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navy.ac.kr/common/file/chungmugong1_01.pdf

4. 이순신병법 (1)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우세한 상황을 조성해야 한다.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비록 전체의 전투력은 열세하더라도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는 전투국면에서는 우세한 상황을 조성해야 한다. 이것이 전쟁 승리의 법칙 이른바 병법이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이다. 이순신은 언제나 가용한 모든 함선 세력을 통합, 운용함으로써 분산되어 있는 일본 수군에 대해 상대적 절대 우세 상황을 조성할 수 있었다. 
 
▶ 통합된 세력으로 분산된 열세의 적을 공격하라-병력 집중의 원리
 
이제까지 임진왜란 해전에서의 조선 수군의 승리 요인을 설명하면서 잘못 된 것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해전 승패에 결정적 요소인 함선의 성능이나 무기체계 같은 하드웨어적 전투력 요소를 배제하였다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순신을 홍길동전이나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일당백(一當百)의 초인(超人)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은 과학이지 신화가 아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최소한 싸움이 벌어지는 전투국면에서는 아군의 전투력이 적보다 강해야 한다. 이것은 상식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동안 늘 ‘이순신은 열세한 상황에서 우세한 적을 맞아 용전분투하여 승리했기 때문에 위대한 영웅이요, 성웅이다’라는 도식 하에 이순신을 이야기해 왔을까? 그것은 위대한 영웅에 대한 무반성적, 무비판적 찬사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정기의 고취를 위해 이순신을 논의했던 일제시대나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비약적 경제 성장을 위해 국민적 의식의 통합이 필요했던 제 3 공화국 시절에는 역사적 사실이든, 그를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설화성 이야기이든,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이든지에 관계없이 그것이 이순신의 위대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아무 것도 문제 될게 없었다. 모두 다 이순신의 성웅적 면모나 위대성을 존경하고 찬양하기 위한 공통의 목적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설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꾸며진 이순신의 모습이 아니라 군사전문성을 지니고, 혁신 마인드를 지녔으며, 탁월한 리더십 역량을 갖춘 위대한 수군 장수 이순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순신은 꾸며진 모습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 모습이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잘못 꾸며진 내용을 가지고 위대하다고 찬양하는 것은 오히려 그분이 가지고 있는 위대성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일이 아닐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순신에 대한 가장 오래되고 잘못된 편견과 오해 중의 하나는 그는 언제나 열세의 상황에서 우세한 적을 맞아 싸워 이겼기 때문에 위대한 장수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영웅사관의 관점이다. 그리고 그 예로는 13 척으로 133 척을 물리친 명량해전, 55 척으로 73 척과 싸워 승리한 한산해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순신은 
임진년(1592 년) 제 1 차 출동에서부터 제 4 차 출동까지의 16 회의 해전에서 부산포해전을 제외하고는 수적인 면에서도 결코 열세의 해전을 벌이지 않았다. 거꾸로 이순신은 언제나 통합된 세력으로 상대적 절대 우세를 조성함으로써 분산되어 있는 열세의 일본 수군에 대해 일방적이고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 때문에 조선 수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던 반면 일본 수군은 언제나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손자병법》에 “싸움을 잘하는 자는 승리하기에 쉬운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이다(善戰者, 勝於易勝者也)”라는 구절이 있다. 1: 10, 1: 100 으로 싸워 이기는 자가 유능한 장수가 아니라 거꾸로 10 :1, 100:1 로 싸우는 자가 유능한 장수라는 말이다. 이순신은 ‘통합된 세력으로 분산된 열세의 적을 공격하라’는 이른바 병력 집중의 원리를 해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적용하였다. 이순신의 조선 함대는 함대별, 부대별 독립 작전을 거의 펼치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전라좌수영의 모든 함선 세력 또는 전라좌ㆍ우수영의 모든 함선 세력 또는 전라좌ㆍ우수영, 충청수영, 경상우수영의 모든 함선 세력을 집결시킨 상태에서 해상 작전에 임하였다. 
 
임진년(1592 년) 제1차 출동에 동원된 조선 수군의 함선 규모는 전라좌수영의 모든 세력을 망라한 것으로써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 등 모두 85척이었다. 협선이나 포작선은 함선간의 이동이나 정보 탐색, 군수 지원을 위해 동원된 것이라고 볼 때 실제 전투가 가능한 전투함은 판옥선 24 척이었으며 여기다 원균이 끌고 나온 경상우수영의 전선 4척을 추가하면 총 28척이 1차 출동 때의 함선 규모이다. 첫 해전인 옥포에서 30여척의 일본 함선과 조우했는데 해전 결과 일본의 대선 13척, 중선 6척, 소선 2척 등을 포함해 총 26척을 격파, 분멸하였다. 척수로도 85척 대 30여 척으로 우세였으며, 함선의 성능이나 무기체계의 질적 우세를 포함하면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의 전투력의 차이는 훨씬 더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당일 오후 합포에서 5척을, 이튿날에는 적진포에서 13척을 만나 모두 격파하였다. 
 
임진년 제 2차 출동의 첫 해전인 사천해전에는 전라좌수영과 경상우수영의 함선 26척(판옥선 등 전투함, 지원선 제외)이 참여하여 조우한 13 척을 모두 격파, 분멸하였다. 이어서 당포에서도 조우한 21척을 모조리 격파하였다. 당항포해전 직전에는 전라우수영의 이억기 함대 25척이 합세하여 함선이 모두 51 척(지원선 제외)에 달했으며 조우한 26척 모두를 어렵지 않게 격파할 수 있었다. 나아가 율포에서 만난 7 척도 모두 격파, 분멸하였다. 

임진년 제3차 출동에는 한산해전이 포함되어 있다. 조선 수군의 함선 규모는 대략 55척(일본 측 기록에 의하면 조선 수군의 함선 세력은 대선 59척, 소선 50척으로 총 109 척이다)이었으며, 일본 수군은 73척(대선 36척, 중선24 척, 소선 13척)이었다. 척수 면에서도 결코 열세인 해전이 아니었다. 해전의 결과 적의 대선은 총 36척 중 35척이 격파된 것을 포함하여 총 73척 중 59척이 격파되었다. 일방적이고도 완전한 승리였다. 이어서 이틀 뒤에 벌어진 안골포해전에서는 해전을 회피하고 포구에 정박해 있는 42척을 공격하여 절반 이상을 격파하였다. 제3차 출동에서 조선 수군은 전라좌우수영과 경상우수영의 함선 세력이 통합된 상태에서 해전을 치른 반면 일본 수군은 견내량에 73척, 안골포에 42척이 분산된 상태에서 각개 격파되었던 것이다. 
 
임진년 제4차 출동에서는 전투 함선 74척을 포함해 총 166척의 함선이 동원되었다. 전라좌수영을 출발한 이순신 함대는 일본 수군의 자취를 수색하면서 부산포로 향하였다. 수색과정에서 장림포에서 6척, 화준구미에서 5척, 다대포에서 8 척, 서평포에서 9척, 절영도 앞 바다에서 2척을 만나 모두 격파하였다. 그야말로 토끼몰이식 해전이었다. 부산포에는 500여척의 일본 함선이 포구에 정박해 있었다. 그러나 일본 수군 함대는 조선 수군의 위용에 압도되어 바다로 나오지 못하고 육지에 진을 치고 조총으로 대응하였다. 조선 수군은 위험을 무릅쓰고 장사진(長蛇陣)으로 돌진하여 100여척의 일본 함선을 격파, 분멸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임진년(1592 년) 네 차례의 출동 중에 조우한 일본의 함선은 총 768척이었으며, 이들은 16회에 걸쳐 총 336척이 각개 격파 또는 분멸되었다. 만약 일본 수군이 통합되어 운영되었다면 조선 수군이 아무리 질적으로 전투력이 우세했다할지라도 이처럼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통합된 세력으로 분산된 열세의 적을 공격하라’ 이른바 ‘병력집중의 원리’야말로 임진왜란의 모든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병법의 핵심 원리였던 것이다.  


임진왜란 무기, 군사  http://tadream.tistory.com/11518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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