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3041
문창극 참사, 기독교인의 '자업자득'이다
[주장] 정치와 종교의 유착이 빚어낸 '비극'... 교회 자정운동 절실하다
14.06.13 16:27 l 최종 업데이트 14.06.13 16:27 l 구교형(ku6699)
6·4 지방선거 이후 중차대한 정국을 풀어내야 할 첫 인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오만과 독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번만큼은 패배를 벗을 수 없을 것으로 여겼던 6·4 지방선거에서마저 사실상 승리했다. 때문에 그저 부정비리의 함정만 피하면 무난히 '대독총리'를 세울 수 있고 사상검증쯤은 무난히 돌파하리라 생각하고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차기 국무총리로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과거 강연들이 KBS 뉴스를 통해 보도되면서 안심했던 청와대도 당황하는 것 같다. 그러나 문창극은 그저 '개인' 문창극이 아니다.
문창극 후보의 '식민지 감사'는 그의 진심
▲ 질문 뒤로한 채 출근하는 문창극 "일본의 식민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표현한 과거 발언이 공개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한 채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출근하고 있다. ⓒ 남소연
먼저 나는 한 사람의 목사로서 온누리교회 장로이기도 한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을 생각해 본다. 그는 조선 500년의 허송세월을 깨닫고 새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일제 식민지라는 시련을 주셨고, 남북분단도 당장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하나님의 뜻으로 주신 것이기에 감사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의 발언을 두둔하는 사람들은 문제 발언만 잘라보지 말고 전후 문맥을 다 살피면 '모든 시련까지도 결국 잘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 기독교인의 일반적 정서일 뿐이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도 한다. 그래서 변희재씨도 자신의 트위터에서 "KBS에서 음해 나선 문창극 발언, 조선시대부터 미리 준비 안 해 일제 지배당했고, 그 준비 안 된 상태로 미국 개입 없이 근대국가 갔으면 김일성에 먹혔을 거다,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역사관이다"라고 두둔했다.
변희재씨 말대로 문창극 후보자의 강연을 다 들어봤다. 그러나 잘라 들을 때는 모호하던 게 오히려 전후문맥을 살피니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창극 후보자의 역사관에는 미국이나 일본 같이 자립심이 강하고 부국강병을 위해 일찍부터 준비해온 나라들은 마땅히 세계를 지배할 자격이 있으며, 우리 역시 그런 나라들의 패권을 비판하기보다는 후진적 민족성을 개조하여 속히 뒤따라갈 때 국가번영과 민족중흥의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큰 맥락 속에 문제의 발언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관은 사회적 진화론에 뿌리박은 일본 명치유신의 대부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과 일치하며, 이를 바탕으로 조선정복을 정당화하는 정한론(征韓論)이 전개된다. 문창극 후보자는 강의에서도 몇 번이나 조선의 상징은 '게으름'이라고 반복했다.
그런데 개화파에서 시작하여 후에 친일파로 변절했던 유길준, 윤치호, 박영효 등이 바로 후쿠자와 사상의 신봉자들이었고, 박정희의 유신과 조국근대화론으로 계승되었다. 이제는 오늘날 공공연히 후쿠자와를 뛰어난 선각자로 떠받드는 김진홍 목사 같은 뉴라이트의 세계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진심으로 일제 식민지를 비판하기 힘든 것이다. 우리 민족이 당했으니 안타깝기는 하다, 하지만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그럴수록 더 분발하여 미국이나 일본 같이 강대한 선진국이 되면 끝날 일을, 자꾸 식민지만 비판해서 무엇 하겠느냐며 우리 국민의 의식을 나무란다. 박정희는 그런 일본의 선진의식을 되살려 한국을 새롭게 개조해 발전시켰으며, 그의 딸 박근혜는 침체된 한국사회에 새마을정신을 다시 불어넣고 있는 것이라 믿는다.
▲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망언을 보도한 11일 KBS 9시뉴스 화면. ⓒ 권우성
다시 말하지만 문창극 후보자의 '하나님의 뜻'은 무슬림들이 매사에 "인샬라!"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단지 기독교인들의 관행적 수사에 불과하지 않다. 정말 단순한 수사에 불과한 것이라면, 김일성 일가의 북한 지배나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도 '그저 우리가 잘 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야 할 텐데, 그는 결코 그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의 말은 그의 진심일 것이다. 그래서 '사과할 게 없다'는 그의 말은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문창극 후보자는 한국 보수기독교의 대변인
이처럼 문창극 후보자의 발언들은 개인적인 소신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강연들이 그동안 주로 내로라하는 대형교회들을 무대로 큰 소동 없이 진행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기독교는 이번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문창극, 김동길 같은 보수 기독교인들은 물론 조갑제나 서정갑 같은 수구적 지식인들도 금란교회(김홍도), 새문안교회(이수영), 연동교회(이성희), 강남순복음교회(김성광) 등 대표적인 대형교회들을 통해 수없이 소개되었다. 그러므로 지금 '문창극 사태'에는 한국 정치와 기독교가 맺어온 부끄러운 오랜 역사가 있다.
우리는 흔히 장로 직분을 가졌던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시절들을 '기독교 정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실 한국현대사를 가만히 살펴보면 한국정치는 기독교와 긴밀한 유착관계를 맺어오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할 만큼 모두가 사실상 기독교 정권이었다.
밖에서 볼 때는 기독교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박정희 정권 18년도 보수기독교와 정권의 유착은 대단했다고 볼 수 있다. 1961년 5·16쿠데타 직후 미국의 승인에 목말라 있던 박정희의 사절로 미국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 분위기를 밝혀 놓은 것이 바로 한경직 목사 등 기독교 지도자들이었다. 영구독재의 문을 연 1969년 3선 개헌 역시 조용기, 김준곤, 김장환 등 242명의 목사들이 지지성명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그 대가로 이들을 비롯한 보수 기독교회들은 살벌했던 그 시절 꿈도 꾸지 못했던 온갖 특혜들을 받으며 급성장했다.
이러한 추세는 12·12쿠데타와 5·18항쟁 무력진압으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에도 이어졌다. 1980년 8월 한경직, 김준곤, 정진경 등 당대 유명 목사들은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을 칭송하는 국가조찬기도회를 열어 힘을 실어주었다.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도 이들을 종교원로로 떠받들며 한껏 힘을 실어주었다.
이런 일 터질 때마다 기독교인은 곤혹스럽다
▲ 기독교단체, 문창극 총리지명 철회 요구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와 감리교시국대책위 등 기독교단체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역사와 기독교를 왜곡했다"며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 남소연
그런데 놀라운 것은 독재정부 시절 40년 넘도록 긴밀하게 결합해 왔던 정권과 기독교의 관계가 역설적이게도 민간정부가 들어오면서부터 협력과 동시에 긴장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비교적 단순하고 노골적이던 유착이 더 이상 부담일 수밖에 없는 민간정부 시대에는 정부도 기독교에, 또 기독교도 정부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득권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해관계가 맞아 한국 보수적 기독교를 대표하는 주요 인사들은 1989년 1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아래 한기총)를 출범 시킨다. 한기총은 민주화되고 개방돼 가는 사회의식과는 동떨어지게도 권위주의적이고, 기득권 편향적이며 시장만능주의적인 입장을 보이며 보수정치권의 큰 지원군 역할을 해왔다. 또 대통령선거 때마다 보수정당을 지원해 왔다.
또한 우리사회에서 유난히 종교적 결집력이 강한 개신교의 성향을 이용하여 초대 이승만 정권 이후 기독교정권 만들기에 맛들인 이후 문민시대에는 김영삼과 이명박에 이어지는 '장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직접 정치권에 반영하기 원해 기독교정당 만들기를 계속적으로 시도해 왔다.
1997년에는 한사랑선교회 김한식 목사가 바른정치연합 대통령 후보로 나왔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한국기독당(조용기, 김기수, 김준곤, 박영률, 최수한 등)을,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전광훈 목사 등이 기독사랑실천당을 창당했으며, 다시 19대 총선에서도 대형교회 목사들이 주축이 되어 국회 입성을 노렸지만 모두 실패했다.
또 이러한 직접적 정치운동에 더해 보수정권 재창출 기반마련을 위해 2004년에는 김진홍, 서경석 목사 등이 중심이 되어 뉴라이트 운동을 시작하여 이명박 정부 출범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는 오늘날 문창극 후보자 등의 사상적 기반이 되고 있다.
사실 지난 20여 년, 한국사회가 여러 모로 개혁되면서 한국교회도 예전처럼 담임목사 한 마디에 모든 교회가 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분위기는 많이 없어졌다. 더 이상 보수적 대형교회 목사가 그 교회 의식을 대변하지도, 또 지도자 몇 사람이 한국교회를 대표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여전히 대형 교회 설교강단을 통해 수구보수적 강사들을 불러 세우고, 그 경력과 의식들이 퍼져가는 것은 참 우려할 일이다. 그것이 바로 문창극 후보자가 아니어도, 또 다른 문창극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동서고금을 넘어 정치와 종교의 유착의 역사는 참으로 길고, 집요하다. 정치에 더 이상 섬김의 정신이 사라지거나 종교에 더 이상 자기부인의 삶이 없어지면, 정치와 종교는 반드시 공동기득권을 위해 유착한다. 그게 바로 문창극 사태다.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참으로 부끄럽고, 곤혹스럽다. 그러나 자업자득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지금 한국사회와 정치를 위해 해야 할 최고의 공헌은 바로 자기교회를 바꾸는 것이다. 한국교회를 위해서도 문창극 후보자는 스스로 사퇴하라.
덧붙이는 글 | 구교형 기자는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 총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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