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388

세월호 촛불…대한민국 전체 불신 국가 근본 묻고 있다
과거 촛불과 다른 양상...무능한 정부, 부패한 자본, 지도자 인식 총체적 문제 제기
입력 : 2014-05-06  09:44:02   노출 : 2014.05.06  11:23:55  이재진 기자 | jinpress@mediatoday.co.kr    

세월호 침몰 사고를 추모하는 촛불이 분노의 촛불로 변하고 있다.

세월호 촛불은 지난달 20일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가 아이들을 죽였다"라는 구호를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려고 하자 공권력이 막아선 것이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리고 열흘 사이 전국적으로 154곳에서 촛불 집회가 열렸고 3일 5천여 명이 시민이 청계광장에 모였다.

당시 집회에는 청소년과 아이를 키우고 있는 중년의 남성, 주부, 교사 등이 참여했다. 한 남성은 "아이들에게 선생님 말씀과 어른들 말씀을 잘 지키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이 다 죽었다. 언제까지 우리 자식들이 죽는 사회를 계속 만들 것인가"라고 물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남성이 들었던 손팻말에는 "생존해야 하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라는 말이 쓰여져 있었다. 세월호 촛불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구호를 뛰어넘어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6일 2천여명의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의 무사기원과 잃어버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촛불 행진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에서 출발해 명동성당과 청계천까지 진행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세월호 촛불은 과거 대표적인 촛불 집회였던 광우병 촛불과도 다른 모습이다.  우선,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촛불 주체의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시민촛불 원탁회의'가 결성되고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현장 취재기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단체가 어디냐"라는 질문에 침묵만 흐른 장면은 상징적이다. 

원탁회의 관계자는 세월호 촛불집회에 대해 별다른 분석을 내놓지 못했다.

"개혁 진보 세력도 눈치를 보고 있다. 세월호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역풍을 맞는다는 것이다. 원탁회의도 단체가 결합돼 있긴 하지만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자발적인 개인들의 요구가 있었고 유력인사나 주도하는 단체도 없다. 현재 세월호 촛불은 흐름을 전망하거나 고민하는 것 자체를 뛰어넘고 있다."

실제 세월호 촛불 현장 분위기는 이전 촛불과 사뭇 다르다. 집회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정부의 무능함과 무책임, 자본의 부패에 환멸을 느끼는 감정이 응축된 말이다. 보통 집회 이후 행진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세월호 촛불 집회에서는 끝나고도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는 시민들이 많다. 비통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스스로 감내하는 모습이다. 

각종 세월호 침몰 사고 시민 모임이 생겨나고 '서초엄마들의 모임', '자연출산카페' 등 누리꾼들이 자발적으로 집회를 기획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온라인상에서는 IMF 당시 금 모으기 운동에 착안해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촉구하는 백만 욕 모으기 운동"도 전개되고 있다. 운동을 제안한 시민은 "저희는 국가의 위기 IMF 때는 금을 모아다 줬습니다. 헌데...이번에는 금 보다 욕을 모아다 줘서 분노 하고 있음을 알려야 겠습니다"라며 "저는 정치 모릅니다.. 그냥 우리 아이들이라고 생각 하고 가만히 자는 모습을 보면서 저 소중한 아이들을 내가 잃었을때 난 무얼 할 수 있고..어떤 힘을 가졌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 나라에서 내가 우리 아이 조차 지킬 수 있는 것이 불가능 한 것인지 정말 이대로 난 이 나라를 포기해야 하는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체는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이 사건의 모든 처벌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모두 한 마디씩 해주십시요"라고 촉구했다. 

촛불 집회를 지켜본 관계자는 세월호 촛불을 외화 드라마인 '소머즈'에 비교했다. 

"그동안 몰랐거나 모른 체 해왔던 것을 지난해 '안녕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노크하는 정도였다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는 확실히 문을 열어 제끼고 있다. 소머즈처럼 갑자기 들리지 않던 것이 한꺼번에 들리는 것처럼 한국 사회의 근본을 묻는 질문을 한번에 분출해 묻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달 30일 서울 홍대-명동-서울광장에서 진행된 세월호 참사 추모 침묵행진 '가만히 있으라'에 참가한 학생.
이치열 기자 truth710@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나 퇴진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지만 오히려 집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내려와도 한국 사회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무능한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도 세월호 촛불에서 보이는 특이한 현상이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특검 도입 뿐 아니라 대통령 사퇴 등 여러 요구가 나오고 있지만 세월호 촛불의 중심에 비껴가있다는 분석이다. 단순한 정권에 대한 불신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는 것을 세월호 침몰 사고가 촉발시켰다는 얘기다. 

국민들을 상대로 한 대토론회를 열자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정부의 무능함에 더해 부패한 자본의 결탁, 잘못된 사회 지도층의 인식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통해 민낯을 드러내면서 "대한민국에서 살 수 없다"는 국민의 정서를 터놓고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이 나서 세월호 침몰 사고 비상중앙대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것도 이전 촛불과 다른 모습이다. 시민사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5월 1일 안산 단원고 가족과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대책위원회 구성을 처음으로 논의했고 6일 오후 대책위의 구체적인 상과 활동 내용을 확정해 향후 출범을 발표할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청소년단체'희망' 소속 학생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초동대응 미흡과 구조작업지연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반면, 정부 당국과 보수 우파가 현재까지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내놓은 대책과 대응은 과거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당국이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엄단하겠다는 입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식상한 레토릭'으로 치부되고 있다. 오히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나왔던 '가만히 있으라'는 상징적인 말과 '오버랩' 되면서 불에 기름을 얹은 꼴이 되고 있는 모습이다. 

허위사실 유포 엄단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촛불이 사그라지지 않자 '선동' 딱지를 갖다 붙이는 것도 과거와 비슷한 모습이다. 지난 3일 맞불 집회 성격으로 보수 단체들은 세월호 실종자들의 빠른 구조와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집회를 개최해놓고 “거짓선동이 유가족을 슬프게 한다. 세월호 비극 이용하는 정치선동꾼을 척결하자”라고 주장했다.

정미홍 정의실현국민연대 상임대표가 세월호 촛불 집회 알바설 의혹을 제기했다가 비판 여론이 일고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 대목도 '선동 프레임'이 이번 세월호 촛불에는 먹히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촛불 집회 관계자는 "정치권과 보수의 공세보다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시민들의 분노를 합리적인 대안과 과제로 누가 수렴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했다. 그만큼 세월호 촛불에서 나타난 분노의 내용과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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