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409231112461&pt=nv
[언더그라운드. 넷]“박근혜 위원장님 다녀가셨다”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2014.09.30ㅣ주간경향 1094호
“어쩜 저렇게 남북 ‘조선’이 다른 게 없을까요.” 9월 중순, 한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진을 본 누리꾼의 품평이다. 두 사진이 비교되어 있다. 위 사진은 “김정은 장군께서 다녀가시었다”는 북한의 한 공장에 붙어 있는 표어 사진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안내판이다. ‘제18대 박근혜 대통령 감천문화마을 방문’이라는 제목의 안내판이다. 주목을 끈 것은 남쪽의 안내판이다. 누리꾼이 비슷하다고 느낀 것은 어투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2012년 2월 24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계실’ 때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하여 주민들과 함께 골목길을 ‘다니시며’ 서민들을 위한 정책 마련을 ‘다짐하셨다.’” 따옴표를 친 극존칭에 거부감을 갖는 것.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부산시 사하구의 감천문화마을에 저 표지판이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여행 블로그 등에 올라온 방문기에도 종종 등장하는 표지판이다. 사진은 대부분 “눈에 거슬렸다”는 의견과 함께 게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대통령이 되어서 방문하면 또 모를까,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방문한 것을 갖고 왜 안내문을 만들었을까. “서민을 위해 정책 마련을 다짐했다”는 건 “어부들은 다양한 물고기를 많이 잡아야 합니다”라는 유명한 김일성 주석의 교시처럼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저 안내판을 만드는 데 시민들의 세금이 사용되었을까. 부산시 사하구청 문화관광과에 문의해봤다. 돌아온 답. “아, 그건 우리가 아니라 창조도시기획단 사업이었습니다.” 세금이 들어간 건 맞았다. 몇 단계 더 거쳐 관련 담당자를 찾아냈다. “스토리텔링이 유행이지 않았습니까. 주민들과 운영위원회 회의를 하는데 그런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주민들의 요구로 설치되었다는 말이다.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에 세워져 있는 박근혜 대통령 방문 안내표지판.
‘스토리텔링’에는 사연이 있다. 2012년 12월, SBS 인기 오락프로그램인 ‘러닝맨’에서 이곳을 무대로 촬영했다. 그 전후로 방문객 수가 달라졌다. “스토리텔링으로 ‘러닝맨’이 다녀간 곳이라고 표기하면 어떻겠노?”라는 의견이 주민들로부터 나왔고,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과거 다녀간 일을 포함해 ‘별 보러가는 계단’, ‘미로미로 골목길’을 포함해서 4개의 안내판을 세우는 걸 건의했다는 것이다. 예산은 구에서 지출했다. 모두 다해 500여만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극존칭’은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그것도 주민들의 요청? 형평성의 문제도 제기된다. 예를 들면, ‘러닝맨’의 유재석‘님께서도’ ‘다녀가셨을까’. “그런 건 아니고요. 왜 공무원들은 행사를 할 때 그런 것 있지 않습니까. 구청장님, 시장님 하는 식으로…. 박 대통령께서도 막 당선되었고 하다 보니 그렇게 문구를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기자가 이 관계자와 통화하던 날,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이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했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1박2일팀도 이곳에서 촬영해 갔다고 한다. 사하구청 관계자는 “현재는 표지판이 4개밖에 없지만, 앞으로 1박2일 멤버가 다녀간 것 등도 추가해 안내판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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