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 (泉城)
집필자 : 이상훈
 
 
개설
 
천성(泉城)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오두산성(烏頭山城)으로 비정되고 있다. 오두산성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오두산(119m)을 중심으로 둘레 약 620m로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사면이 가파른 편이며 서쪽으로 임진강, 남쪽으로 한강에 면하고 있다.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서안쪽에 당시 성벽이 정연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오두산 정상에 통일전망대가 조성되고, 오두산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사적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기는 어렵다.
 
 
명칭 유래
 
『삼국사기(三國史記)』 도미전(都彌傳)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백제 개로왕(455~475)이 도미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도미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한 후 배에 실어 띄워 보냈고, 이후 도미 아내가 도망하여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남편 도미를 만났다고 한다. 천성이라는 지명이 확인되는 것은 5세기 중엽이며, 천성은 대체로 한강 하구에 위치한 지금의 오두산성(烏頭山城)으로 비정된다. 오두산성은 원래 오도산성(烏島山城)이라 불리었는데, 오도(烏島) 즉 까마귀섬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이 일대의 옛 지명이 천정구(泉井口)였다.
 
 
형성 및 변천
 
오두산성이 위치한 파주 일대는 원래 마한에 속해있다가 백제의 영토 확장과정에서 백제에 복속되었다. 이후 백제와 고구려의 대결 속에서 결국 475년 파주 일대 전체가 고구려에 점령되었다. 신라 진흥왕 시기에 신라가 고구려를 몰아내고 차지하였고, 삼국통일 과정에서 신라와 고구려의 각축장이 되었다. 675년 나당전쟁 당시에는 신라군과 당군이 직접 충돌하는 주요 전장이 되기도 하였다.
 
 
내용
 
김정호(金正浩)가 작성한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백제의 관미성(關彌城)을 오두산성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오두산성을 백제의 관미성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오두산성의 위치가 전략적으로 그 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당전쟁 당시 신라와 당은 주로 임진강을 경계로 대치하고 있었다. 당군은 신라의 임진강 방어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임진강과 한강이 합쳐지는 오두산성 즉 천성을 전격적으로 공격하였다. 675년 9월 당의 장수 설인귀(薛仁貴)는 숙위학생 풍훈(風訓)을 길잡이로 삼아 천성을 공격하였다. 신라의 장수 문훈(文訓) 등이 맞아 싸워 1,400명을 목베었으며, 병선 40척을 빼앗았다. 설인귀는 포위를 풀고 달아났으며, 이 과정에서 말 1,000필을 노획하였다.
 
천성전투는 곧이어 발생한 매소성(買肖城)전투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매소성전투는 나당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분수령이 되었던 전투로, 여기에서 당군이 패하면서 신라가 승기를 잡게 되었다. 매소성전투의 전초전으로서, 천성전투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대동지지(大東地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나당전쟁사 연구』(서영교, 아세아문화사, 2006)
「파주 오두산성 동벽 유구 조사와 성격 고찰」(박영재, 『백산학보』 80, 2008)
「도미전의 천성도에 대하여」(도수희, 『한국지명연구』, 이회문화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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