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navy.ac.kr/common/file/chungmugong1_01.pdf 

13. 이순신의 리더십 (1) 위대한 리더가 되기 위한 토대 - 인문적 소양 
 
이순신은 무인(武人)이었지만 문인(文人)적 소양까지를 겸비하였다. 22세가 되어 무과(武科)로 진로를 결정하지 전까지만 해도 그는 희신(羲臣), 요신(堯臣) 두 형을 따라 유학(儒學)을 공부하였다. 문과(文科) 과거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와 같은 유년기, 청년기의 이순신의 이력은 그가 문무(文武)를 겸비한 위대한 영웅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었다. 명장(名將)이나 유능한 리더를 꿈꾸는 사관생도들이나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새겨보아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병자년(1576년) 무과(武科) 시험 때의 일화 - "이것은 무사(武士)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이순신은 무과 시험을 준비한지 6년째인 28세(1572년) 되던 가을에 처음으로 무과 시험에 응시하였다. 그런데 달리던 말이 거꾸러지는 바람에 왼쪽 다리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으며, 결국 낙방의 고배를 마셨다.

이순신은 이후 4년 동안 무과시험 준비에 열중하여 드디어 32세가 되던 병자년(1576년) 봄에 있었던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계에 진출하게 된다. 무과시험에는 『육도(六韜)』ㆍ『삼략(三略)』ㆍ『손자(孫子)』 등 무경의 중요내용을 암송하는 시험이 있었는데, 이순신은 대부분의 과목을 무난히 통과하였다. 그런데 황석공(黃石公)이 지었다는 병서를 암송하는 데 이르러 시험관이 장량(張良)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장량(張良)이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놀았다 했으니 장량이 과연 죽지 않았을까?”

이 질문의 요점은 장량이 만년(晩年)에 신선술(神仙術)에 정통한 적송자를 찾아가 신선술을 배워 죽지 않았다는 말이 있는데, 이에 대한 이순신의 견해를 물은 것이다. 장량이 누구인가? 그는,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나라가 망하고 초(楚)나라의 항우(項羽)와 한(漢)나라의 유방(劉邦)이 쟁패할 때 유방을 도와 통일제국 한나라를 건국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군사지략가요 병법의 대가이다. 그런데 그런 장량이 만년(晩年)에 신선이 되었다는 설이 항간에 널리 펴져 있던 참이었다.

결국 시험관은 동양의 정통종교인 도교(道敎)에서는 불로장생술(不老長生術)을 수련하면 영원히 살 수 있는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한 이순신의 생각을 떠 본 것이다. 이순신은 대답하였다.

“사람이 나면 반드시 죽는 것이요(有生, 必有死), 『통감강목(通鑑綱目』에도 ‘임자(壬子)년 6년에 유후(留侯) 장량이 죽었다’고 하였으니 어찌 신선을 따라가 죽지 않았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다만 신선술에 심취한 사람들이 꾸며낸 말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이순신은 장량이 신선이 되었다는 설에 대하여 두 가지 관점에서 논박하였다. 하나는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유학적 관점이요, 다른 하나는 주희(朱熹)가 지은 『통감강목』이라는 역사서적에 장량이 죽었다는 기록에 근거한 사실주의, 증거주의적 관점이다.

사실 시험관은 이순신을 시험해 보고자 이 질문을 던졌다. 아무리 무경(武經)에 정통하였다 하더라도 무인(武人)인 주제에 이 정도의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 질문은 던진 시험관은 유학적 세계관과 경전에 정통한 문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이 질문 속에는 시험관의 문신으로서의 우월감과 무인에 대한 경시의 태도가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유학적 세계관에 의하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반드시 죽게 되어있다. 따라서 영원히 살려는 것은 인간의 욕망에 불과하며,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행위일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유학에서의 인생의 목표는 신선이 되어 영원토록 살거나 죽은 다음에 천국에 가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의 이치에 합당한 삶 이른바 ‘의(義)로운 삶’, ‘올바른〔是〕삶’, ‘선(善)한 삶’을 사는 것이다.

이순신은 시험관의 질문에 유학적 세계관에 부합하는 답변을 정확히 하였을 뿐만 아니라 『통감강목』이라는 역사서적의 기록을 근거로 장량의 죽음을 확인하면서, 진리는 상상이나 억측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당당하게 펼친 것이다.

이와 같은 기대 이상의 답변에 직면한 시험관들은 서로 돌아보면서 “이것은 무사(武士)로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라고 감탄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문신(文臣)들은 유학의 경전을 주요 시험 과목으로 하는 문과 과거 시험을 통과한 조선의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이순신의 문인(文人)적 소양은 그들과 어깨를 견주어 손색이 없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이순신은 자신의 내면적 정감을 시(詩)와 일기(日記)를 통해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문학적 자질, 역사적 교훈이 담겨있는 역사서적 읽기를 통해 정립된 올바른 역사의식, 그리고 ‘의리(義理)에 죽고 의리(義理)에 사는’ 당시의 주류적 세계관이었던 유학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소유한 무인(武人)이요 리더였다. 그는 전통사회에서의 리더 교육체계 이른바 문학(文), 역사(史), 철학(哲)의 인문적 소양을 중심 내용으로 하는 전인(全人)적 교육체계를 가장 충실히 소화한 조선의 대표적 리더였던 것이다. 미래의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바로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어떤 ‘인문적(人文的) 소양(素養)’을 쌓아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이정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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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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