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추락, ‘마약 난민’ 창궐
기사입력시간 [220호] 2011.12.09  01:34:54  조회수 2751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지난 11월11일 오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인근 산악지대에서 헬기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의 희생자는 프란시스코 블라케 모라(45) 멕시코 내무장관과 펠리페 사모라 내무부 인권차관, 조종사 등 탑승객 8명. 이 사건이 주목되는 것은 블라케 모라 장관이 대통령에 이어 권력 서열 2위인 데다 멕시코 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마약과의 전쟁’을 이끌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2006년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이 취임한 뒤 멕시코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모라 장관은 이 마약 전쟁의 최전선에 있던 인물이다. 이로 인해 이번 사고가 우연이 아니라 마약조직이 의도적으로 벌인 암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마약과의 전쟁에 앞장섰다가 항공 사고로 죽은 멕시코 장관은 모라 장관만이 아니다. 최근 7년간 멕시코에서 비행기와 헬리콥터 등 항공기 사고로 숨진 연방정부 장관은 알려진 것만 3명이다. 2005년 라몬 마르틴 우에르타 멕시코 공공안전장관이 탔던 헬리콥터가 추락해 그를 포함한 승객 6명이 사망했다. 우에르타 장관은 마약조직의 표적이던 멕시코 치안당국 책임자였다. 죽은 탑승객 중 한 명이 사고 직전 갱단의 협박 편지를 받기도 했다.

11월12일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왼쪽에서 두번째)이 하루 전 헬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프란시스코 블라케 모라 내무장관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AP Photo

또 2008년 11월에는 현 정부의 첫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당시 내무장관이던 후안 카밀로 모우리뇨 장관이 탄 경비행기가 수도 멕시코시티의 도로에 추락해 탑승객 9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사고가 비교적 안전하다는 멕시코시티 상공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마약조직에 의한 암살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이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멕시코 마약전쟁 현장의 최전선에 있었고, 갑자기 항공 사고로 비명횡사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사고를 당한 배후에 마약조직이 있다는 추측이 사실이라면 멕시코에서는 장관이라 해도 마약조직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멕시코에서 마약조직과의 전쟁이 벌어진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펠리페 현 멕시코 대통령이 취임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멕시코 상황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멕시코발 뉴스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 대량 학살당한 시신의 암매장 사건이다. 지난 3월, 멕시코 북동부 지역 도시인 타마우리파스에서 140구가 넘는 암매장 시신이 발견됐다. 4월에는 산페르난도에서 시신 183구가 나왔다. 같은 달 멕시코 북중부 지역에서도 암매장 시신 300여 구가 발견됐다. 매번 기록 경신 경쟁이라도 하듯 대량으로 발견되는 이들 암매장 시신은 모두 마약조직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 마약과의 전쟁이 선포된 이후 지금까지 모두 4만여 명이 마약조직에 목숨을 잃었다.

시신을 전시하는 등 엽기적 수법 동원

멕시코 마약조직은 범행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성과 잔인성으로 악명이 높다. 이들은 배반한 조직원이나 협조를 거부한 민간인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사체를 토막 내 전시하는 등 일부러 공포를 조장하는 수법을 쓴다. 다리 난간에 시신을 걸어놓는가 하면 길거리나 버스 정류장에 신체 일부를 진열하고, 메모지에 이 사람을 왜 죽였는지 써놓기도 하는 등 온갖 엽기적인 방법을 동원한다. 멕시코 마약조직이 이렇게 나오는 데는 조직의 세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도 있고, 강한 경고를 하려는 의미도 있다. 마약조직 간 세력 다툼도 이유 중 하나다. 마약조직들이 조직 확장을 꾀하면서 싸우는 까닭은 한 가지. 배후에 엄청난 금전적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마약조직은 미국 외교관까지 서슴지 않고 살해하기도 한다. 지난해 3월에는 미국과의 국경지대인 시우다드후아레스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에서 미국인 영사관 직원 부부 등 3명이 마약조직에 잔인하게 살해됐다.

8월14일 멕시코시티 의회 앞에서 열린 퍼포먼스. ‘그들은 어디에?’라고 적힌 팻말과 신발은 마약 범죄 희생자를 상징한다. ⓒXinhua

멕시코가 이렇게 마약조직의 무법천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극심한 빈부 격차와 청년실업 등 경제난 때문이다. 멕시코는 1994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었다. 그 뒤 미국의 값싼 공산품이 밀려들면서 멕시코 토종 제조업과 중소기업, 농업 등이 큰 타격을 입었다. 자유무역협정으로 득을 본 것은 양국의 대기업뿐이었다. 멕시코 국민은 폭등하는 물가와 낮은 임금에 시달렸다. 매년 농민이 200만명가량 농촌을 떠났고, 도시로 유입된 이들은 결국 도시 노동자의 임금 하락을 불러왔다.

특히 청년실업 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이 틈에서 마약조직이 독버섯처럼 자라났다. 돈과 일이 필요한 젊은이에게 마약은 일확천금을 안겨주는 화수분처럼 여겨졌다. 실업, 저임금, 수많은 도시빈민, 몰락한 농촌이 결국은 마약조직을 성장케 하는 최적의 환경을 만든 것이다. 멕시코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마리아 씨는 “나프타 체결 이후 빈부 격차가 극심해진 멕시코에서 가난한 청년들은 그 탈출구로 마약 카르텔을 찾는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손쉽게 돈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한 도시 인구의 10%가 ‘마약 난민’으로

국경도시 티후아나의 고등학교 교사 에반 씨는 10대 청소년도 거리낌 없이 마약조직에 합류하고 있다며 개탄했다. 그는 “아이들은 잘 차려진 옷차림에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총질을 하는 마약 갱단을 동경하게 되었다. 심지어 10대 소녀들까지 마약조직에 들어가 살인과 납치 등을 배운다”라고 말했다. 일간지 기자인 루이스 씨는 “멕시코 청년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마약조직에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에 밀입국해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나마 인간답게 사는 길이다. 경제 파탄이 우리 젊은이들을 마약조직으로 내몰았다. 마약조직에 진입하는 연령도 점차 낮아져서 최근에는 평균 열일곱 살 정도로 내려갔다”라고 설명했다.

이제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른다.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역시 서민이다. 이들이 잔인한 마약조직을 피해 집을 버리고 도망가면서 난민 사태까지 발생했다. 지난해 멕시코 북부 타마울리파스 주에서는 마약조직의 폭력에 견디다 못한 200여 가구가 미국 국경 부근 알레만 시로 피신했다. 알레만 시는 이들을 위해 긴급 보호소를 마련했다. 천재지변이나 전쟁이 아닌 마약조직의 폭력 때문에 난민 보호소가 들어선 것은 처음이다.

멕시코 북부 국경도시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도 엑소더스(대탈출)가 벌어졌다. 도시 전체 인구 150만명의 10%가 넘는 20만명이 이 도시를 떠났다. 이 도시는 한 해에만 2660명이 살해됨으로써 전쟁지역을 제외하면 세계 최고 살인율을 기록했다. 지금 이 도시는 폐허나 다름없다. 식당과 가게들이 문을 닫았고, 주택의 25% 가까이가 비었다. 이곳 공무원 에드가 씨는 “마약조직의 두목급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면 외국 사람들은 좋은 뉴스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서둘러 짐을 싼다. 앞으로 벌어질 피의 복수극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한 사람이 마약조직의 표적이 되면 그 사람의 가족과 친구, 이웃 등 적어도 수십 명은 죽는다”라고 말했다.

주민의 엑소더스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불법으로 미국 국경을 넘는다. 필자의 취재를 도와준 사무엘 기자는 “마약 갱단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보다는 차라리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멕시코 사람은 원래 낙천적이다. 이런 사람들이 고향과 가족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아주 심각한 상황이라는 방증이다. 멕시코는 지금 전쟁터다”라고 말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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