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heritage.tv/short/1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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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 철갑옷의 비밀 4부 철의 왕국, 가야! 



내용

1600년 전 세상을 움직였던 철의 왕국 가야.
녹슨 철이 기억하는 가야의 화려한 역사가 다시 부활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시대에 존재했지만 
고대사에서 변방 취급되었던 가야.
하지만 가야는 우수한 철기문화로 강대국의 성장기틀을 마련했다.
주변국들에 철을 수출하며 이름을 알렸고
수준높은 철제 무기와 갑옷으로 힘을 과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신라와의 분쟁 가운데 여전사를 양성하기도 했다.
철갑옷의 비밀 4부 역사클립 철의 왕국, 가야!
함께 과거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김해 대성동 고분군 방문정보>

위치: 경상남도 김해시 대성동 434
연락처: 055-330-3924
주변 볼거리 : 수로왕릉, 대성동고분박물관, 국립김해박물관, 신어산 산림욕장
홈페이지: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3,03410000,38


동영상 대본정보

1600년 전 세상을 움직였던 철의 왕국 가야!신비의 나라가 아닌 강력한 제국으로 번성했던 국가!녹슨 철이 기억하는 가야의 화려한 역사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타아틀) 철의 왕국, 가야!가야는 우리 고대사의 변방 취급을 받으며 전설의 장막 뒤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가야는 한반도 남부에서 성장해6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나라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와 같은 시대..가야인들은 철기문화로 큰 세력을 형성했고,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수준 높은 철제기술을 바탕으로 정복과 방어를 위한 무기를 다량으로 생산하고 보유했다.
 
나무로 만든 단갑틀은 단단한 철을 사람의 몸에 맞게 입체적으로 만들 때 사용했던 틀로가야인들이 철갑옷을 전문적으로 대량생산했음을 보여준다.
 
가야의 군대는 사람만 갑옷을 입은 게 아니라말까지 갑옷을 갖춰 입었다. 
재갈, 말 투구 등 다양한 마구류는 가야가 기마전술을 사용했음을 알려준다. 
또한 중무장한 기마전사들로조직된 대규모 기마전단까지 갖춘 가야는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강력한 국가체계를 갖추었다.
 
4세기 동아시아는 일대 격변기였다. 고구려가 백제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한반도 남부에서는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금관가야와 신라간의 전쟁이 이어졌다. 
 
이에 금관가야는 무기체계를 정비하고 기마전술을 도입하면서 여전사라는 전문전사 집단을 양성했던 것이다.
고대국가로 발돋움하려는 단계에서 신라에 병합돼 비록 그 꿈은 좌절되고 말았지만,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이 땅의 역사를 일궈낸 제4의 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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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수한 철기를 가진 나라, 가야는 주변국들 중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을 수 있었다.
가야의 철제품은 당시 세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교역의 주된 대상이었다. 또한 가야인들은 철을 화폐로 사용하기도 했다.

중국 기록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록을 보면 당시 가야는 철 생산국과 수출국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변진의) 나라에서는 철(鐵)이 생산되는데, 한 ? 예 ? 왜인들이 모두 와서 사간다. 시장에서의 모든 매매는 철로 이루어져서 마치 중국에서 돈을 쓰는 것과 같으며, 또 (낙랑과 대방의) 두 군(郡)에도 공급하였다.-삼국지. 위서 동이전 당시 국가들은 가야의 철정을 교역품으로높은 의의를 두고 있었다. 
 
 일본에서 가야의 것과 동일한 철정이 발견됐는데일본은 서기 5세기 무렵까지, 철 생산을 못했기에 일본 출토 철정은 가야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철을 공급한 대가로가야가 일본 지배층으로부터 받았던 물품들이가야 고분에서 발견됐다. 
 
그 외에도 가야 고분에 부장된 중국계 물품들 역시, 국제적인 철 교역의 부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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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교섭의 기지가 됐던 가야의 항구는 지금 넓디넓은 평야로 모습이 바뀌었다. 가야시대, 김해는 평야가 아니라 수심 5미터 내외의 만이었다.
김해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가야의 국제무역항이었고,지금의 김해평야에는 국제무역선이 떠다녔던 것이다.

1600년 전, 가야는  활발한 대외무역을 선도했던 국제적으로 앞서갔던 강국이었다.철기문화로 동북아시아를 제패했던가야의 영광, 철의 역사는 녹슬지 않는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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