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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이순신에게 분노하다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3부 - 정유재란과 호남 사람들 3
호남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3부 - 정유재란과 호남 사람들 3
선조 마음 속 이순신 미움으로 가득 차
입력시간 : 2012. 11.28. 00:00
덕수궁 석어당. 선조가 서울로 돌아 온 후에 살았던 임시거처이다.
윤두수·이산해 등 조정회의서 비난하고 나서
원균을 수군총책 옹립하기 위한 계책 드러내
1597년 1월27일에 선조는 대신들과 함께 오전과 오후 두 번에 걸쳐 수군의 작전통제권에 대하여 논의를 한다. 이 날 첫 번째 회의를 살펴보자. 회의 참석자는 영의정 유성룡, 판중추부사 윤두수, 지중추부사 정탁, 좌의정 김응남, 영중추부사 이산해, 호조판서 김수, 병조판서 이덕형 등이었다. 선조실록 1597년 1월 27일자 1번 째 기사를 읽어보자.
선조 : “적선이 비록 2백 척이라 하나 매우 많은 것이다.”
영의정 유성룡 : “16진(陣)이 거의 다 나온 모양입니다. 고니시의 군사들이 두치(豆恥 : 광양시 진상면 섬거리)의 길로 가서 정탐한 것을 보면 전라도를 엿보는 것 같습니다.”
선조: “전라도 등은 방비가 전혀 없고, 수군도 하나도 오는 자가 없다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유성룡: “그곳은 명령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에 군사들이 곧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동안 간사한 아전들이 권세를 농락하여 여러 장수들의 명령이 하나도 시행되지 않습니다. 혹시 한번 명령이 떨어져도 수개월이 지나 오는 자도 있고, 아예 오지 않는 자도 있으니 참으로 한심합니다.”
전쟁이 일어났다 하여도 국가의 기강이 엉망이다. 전라도 등에서는 장수들의 명령이 통하지 않고 있다.
판중추부사 윤두수 : “이순신은 조정의 명령을 듣지 않고 전쟁에 나가는 것을 싫어해서 한산도에 물러나 지키고 있어 큰 계책을 시행하지 못하였던 것이니. 이에 대하여 신하들로서 어느 누군들 통분해 하지 않겠습니까.”
지중추부사 정탁 : “이순신은 참으로 죄가 있습니다.”
서인의 거두이고 원균의 친척인 윤두수는 이순신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정탁도 죄가 있다고 동조한다. 판중추부사 정탁은 나중에 이순신의 구명운동을 벌인 사람이다.
선조 : “이순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이순신이 부산 왜영(倭營)을 불태웠다고 조정에 속여 보고하였는데, 영의정이 이 자리에 있지만 이런 일은 반드시 없어야 할 일이다. 지금 비록 그의 손으로 가토의 목을 베어 오더라도 결코 그 죄는 용서해 줄 수 없다.”
선조는 이순신에게 몹시 분노하고 있다. 가토를 잡기 위하여 수군을 출동시키지 않는 일 뿐만 아니라, 부산왜영 화재사건의 허위 보고에 대하여도 엄청 화가 나 있다. 심지어 선조는 “지금 비록 그의 손으로 가토의 목을 베어 오더라도 결코 그 죄는 용서해 줄 수 없다” 하는 극언까지 한다.
그러면 부산 왜영 화재 사건 보고의 진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1596년 12월27일 이순신은 김난서·안위·신명학의 포상을 청하는 장계를 조정에 올린다. 1596년 12월12일에 부산 왜영에서 불이 일어나 가옥 1천여 호와 화약이 쌓인 창고 2개, 군기(軍器)와 군량 2만 6천여 섬이 든 곳집이 타고 왜선 20여 척이 잇따라 탔으며 왜인 24명이 불에 타 죽었는데, 이는 그의 부하인 안위, 김난서, 신명학의 공이라는 보고였다. 이순신의 보고에 조정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런데 다음 날 체찰사 이원익의 선전관인 이조좌랑 김신국이 같은 내용의 장계를 올렸다. 김신국은 “통제사 이순신이 부산 왜영을 불태운 일을 이미 장계하였다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 일은 도체찰사 이원익이 군관 정희현에게 작전을 명하였고, 군관 정희현이 심복인 허수석과 모의하여 부산 왜영을 불태웠다. 이순신의 군관이 물건을 운반하는 일로 부산에 도착했었는데 이 날이 마침 왜영이 불타는 날이었고, 그가 돌아가 이순신에게 보고하여 자기의 공으로 삼은 것이다. 이순신은 이번 사정을 모르고 보고한 것”이라고 보고한다. 김신국의 보고서를 읽은 선조는 이순신이 남의 공을 가로 챈 사실을 알고 분노하였다.
한편 선조가 격앙되자 유성룡이 말을 바꾼다.
유성룡 : “이순신은 신과 같은 한동네 사람이어서 어려서부터 아는데, 직무를 잘 수행할 자라 여겼습니다. 그는 평소부터 꼭 대장이 되기를 희망하였었습니다.”
선조: “그가 글은 아는가?”
유성룡 : “그는 성품이 강직하여 남에게 굽힐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신이 그를 수사(水使)로 천거하여 임진년에 공을 세워 정헌대부까지 주었는데 너무 지나치게 되었습니다. 무릇 장수는 바라는 대로 되면 반드시 교만하고 게을러집니다.”
유성룡도 이순신을 전적으로 감싸지 못한다. 선조의 눈치를 보는 말투이다.
선조: “이순신은 용서할 수가 없다. 일개 무장(武將)인 주제에 어찌 조정을 업신여기는 마음을 갖는가. 우의정(이원익을 말함)이 내려가면서 말하기를 ‘평일에는 원균을 장수로 삼아서는 안 되나 전시에는 써야 한다.’고 하였다.”
선조는 이순신을 죄주겠다고 공언한다. 그리고 원균을 장수로 삼을 뜻을 비추인다.
좌의정 김응남 : “수군 중에는 원균만한 사람이 없으니, 이제 버려서는 안 됩니다.”
유성룡 : “원균은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깊습니다. 상당산성(上黨山城 :청주 산성)을 쌓을 때, 원균은 흙집을 짓고 몸소 성 쌓는 것을 감독하였다 합니다.”
선조: “그를 수군의 선봉을 삼고자 한다.”
김응남 : “지당하십니다.”
김응남은 원균을 다시 기용하라고 선조에게 청하고 선조는 원균을 수군의 선봉으로 삼겠다고 말한다.
영중추부사 이산해 : “임진년 수전(水戰)때 원균과 이순신이 천천히 장계를 올리기로 약속하였다 합니다. 그런데 이순신이 밤에 몰래 혼자서 장계를 올려 자기의 공으로 삼았기 때문에 원균이 원망을 품었습니다.”
이산해는 이순신을 비난한다. 원균의 공로를 가로챈 자로 매도한다.
윤두수 : “이순신을 전라충청 통제사로 삼고, 원균을 경상 통제사로 삼으면 어떻겠습니까?”
선조가 원균을 기용하려는 의중을 읽은 윤두수는 원균을 경상도 수군통제사로 임명하도록 청한다. 그리하여 수군의 통제권을 양분시키고 실제 권한을 원균에게 주려 한다.
윤두수와 김응남: “이순신은 조용한 사람인 것 같지만 속임수가 많고 앞으로 나서지 않는 사람입니다.”
선조: (병조판서 이덕형에게 이르기를), “원균의 일을 급히 처리하도록 하라.”
병조판서 이덕형: “원균을 처음 수군으로 보내려고 하였으나 의논이 일치되지 않아 이에 이르렀습니다. 근래 변방 장수의 일을 보건대, 이운룡 같은 경우는 한두 명의 도적을 보고도 나아가서 싸우지 않고 단지 문서로 보고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평시 같았으면 어찌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원균을 좌도(左道)로 보내는 것이 무방할 것 같습니다.”
선조: “좌도에는 보낼 수 없다.”
선조는 원균에게 수군 장수 벼슬을 주라고 병조판서에게 채근한다. 그러나 이덕형은 원균을 불신하고 있다. 그래서 경상좌도 수사로 삼으려고 한다. 경상좌도는 이미 왜군의 수중에 있어 이순신과 부딪힐 일이 없었다. 그런데 선조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한다. 원균을 중용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
호조판서 김수 : “서성이 술자리를 마련하여 두 사람이 화해하도록 했는데, 원균이 이순신에게 말하기를 ‘너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다.’(다섯 아들이란 권준, 배흥립, 김득광 등을 말한다)하였으니, 그가 얼마나 원망을 품고 불평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덕형: “군사 일이란 반드시 기강이 선 연후라야 앞뒤를 알 수 있는 것인데, 전라도의 일은 문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신이 군사 중에 군사 공부를 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팔도로 하여금 병조에 올리게 하였더니, 황해도 등은 이미 올려 보냈는데 전라도는 감감 무소식입니다. 매우 허술합니다.” 하였다.
이덕형은 다시 원균이 전라병사인 전라도 군대 지휘부를 은근히 비난한다. 원균을 중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간접적 의사표시이다.
이 어전 회의내용을 살펴보면 선조는 이순신의 통제사 지위를 빼앗고자 하는 마음을 굳히고 원균을 중용하려고 한다. 그런데 병조판서 이덕형은 원균을 은근히 불신하고 있다. 한편 서인의 윤두수와 김응남은 원균을 옹호하고 이순신을 비난하고 있으며, 유성룡은 드러내 놓고 이순신을 감싸지 못하는 난처한 입장이었다.
김세곤 (역사인물기행작가, 한국 폴리텍대학 강릉캠퍼스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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