 전쟁 당시 시점(8관)이나 전쟁 중 시점(11관)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일단 제 지식으로 확신할 수 없으니 이 정도로 해 두죠.

이런 비율로 추산할 수 있는 경상우수군은 최소 40척, 통설로는 70척, 최대 100척입니다. 징비록 등 당대 기록에서도 그렇게 나오구요. 

전쟁이 시작하면서 병력들이 도망가서 다 모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 글에서 적었듯 경상좌수사 박홍 휘하에 경상우수군은 집결했습니다. 이 병력을 천오백에서 이천으로 추산하니 그 때 모일 수 있는 병력은 다 모였다고 봐도 되겠죠. 1, 2군은 주로 동북쪽으로 움직였고 구로다 나가마사가 상륙한 게 19일이니 부산포 서쪽 경상우수영 영역은 아직 적이 오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직격타를 맞은 경상좌도의 병력들이 집결했는데 우수영이 집결하지 않은 건 이상하죠. 최전방에서도 집결에 모두 성공하는데 경상우수영만 안 된다? 이게 사실이라면 원균에게는 시작부터 도망간 다른 장수들보다 더 죄가 있다고 봐야 됩니다.

위에 언급한 8관 중 전쟁 초기에 함락되었다고 기록된 곳은 웅천, 진해, 고성 세 곳 뿐입니다. 그나마 진해는 파선되서 육지로 표류한 60명에게 당했고 현령은 원균과 함께 도망갔다고 돼 있죠. 
 
원균의 공문이 이순신에게 도착한 게 15일, 임란 당일에 보냈다고 생각하면 이틀 거리죠. 전라좌수군이 집결하기 위해 각 관포에 공문을 보내서 모이는 기한을 3일로 잡았습니다. 경상우수영에도 같은 시간을 적용한다면 임란 발발 당일, 혹은 다음 날에 집결을 명령해도 3군이 김해에 상륙하기 전에 모일 수 있으며, 그 두 배로 잡아도 김해 근처가 아니라면 충분히 모일 시간이 있었습니다. 

끝으로 이탁영의 정만록에는 개전 직전 경상감영의 검열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개전 전 달인 3월달에 경상우수영의 모든 관포를 점검했다는 거죠. 대마도에서의 최후통첩 때문에 이일과 신립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점검하던 때였고, 전쟁광인 김수가 점검하던 때입니다. 예정대로의 숫자가 없었다면 분명 문제가 되었겠죠. 준비가 안 돼 있어서 판옥선이 네 척밖에 없었다는 것 역시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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