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속 ‘국정원’ 정국… 박근혜 ‘출구’ 대신 ‘전쟁’ 선언
민주당 회담 요구 묵살·진보당 국정원 수사, 공안정국 수순… “민주당, 이제 갈 곳 없어, 끝까지 가야”
입력 : 2013-08-28  10:16:28   노출 : 2013.08.28  15:57:56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50일간 지속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대해 댓글사건의 수혜자이면서도 침묵해오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의 도움을 받지도 않고, 대선에서 국정원을 활용하지도 않았다”며 야당을 향해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서 사실상 향후 정국의 정상화는커녕 갈등과 혼란이 예고되고 있다.

이는 결자해지의 주체로 지목된 박 대통령이 장외투쟁중인 야당의 국회 복귀 명분을 스스로 차단한 것이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지난달 국정원에 자체 개혁안을 만들어오라고 한 뒤 최근 국정원의 국내정보파트와 대공수사 기능 폐지 요구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원이 돌연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을 비롯해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을 무더기로 압수수색에 들어가 사실상 국정원 정국에서 야권을 상대로 전쟁을 선언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정원 도움안받고 이용도 안해” 그런데 왜 개혁하나= 박 대통령은 지난 26일 오전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선 때 어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은 일이 없으며, 선거 때 국정원을 활용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대선을 3.15 부정선거에 빗댄 야당 국정조사 특위 위원들의 책임요구 서한에 대해 박 대통령은 “오히려 저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비리와 부패의 관행을 보면서 그동안 과연 무엇을 했는지에 묻고 싶을 정도로 비애감이 들때가 많았다”며 “민생과 거리가 먼 정치와 금도를 넘어서는 것은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정치를 파행으로 몰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문제에 대해선 “야당에서 주장하는 국정원 개혁을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며 “우리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국정원 조직개편을 비롯한 국정원 개혁은 벌써 시작됐다.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국정원을 거듭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선거에서 국정원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서 국정원은 개혁하겠다는 주장이다.

여야 단독회담에 대해 박 대통령은 “민생관련 회담이면 언제든 여야 지도부와 언제든 만나서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강경 돌변 왜? ‘자신감’ ‘야당무시’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은 국정원 스스로 개혁안을 내놓으라면서도 자신이 댓글사건에 어떻게 관여됐는지에 대해선 침묵해왔던 지난달 발언보다도 훨씬 강경해졌다는 평가이다. 2달째 촛불집회, 3주째 민주당의 장외집회가 계속되고 있고, 국정조사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고조된 상태에서 되레 “나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더욱 강하게 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27일 “지난 대선에 결과적으로 이득 본 것은 박 대통령이고, 국민의 절반이 지난 대선에 국정원이 개입했다고 생각하는데, 대통령은 자신의 지지도 67%만 자랑하면서 이 같은 국민의 의사는 왜 외면하느냐”며 “더구나 야당을 파트너가 아닌 졸로 보고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과 독선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박 대통령의 권위주의적인 스타일인 것 같다”며 “선거과정에서 본인이 권영세 김무성의 보고를 받지 못했고, 두사람이 충성경쟁하다 빚어진 무리수로 생각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전 정권에서 빚어진 일로,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해야할 이유를 못느끼는 것”이라는 것.

이강윤 평론가는 “최근 대북정책 성과에 대한 평가에서 오는 정치적 자신감을 갖고, 자신이 원칙을 지키면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야당이 유리한 판에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면도 요인으로 지목됐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장외투쟁 내내 김한길 대표체제는 끌려가는 인상이었다”며 “투쟁 성과가 없고, 국민여론은 좋지 않은 반면, 되돌아갈 명분도 없다는 점을 박 대통령이 알고, ‘국정원 문제를 내게 얘기하지 말라, 국정원 개혁은 우리가 주도하겠다’고 나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김한길 대표가 ‘선 단독회담 후 5자회담’을 제안한 것을 두고 박상병 평론가는 “국민들이 볼 때 민망하고 초라한 제안인 반면, 박 대통령은 자신감이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고 지적했다. 이강윤 평론가도 “야당이 국정조사에서 ‘경찰이 명백하게 축소수사했다’는 것 등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한 채 특검을 주장해 오히려 점수를 잃었다”고 평가했다.

▷출구전략인가, 전쟁선포인가 “아예 무시해버린 것”

이번 박 대통령의 발언은 사태해결을 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강윤 평론가는 “출구전략으로 내놓은 것인데, (화끈하지 못하고) 너무 미적지근하다”며 “단독회담을 받으면 한단계 높은 정치력을 발휘해 결국 박근혜가 야당을 이기는 것인데, 그렇게 안한다. 사고체계가 갇혀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야권에게 국회로 돌아올 명분을 주기는커녕 아예 그 근거를 차단했다”며 “당분간 야당은 강경기를 고수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내다봤다.

박상병 평론가도 “박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출구전략이 아니라 마지못해 내어준 화답”이라며 “대야선전포고라고 할 것도 안된다. 야당을 무시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내방식대로 가겠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새누리 “논의 한단계 진전” “회담 위한 물밑논의할 것”= 새누리당은 여야 대화를 위한 일보 전진의 의미로 해석했다. 초선 의원인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27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 발언은 박 대통령의 스타일로, 애초부터 예상했던 것”이라며 “박 대통령은 국정원 사건이 실제 선거에 도움된 것도 없는데, 국정원과 자기를 엮는 것을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한 것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하 의원은 “선거개입을 전제로 한 국정원 개혁문제는 용인할 수 없겠지만, 그게 아닌 국정원 개혁안이 나오고 민주당의 입장이 정리되면 회담이 가능하다는 의미”라며 “선거법 위반은 안되지만 국정원법  위반 문제를 들고나오면 회담을 위한 협상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세훈(왼쪽)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연합뉴스

유일호 새누리당 대변인은 “장외투쟁이 장기화되지 않도록 대화를 해야 한다고 본다”며 “양보를 해야 하는데, 아마도 물밑에서 협상을 통해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를 두고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원론적인 얘기를 나누는 회담안이 나올 경우, 이를 민주당이 받는 순간 당 안팎의 비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박지원 “우리가 갈 곳은 없다…비난받더라도 끝까지 갈 수밖에”= 민주당 역시 강경한 분위기이다. 박지원 의원은 “내가 협상론자이지만 장외투쟁할 때 김 대표에게 결단하라고 했다”며 “우리의 장외투쟁은 실패한다, 그러나 이 실패를 통해 박근혜의 독선·독주와 오만을, 새누리당의 거수기행태를, 민주당의 무기력함을 국민들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 지지도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야당의 존재감은 확인시킬 수 있다”며 “하지만 최종 책임은 박근혜에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사탕’을 준다고 우리가 물러서면 이런 일은 반복된다. 국민의 비난이 민주당에 쏟아진다고 해서 물러서면 계속 이런 꼴 당한다”고 역설했다. 

▷박근혜 곧바로 공안카드 전쟁선포 이석기 등 압수수색 초유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 본래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국정원 개혁안 마련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곧바로 공안정국 카드 꺼내들었다. 

국가정보원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김홍열 경기도당위원장을 포함한 통합진보당 현역 의원 및 당직자 등 관련 인사의 자택 또는 사무실 1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에 전격 착수한 가운데 2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이석기 의원실에서 집행관들이 박스를 들고 집행에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의 5자 회담 제안에 맞서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선 단독회담, 후 다자회담(5자회담) 제안을 청와대가 27일 사실상 거부한 다음날(28일) 새벽 국정원은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실 압수수색을 비롯한 통진당 관계자 10여 명의 자택 및 사무실을 무더기로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를 두고 박근혜 정부가 이석기를 내세워 민주당의 요구는 묵살하면서 촛불대열에서 ‘통진당’을 분리해 야권을 무력화 시키려는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2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상황을 엄중히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 개혁 요구되는 시점에 이런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는 것에 대해 여러 의구심을 갖고 있지만 아직 공식적인 반응은 자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일호 새누리당 대변인은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진정 떳떳하다면 압수수색을 방해하지 말고 검찰의 수색에 전면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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