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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漢城)
 

 

고구려의 군과 성이 귀순하고 김인문 등이 당 군영으로 나아가다 ( 668년 06월 22일 ) - 한국사DB
한국사DB > 고대사료DB > 삼국사기 > 신라본기 제6 > 문무왕(文武王) > 고구려의 군과 성이 귀순하고 김인문 등이 당 군영으로 나아가다
 
〔8년(668) 6월〕 22일에 〔웅진도독부〕 부성(府城)의 유인원(劉仁願)이 귀간(貴干)註 001 미힐(未肹)註 002을 보내, 고구려의 대곡▨(大谷▨)註 003과 한성(漢城)註 004 등 2군(郡) 12성(城)이 귀순하여 항복하였다고 고하였다. 왕은 일길찬(一吉湌) 진공(眞功)註 005을 보내 칭하(稱賀)하였다. 인문(仁問)·천존(天存)·도유(都儒) 등은 일선주(一善州)註 006 등 일곱 군(郡) 및 한성주(漢城州)註 007의 군사와 말을 거느리고 당나라 군영(軍營)으로 나아갔다.
 
註) 004
한성〔군〕(漢城〔郡〕): 본서 권제37 잡지제6 지리4 고구려조에 “한성군(漢城郡)은 또는 한홀(漢忽) 또는 식성(息城) 또는 내홀(乃忽)이라고 한다.”고 전한다. 또한 권제35 잡지제4 지리2 한주조에는 “중반군(重盤郡)은 본래 고구려 식성군(息城郡)이었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고 전한다. 한성군은 옛 황해도 재령으로 비정된다. 한성은 고구려의 별도(別都)였을 만큼 고구려 남부의 주요 거점으로서 처려근지(處閭近支)급 지방관이 다스렸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노태돈, 1999, 『고구려사 연구』, 사계절, 242~251쪽).
 
註) 007
한성주(漢城州): 한성주는 한산주(漢山州)라고 부른다. 한산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본서 권제5 신라본기제5 태종무열왕 6년(659) 10월조 참조
 
 
 
한산주의 주·군·현·성 - 한국사DB
한국사DB > 고대사료DB > 삼국사기 > 권 제37잡지 제6 > 지리(地理)四 고구려(高句麗) > 한산주의 주·군·현·성
 
註) 184
한성군(漢城郡) : 신라 경덕왕이 중반군(重盤郡)으로 고치기 이전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고 하는데, 재령강 상류인 북한의 황해남도 신원군 아양리 일대로 비정된다. 본서 권35 지리2 한주조에는 식성군(息城郡)으로 나온다. 한홀(漢忽), 식성(息城), 내홀(乃忽)로도 일컬었다고 한다. 한성(漢城)은 고구려 후기 3경(京)의 하나였는데, 〈평양성각자성석〉에도 ‘한성’이라는 명칭이 확인된다. 신원군 아양리에서는 재령강 연안의 평지를 따라 고구려 한성 별도의 유적으로 보이는 대규모 도시유적이 확인되었다. 본서 신라본기6에 따르면 고구려 멸망 직전인 668년(문무왕 8년) 6월 22일에 고구려의 대곡(大谷)과 한성(漢城) 등 2군(郡) 12성(城)이 신라에 귀복(歸服)하였다고 하는데, 한성이 고구려 시기에 재령강 유역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본서 권35 지리2 한주조 ‘영풍군’ 항목 참조.
 
註) 185
한홀(漢忽) : 신라 한주 소속 중반군(重盤郡)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는 한성군(漢城郡)의 다른 이름이다. 한홀의 ‘홀(忽)’은 한성의 ‘성(城)’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고유어이며, ‘한(漢)’은 ‘크다(大)’는 뜻의 고유어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9~500쪽 및 509~510쪽).
 
註) 186
식성(息城) : 신라 한주 소속 중반군(重盤郡)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는 한성군(漢城郡)의 다른 이름이다. 본서 권35 지리2 한주조에는 중반군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 ‘식성군(息城郡)’으로 나온다.
 
註) 187
내홀(乃忽) : 신라 한주 소속 중반군(重盤郡)의 고구려 시기 지명이라는 한성군(漢城郡)의 다른 이름이다. 내홀의 ‘홀(忽)’은 한성의 ‘성(城)’에 해당하는 고구려의 고유어이다(도수희, 2005, 『백제어 어휘 연구』, 제이엔씨, 499~5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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