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민영화 집중조명①]의료법인 자회사 허용, ‘의료민영화 쓰나미’인가?
법으로 금지했던 의료법인 영리행위, 자회사 통해 허용...“국민 진료비 늘고, 건강보험 흔들”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입력 2014-01-07 18:55:28 l 수정 2014-01-08 07:19:34 기자 SNS http://www.facebook.com/newsvop

'의료 민영화' 논란이 점점 가열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13일 발표한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이 발단이다. 서비스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의료분야 규제 완화의 경우 전문가들이 "의료민영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의사협회와 약사협회도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6일 기자회견에서 "보건의료 등 5대 유망 서비스 업종에 대해서는 업종별로 관련부처 합동 TF를 만들어 이미 발표한 규제완화 정부대책을 신속하게 이행하고, 인허가부터 실제 투자실행에 이르기까지 투자자들에게 원스톱(One-stop)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과 관련단체, 국민들의 반대를 아랑곳하지 않는 박 대통령의 '마이웨이' 선언은 의료민영화 논란에 기름을 붓고 있다. 

정부 주장대로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의료민영화와 전혀 상관없"는 것일까? 아니면 보건의료단체 등의 주장대로 "의료민영화 쓰나미"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건의료분야 등의 규제 완화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보건의료분야 등의 규제 완화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뉴시스

의료기관 자법인 설립 허용하고
부대사업 대폭 확대 영리 추구 허용

4차 투자활성화 대책 중 의료분야 규제 완화 관련 내용은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 설립 허용 △의료법인간 합병 허용 △법인약국 허용 △신의료기술 평가 간소화 △신약 건강보험 등재 소요기간 단축 △해외환자 유치 촉진 △보건의료인력 양성 및 자격제도 개선 등이다.

이중 의료기관의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자회사) 설립 허용이 가장 뜨거운 감자다. 그간 의료법인의 자회사 설립은 허용되지 않았다. 의료법인이 진료 외에 할 수 있는 부대사업도 의료법 시행규칙상 산후조리원, 장례식장, 주차장, 구내식당·매점 등 8개 분야만 가능했다. 

의료법인이 돈벌이를 추구하면 의료사업의 질이 떨어질 수 있고, 의료의 공공성이 후퇴할 수 있기 때문에 규제해 온 것이다. 현행 의료법 시행령 20조(의료인의 사명)는 "의료법인과 비영리법인은 의료업을 할 때 공중위생에 이바지하여야 하고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정부가 이번에 하려는 것은 이 규제를 풀겠다는 것이다. 다만, 의료법인이 직접 진료활동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계속 금지하고, 자회사를 설립해 영리활동을 하는 것을 허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같은 조치는 경영난에 처한 의료법인의 숨통을 틔워주고 새로운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자회사의 영리활동에만 그치지 않을 것
자회사 영리활동이 곧, 의료법인 영리활동

문제는 의료법인이 자회사를 설립해 영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 이것이 단순히 자회사의 영리활동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 가능하다. A 의료법인이 의료기기를 개발, 구매, 임대하는 자회사를 설립했다고 치자. 주식회사인 이 자회사의 지분은 A 의료법인이 51%를 갖고 있고, 자산운용사·벤처캐피탈 등 재무적 투자자가 49%를 갖고 있다. 의료법인도 그렇고 특히 재무적 투자자들은 자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서 지분에 따른 배당금을 받는 게 목적이다. 그렇다면, 재무적 투자자들과 의료법인은 어떻게 움직일까?

당연히 자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A 의료법인은 자회사로부터 의료기기를 임대해 사용할 것이다. A 의료법인은 병원에 오는 환자들에게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한 진료를 권유할테고, 만약 이 의료기기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라면,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은 올라간다. 반면, 자회사는 땅짚고 헤엄치는식으로 모법인인 A의료법인에 의료기기를 임대해 돈을 벌게 되는 것이다. 

만약 B 의료법인이 의약품 도매업을 하는 자회사를 차렸다고 하자. 이번에는 B의료법인 30%, 재무적투자자 50%, 제약회사 20%의 지분을 투자했다. 마찬가지로 자회사의 주주들은 자회사의 이익 추구 극대화를 요구할 것이고,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회사가 B의료법인 내에서 사용하는 약품을 독점 공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고가의 약품을 다수 공급할 수도 있다. B의료법인의 의사들은 자회사의 이익을 위해 저가의 약품 대신 자회사의 고가 약품을 끼워넣어 처방할 수 있다. 의료 지식이 전무한 환자의 입장에서는 처방전을 받아드는 수밖에 없다.

결국, 의료법인에 자회사를 통해 영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는 의료법인 자체의 영리활동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자회사를 설립해 영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영리활동이 금지돼 있는 의료법인이 영리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와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재활의학과 전문의)은 "의료법상 병원은 의사와 비영리법인만 설립할 수 있다. 그리고 수익은 (고유목적사업인) 의료에만 재투자하도록 돼 있다. 의료의 공적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셈이다. 그런데 앞으로 민간이 투자를 해서 배당이익을 가져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은 공적 운영이 아닌 사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의료 민영화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자회사가 직접 진단 치료 등 의료업에 손대는 것은 아니고, 무엇보다 건강보험체계에 손을 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의료민영화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민영화는 공공기관에서 관리운영하던 것을 민간에 넘기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미 의료기관의 94%는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다. 또 건강보험에 모든 국민이 가입해 혜택을 받고 있고, 의료기관도 건강보험 급여 진료를 하도록 당연히 지정돼 있다. 이 두 가지는 어느 것도 손 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민영화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정형준 정책국장은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대부분 사립학교지만 사교육이라고 하지 않고 공교육이라고 한다. 사립학교지만 교육의 공공성을 추구하며 공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의료도 민간 비중이 높지만 공적 기능을 담당해 왔는데, 정부 정책은 최소한의 공적 장치를 제거하는 것으로 의료 민영화가 맞다"고 반박했다. 

사익추구 수단으로 남용되지 않도록 규제하겠다지만...
전문가들 "이명박 정부 영리병원 허용보다 더 위험한 의료민영화 정책"

의료법인이 자회사를 설립해 영리추구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 의료법인이 자회사 설립을 남발해 사익추구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정부도 부정하지는 않는다. 정부는 '부당 내부거래 제한' 등을 통해 이를 단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예를들면, 약사법은 약품 도매업체가 특수관계에 있는 의료기관(의료기관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가 약품 도매업체의 지분 50% 이상을 가진 경우)에 의약품을 공급할 수 없도록 돼 있는데 이런 식의 제한을 두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진료비에 영향을 미치는 의약품, 의료기기업은 부대사업에서 빼는 방안이 가장 강력한 방안이고, 의약품, 의료기기업을 허용할 경우 자법인이 모법인에 판매하는 것은 제한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라며 "상반기 중에 가이드라인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을 수 있고, 대부분 그렇듯 사후 규제엔 허점이 있을 수 있다. 상법상 A 회사가 B 회사의 지분 50% 이상을 갖고 있으면, A는 모회사, B는 자회사 관계가 된다. 만약 보건복지부가 의료법인이 의약품과 의료기기업을 하는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되, 지분율 50%를 기준으로 모회사에 판매하는 것을 제한하면 허점이 생긴다. 의료법인이 50% 이상의 지분을 가진 자회사라면 모 의료법인에 의약품을 판매할 수 없겠지만, 의료법인이 30~40%의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라면 모 의료법인에 의약품을 판매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의약품, 의료기기 임대 판매업이 아니어도 정부 정책 방향대로라면 의료법인이 숙박업, 건강보조식품·화장품 판매 등을 통해 환자들을 대상으로 영리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보건의료전문가들은 "결국 이런 저런 명목으로 환자의 진료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 정책은 이명박 정부 때 하려고 했던 영리병원 허용보다 더 위험한 의료 민영화 정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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