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국정원, 야권의 약한 고리 통합진보당 공략 의미는?
야권과 ‘촛불’ 타격 효과...안보보수층 결집으로 수세국면 타개 도모
정찬 기자2013.08.28 14:22:25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등 지도부는 28일 국회에서 국가정보원의 압수수색과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갖었다
▲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 등 지도부는 28일 국회에서 국가정보원의 압수수색과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가정보원이 28일 국가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이적동조) 위반 혐의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당 주요관계자들의 자택과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함과 동시에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한동근 전 수원시위원장 등 3명을 체포했다.

국정원은 이번 압수수색과 체포에 대해 이들의 구체적인 혐의내용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함구하면서 3년 전부터 내사 중이었다는 점만 밝혔다. 국정원은 이번 수사가 자신의 고유한 대북업무 일환이란 뜻으로 이번 압수수색이 ‘정치적인 행위’로 비춰질 가능성에 대한 경계감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이 국회 원내정당인 통합진보당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은 ‘정치행위’일 수밖에 없다. 수사결과가 어떻게 결론 나든 수사 진행과정과 수사결과에 따라 여러 차례의 정치적 파장을 낳으면서 정국을 요동치게 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이러한 상황을 가정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즉 국정원의 ‘정치행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이다.

또 국정원은 이미 ‘국정원 대선개입 정국’ 속에서 ‘정치행위’를 해왔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비밀등급을 낮추고 공개한 것 자체는 ‘국정원 정국 물타기’를 위한 정치행위였다. 나아가 ‘NLL(서해북방한계선) 논란’ 당시 국정원 대변인이 나서 ‘NLL포기가 맞다’고 한 것도 정치행위였다.

국정원의 통합진보당 압수수색과 당 관계자 체포는 지금까지의 이러한 일련의 ‘정치행위’의 연장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3년 동안이나 내사하다 이날을 기점으로 시각을 다투듯이 전격적이고 공개적인 요란한 방식의 압수수색과 체포절차에 들어갈 특별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압수수색’ 자체의 정치적 효과마저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이에 이번 국정원의 통합진보당 수사가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또 다른 ‘물타기’ 시도로 보이는 것이다. 국정원이 자신들의 아킬레스건이자 현재 진행 중인 ‘국정원 정국’ 물 타기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새롭고도 보다 강력한 처방전을 들고 나온 것으로 해석된다.

통합진보당은 지난해 5월 ‘주사파 종북논란’과 ‘분당사태’를 겪으면서 한국 정치권으로부터 사실상 ‘이지메’를 당한 정치집단이다. 보수적인 국민 뿐 아니라 야권을 지지하는 국민들 다수로부터도 격리상태에 놓여 있다. 새누리당 지지층을 비롯한 보수층의 상당수는 통합진보당을 ‘반드시 손봐야 한다’는 강한 심리적 기제를 가지고 있고 민주당 등 야권지지층은 ‘함께 하기엔 힘든 상대’로 인식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처한 이러한 고립된 정치적 환경은 지금의 국정원이 보기엔 가장 좋은 ‘먹이감’이었다. 보수층의 정서를 충족시키면서 ‘국정원 정국’으로 결집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야권진영 내부를 균열시킬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국정원의 통합진보당 수사에 대한 대응수위 설정에 어려움이 있다. ‘반북 대결주의’가 압도하는 정치지형 속에서 ‘북한 동조세력’을 비호한다는 비난이 두렵기 때문이다. 또 야권의 두 다른 한 축인 안철수 의원 쪽은 ‘통합진보당’과의 거리두기 행보를 유지하며 뒷짐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통합진보당 사건으로 ‘국정원 정국’의 흐름이 변화될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국정원 정국’을 주도하는 곳은 시민사회의 ‘촛불’과 민주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의 야권이다. 통합진보당은 국정원 대치정국 속에서 주요한 축을 담당했다. 국회 국정조사특위 활동에서 이상규 통합진보당의 활약이 매우 컸고 당 차원에서 ‘촛불집회’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면서 야권지지층이 지녔던 지난해 ‘주사파-종북 논란’의 앙금도 조금씩 희석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국정원의 수사를 계기로 이러한 흐름이 차단되면서 ‘국정원 촛불투쟁의 전열’에도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촛불집회’의 세 확산이 절실한 민주당 등 야권으로서는 이번 사태로 ‘촛불’ 자체가 약화될 것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

‘왕따’ 통합진보당 공격해 보수진영 결집하면서 야권의 ‘촛불’동력이 약화 도모

이러한 국정원의 ‘통합진보당 수사’는 안보보수진영의 전통적인 정치전략과 맥이 닿아있다. 이른바 ‘적 만들기’란 고전적인 정치기법의 동원이다. 보수진영은 현대사에서 ‘외부의 적’을 만들고 이를 통해 ‘내부의 적’을 공격하고 통제해왔다. 미국의 매카시즘이나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우리나라의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정치전략이 일맥상통한다.

한국정치에서 ‘분단과 북한’이란 강력한 ‘외부의 적’의 존재는 보수정치세력의 자양분이 됐고 보수우위의 정치구도를 정착시켜 왔다. 여기에 더해 보수정치세력은 끊임없이 이를 국내정치에 활용했다. 이른바 ‘친북세력’, ‘종북세력’이란 이름으로 정치적 경쟁자를 공격하고 국민들로부터 격리시키려 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보수세력이 지목한 대표적인 ‘친북주의자’였고 김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를 정치적으로 잇는 친노세력이 ‘친북-종북세력’이라는 정치적 공격을 받고 있다. 최근의 ‘NLL논란’과 ‘대화록 공개 논란’은 이러한 보수세력의 단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도 그 연장선상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간의 매개체는 ‘촛불집회’와 ‘국정원’이다. 아직까지 국정원 수사가 목표하는 바가 드러나진 않았지만 통합진보당에 대한 공격지점은 ‘촛불집회’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정원 촛불집회’가 북한의 사주에 의한 것이란 국정원 수사발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통합진보당 내에서 ‘촛불집회’를 통한 정치활동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는 있었을 것만은 분명하고 이는 정상적인 것이다. 여기에 통합진보당이 북한과의 연계됐다는 관련 자료가 나올 개연성도 있다. 통합진보당은 북한에 가장 ‘친화적’인 입장의 정당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정원이 ‘촛불집회’를 ‘친북활동’으로 규정하기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국정원은 이를 통해 ‘국정원 대선개입’이란 수세 국면을 탈출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정치권의 ‘이지메’ 대상이자 ‘왕따’인 통합진보당을 공격하면 보수진영은 지지를 보낼 것이고 야권의 ‘촛불’동력이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정원 개혁 현안도 묻히게 할 수 잇다. 당장 국내 대북, 대공수사권 논란도 통합진보당 수사를 통해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지난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자체개혁 의지를 밝힌 지 이틀 만에 국정원이 전면에 나선 것도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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