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5537.html
관련기사 : 세월호 참사 언딘, 해양구조협회 관련 기사  http://tadream.tistory.com/10388


“언딘 쪽에서 그때 주검 건지지 말라고 했다”
등록 : 2014.05.02 20:00 수정 : 2014.05.02 21:55 

지난달 19일 바닷속에서 주검을 처음 발견한 민간 잠수부 윤아무개씨는 <한겨레>와 만나 “언딘이 주검을 인양한 것으로 해달라. 작업을 중단하라”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이틀 뒤인 18일 오전 사고 해역에서 선체에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 잠수부가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 뉴스1
 
[토요판] 커버스토리 / 주검 최초 발견 잠수부 첫 인터뷰
 
“시체 장사 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 인양하는 문제를 갖고 ‘실적’이란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세월호 침몰 나흘째인 지난달 19일 바닷속에서 주검 세 구를 처음 발견한 자원봉사 민간잠수부 윤아무개씨는 깊은 한숨부터 쉬며 말을 시작했다. 세월호 수습 과정에서 특혜 논란에 휩싸인 민간업체 언딘마린인더스트리(언딘)가 주검 발견 성과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종합편성채널 방송에 대해 강력 부인하면서 논란은 진실 공방 수준으로 사그라졌다.
 
바닷속에서 실제 주검을 최초로 발견한 윤씨는 언딘 쪽 주장을 재반박하며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잠수부들은 순서를 정해 차례대로 바다에 들어가는데 1번 잠수부였던 윤씨가 주검 세 구를 처음 발견하고 하잠색(잠수부들을 위한 인도선)을 설치했다. 하잠색은 설치가 어렵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실력이 뛰어난 잠수부가 1번을 맡는다. 윤씨가 언론 인터뷰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4월19일 새벽 4시40분께 세월호 창문 밖에서 주검 세 구 , 처음 발견한 민간잠수부 윤씨 
“건지지 마라, 우리가 건지겠다” 김 이사의 강압적인 말 들어 
“잠수부 생활 10년 하면서 나중에 시신 건져야 한다는 요구 받은 적 한번도 없어요 
해상공사하다 사람 익사하면 ‘무조건 구해달라’ 요구하죠” 
 
해경도 사실 알고 “도끼로 창문 깨자” 논의
 
언딘의 실적 조작 의혹을 처음 실명으로 폭로한 강대영씨 외에 당시 현장에 있던 윤씨와 ㅋ수중개발 최아무개 대표 등도 “언딘이 주검을 인양한 것으로 해달라. 작업을 중단하라”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동일한 진술을 했다. 이들은 지난달 17일 밤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즉석으로 팀을 이룬 자원봉사 민간잠수부들이다. ㅋ수중개발을 중심으로 조직된 윤씨 등 8명은 이날 진도체육관에서 강씨 등 3명을 처음 만났다. 강씨가 방송 인터뷰에서 “현장에 다른 팀도 있었는데 언딘의 김 이사와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고 지목한 팀이 바로 ㅋ수중개발이다.
 
각각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고, 소속이 다른 복수의 자원봉사 민간잠수부들이 “언딘이 주검을 인양한 것으로 해달라”는 취지의 진술을 들었다고 밝힌 셈이다. 의혹 또는 진실 공방에 그치기에는 정황증거가 많은 대목이다.
 
윤씨는 지난달 19일 새벽 4시40분께 침몰한 세월호 창문 밖으로 시신 세 구를 처음 발견했다. “가이드로프를 타고 내려갔는데 줄이 선수 맨 앞과 연결돼 있더라고요. 세월호 3·4·5층 창문을 타고 가다 사람 손목이 보였어요. 머리카락도 보이고. 그다음 창문에서도 다른 시신을 봤어요. 2번과 3번 잠수부인 강씨가 뒤이어 물속에 들어갔고요.”
 
윤씨는 잠수 당시 통신장비를 통해 물 밖의 잠수부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배에는 실종자 가족들도 있었다. 윤씨가 주검에 대해 설명하려 하자 ㅋ수중개발 최 대표가 실종자 가족들을 배려해 이를 자제시켰다.
 
“배에 올라와서 해경정에 있는 다른 도끼를 가져와서 유리창을 깨자는 얘기를 할 때쯤이었어요. 다른 데서 큰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보니까 언딘 쪽 김 이사, 팽목항에서 처음 만나 합류한 강씨, ㅋ수중개발 최 대표가 같이 있어요. 제가 김 이사 옆에 바짝 붙은 게 아니라 뒤에 왔다 갔다 하면서 말을 들어보니 ‘당장 빠져라. 지금 건지지 말아라. 우리가 건지겠다’고 강압적으로 이야기해요. ‘자원봉사자들이 주검을 찾으면 해경이 다칠 수 있다’는 말은 정확히 듣진 못했고, ‘윗선에서 안 좋을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은 들었어요. 김 이사가 ‘너희가 시신을 찾았지만 우리가 설치한 라인(유도선)을 타고 들어간 거 아니냐’고도 했어요.”
 
언딘의 성과 조작 논란이 일자 고명석 범정부사고대책본부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지난 브리핑 때 최초 시신을 발견한 민간잠수요원이 언딘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실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씨는 “해경이 시신 발견 사실을 알고 인양을 돕기 위해 대기했다”고 말했다.
 
“그때 상황은 당황스럽다기보다는 어이가 없었어요. 잠수부 생활 10년 하면서 나중에 시신을 건져야 한다는 그런 요구는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해상에서 공사하다가 사람이 가끔 구조물에 깔려 익사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땐 원청이든 하청이든 ‘돈은 상관없고 무조건 구해달라’고 요구해요.”
 
언딘은 지난달 29일 진도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실적을 가로채려 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언딘 김윤상 대표는 논란이 이어지자 “제발 선정성을 자제하고 충분한 취재를 통해 진실만을 보도해달라. 보도가 사실이라면 회사의 대표직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누리집에 반박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언딘은 강씨를 상대로 법적 절차를 밟고, 일부 언론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팽목항을 떠나 다른 지방에서 일하고 있는 윤씨는 잠수 일정 때문에 반박 기자회견 내용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언딘이 기자회견을 한 이유는 두 가지일 거예요. 그쪽 사장부터 모두가 사실을 알면서 완전히 발뺌했든가, 현장에서 우리들에게 철수를 요구했던 언딘의 김아무개 이사가 회사로부터 질책을 받을까봐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사실을 부인했든가. 김 이사의 말을 사장은 곧이곧대로 들었겠죠.”
 
김 이사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시신 인양을 넘기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없다. 오보들 내지 말고 전화로 문의하지 말고 현장에 내려오시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남해지방해양경찰청 특수구조대 자문위원, 퇴직한 해경 간부 6명이 재취업해 유착 의혹이 일고 있는 한국해양구조협회 구난팀장 등을 지냈다.

“19일 새벽, 3·4·5층 창문에 에어포켓은 없었다”
 

 
ㅋ수중개발은 당시 잠수부들이 바다에 들어가는 상황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1번 잠수부인 윤씨는 19일 새벽 4시10분께 물에 들어갔다. 그는 에어포켓이 있는지 먼저 확인했다. 3·4·5층 창문을 확인했지만 에어포켓은 없었다.
 
언딘의 김 이사가 다른 배를 타고 사고 해역에 도착한 시점은 새벽 6시45분. 새벽 6시께 물에 들어간 2번 잠수부가 잠수를 마친 뒤였다. 수색은 3번 잠수부인 강씨가 물에 들어간 오전 9시 이후 중단됐다. 이들은 언딘의 요청으로 일을 멈추고 대기하다가 오후 6시께 팽목항에 돌아왔다. 그날 유속이 느려지는 정조 시간은 새벽 5시40분, 오전 11시13분, 오후 5시12분, 밤 11시13분이었다. 언딘 쪽은 두 번의 정조 시간(오전 11시13분, 오후 5시12분)을 지나 밤 11시50분께 주검 세 구를 수습했다. 다만 언딘의 ‘고의적 주검 인양 지연 여부’에 대해 민간잠수부들은 온도 차이가 있는 해석을 내놨다. 그러나 언딘이 수색을 하지 않던 오전 11시는 잠수가 가능한 날씨였다는 공통분모는 있었다.
 
윤씨는 “기상 때문인지 실적 때문인지 언딘의 의도까지 판단을 내리진 못하겠다”며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오전 11시에는 충분히 물에 들어갈 수 있었고 오후 4시 넘어서는 파도가 세졌다”고 덧붙였다. ㅋ수중개발의 최 대표는 “강대영씨 말이 전반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지연 문제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전 11시 정조 때는 무리를 하면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가 했으면 조류가 있더라도 작업을 이어갔을 것이다. 다이빙이란 게 한번 물살을 경험해놓고 계속 이어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5시 정조 때는 파도가 2m 높이까지 치면서 가만히 서 있지 못할 정도로 날씨가 안 좋았다. 김 이사가 ‘언딘이 (시신 발견·인양을) 한 것으로 하자’고 말한 부분은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현장을 매끄럽게, 잡음 안 나오게 해달라는 의도라고 생각했다. 또 언딘이 ‘금호 바지선을 사고 해역에 설치하게 일을 중단해 달라’는 이유 등도 종합적으로 설명했다.”
 
최 대표는 ‘해경 윗선이 다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는지 여부에 대해선 “말하기 곤란하다”고 대답을 피했다. 최 대표는 수중공사 입찰 현장에서 몇 차례 언딘의 김 이사를 본 적이 있다. 지난달 29일 인천에 있는 ㅋ수중개발 사무실에서 만난 최 대표는 인터뷰 중간중간에 당시 동영상을 확인하며 상황을 이야기했다. 첫 주검을 발견할 당시 수색 현장에 있던 ㅋ수중개발 직원 3명도 사무실에 있었다.
 
김 이사는 최 대표 등이 잠수를 마치자 함께 일을 하자고 제안하며 “회사에 잘 이야기해서 오늘 수고한 보답을 하겠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언딘과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거부했다. “협력이 잘되면 좋겠지만 언딘과 마찰이 생길 것 같았어요.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요.”
 
구조 현장은 혼란과 관료주의의 극치
 
언딘 쪽의 작업 중단 요구만큼 해경의 느려터진 일 처리도 생명 같은 시간을 허비하게 했다. 최 대표는 현장에 ‘컨트롤타워’가 없어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고 밝혔다. ‘윗사람’의 전화 한 통이 있어야 일이 그나마 처리될 만큼 관료적이었다. 해경이 최 대표에게 당시 지원을 약속했던 배가 약속 시간보다 9시간 늦게 올 정도였다.
 
“18일 오전 8시에 팽목항에 온다는 배가 늦게 출발해서 오전 11시에 온대요. 기다렸더니 ‘다 왔다’고 전화가 오길래 ‘빨간 등대에 있다’고 대답했죠. 그런데 그냥 가버렸어요. 대체 이유를 모르겠어요. 오후 2시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고요. 나중에 유가족 대표가 오시더라고요. 전날 유가족 대표와 면담을 하고 구조 계획을 설명드렸는데, 우리가 그 시간까지 못 나간 걸 보고 난리가 난 거죠. 그러던 중에 제가 아는 해경 고위직 한 분을 만났어요. 그분한테 요청하니까 그제야 해경 방제선이 왔어요. 그 배를 타고 오후 5시에 출발해 사고 해역에 오후 6시50분에 도착했어요.”
 
수백명의 탑승자가 구조를 기다리며 소리칠 때 세월호 선장 등 선박직 선원들은 먼저 탈출했고, 이들이 물속에 가라앉자 구난업체인 언딘은 바다 위에선 첫 시신을 누가 꺼내는지를 놓고 갈등을 벌였다. 서해 조류는 빨랐지만 해경은 여전히 느렸다.
 
인천/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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