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659970.html?_fr=mt1

함포 수십발 ‘쾅쾅’ 서해교전 위기…청 “알아서 해라”?
등록 : 2014.10.15 20:15수정 : 2014.10.15 23:25

지난 7일 서해 교전상황 어땠기에
지휘관 판단따라 ‘선사격 후보고’ 최윤희 합참의장도 강경대응 기조
불발탄으로 사격 중단 은폐 의혹. 함포 94발 쏘고도 북 피해 확인 못해

 

남북군사회담이 15일 44개월 만에 열렸으나 서로 이견만 확인한 채 성과 없이 마쳤다. 이날 회담이 전격적으로 열린 직접적 배경은 지난 7일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NLL)에서 남북간 함포 사격을 주고받은 사건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이 판문점에서 열린 사실을 확인하면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지난 7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앞으로 전통문을 보내 ‘10월7일 서해 함정간 총격 사건과 관련해 긴급 접촉을 갖자’고 제의해 이뤄졌다”고 밝혔다. 북한이 그만큼 이 사건을 심각하게 여겼다는 방증이다.

실제 합동참모본부의 발표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의 발언 등을 토대로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이 사건은 확전도 무릅쓴 듯한 군 당국의 과도한 공격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또 작전상 무능이나 일부 은폐 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군 당국의 맨얼굴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사건은 7일 북한 경비정 1척이 오전 9시50분께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을 0.5해리(900m) 침범하면서 비롯됐다. 해군 유도탄고속함은 경비정의 월선에 대해 즉각 경고통신으로 북방한계선 침범 사실을 알린 뒤 76㎜ 함포로 경고사격 5발을 쐈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이 37㎜ 함포로 추정되는 화기로 수십발 대응사격을 해오자, 해군의 유도탄고속함은 76㎜ 함포와 40㎜ 함포로 즉각 북한 경비정에 대해 조준·격파사격을 했다. 정호섭 해군 작전사령관은 15일 해군본부 국감에서 “격파사격은 반드시 명중시키겠다는 개념으로 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함정을 직접 맞히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해군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함정에 조준·격파사격을 시도한 것은 근래 없던 일이다. 군 당국자는 “2009년 11월 대청해전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자칫 북한군이 반격을 해오면 다시 한번 서해교전으로 확전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그동안 북한은 우리가 경고사격을 하면 (맞대응 없이) 북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날은 북한이 이례적으로 함포로 대응사격을 해와 우리도 매뉴얼에 따라 대응사격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합참은 2002년 서해교전을 계기로 ‘경고방송→차단기동→경고사격→위협사격→격파사격’으로 된 5단계의 예규를 고쳐 ‘경고방송→경고사격→대응사격(위협사격+격파사격)’의 3단계로 단순화했다. 경고사격 뒤 북한이 반격하면 중간단계 없이 곧바로 격파사격 등으로 대응하도록 돼 있는 절차를 따랐다는 것이다.

당시 격파사격은 ‘선조치 후보고’ 원칙에 따라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최윤희 합참 의장이 사건 보고를 받고 지휘통제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난 뒤였지만, 최 의장이 현장에 있었더라도 상황은 같았을 것이라는 게 군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남북간 군사충돌이나 확전 가능성 등에 대해 종합적 판단과 지침을 내려야 할 청와대도 전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최 의장은 13일 국감에 출석해 “청와대에서 ‘군이 알아서 대응하라’고 위임을 받았다”고 말했다. 확전 위험을 안고 있는 서해상 군사대결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당시 북한 함포는 해군 유도탄고속함에 위협이 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과잉대응 논란을 면하기 어렵다. 당시 북한 경비정과 해군 유도탄고속함의 거리는 8.8㎞였고, 북한 경비정의 37㎜ 함포 최대 사거리가 8㎞여서 유도탄고속함에 닿을 수 없었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 경비정의 포탄이 우리 쪽 함정과 북한 함정 중간쯤 바다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현장에선 적의 포탄이 떨어지는 순간 ‘죽느냐, 사느냐’의 긴박한 순간이 되기 때문에 반격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런 무력충돌은 일정 부분 예고된 측면이 있다.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7일 국방부 국감에서 합참 자료를 인용해 “북한 함정의 북방한계선 침범은 2011년 5차례, 2012년 5차례, 2013년 9차례인데, 올해 들어선 10월까지 벌써 10차례나 되는 등 증가 추세에 있다”며 “우리 군의 경고사격도 2011~2013년에는 단 1차례였는데, 올해는 벌써 6차례나 된다”고 말했다. 북방한계선에서 북한의 도발이 늘어났고, 군 당국의 대응도 더 강경해졌다는 뜻이다.

또 군은 함포 94발을 쏘고도 북한 함정의 피해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당시 포격에는 유도탄고속함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고속정 2척도 동원됐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은 해군 함정 3척의 조준사격을 뚫고 북쪽으로 돌아갔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 경비정이 5~10분 사이 북방한계선으로 돌아가 피해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군의 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애초 7일 사건 당시 합참 관계자는 “조준사격이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응사격을 했고 조준사격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윤희 합참 의장은 13일 국감장에서 의원들의 추궁이 잇따르자 “조준·격파사격을 했다”고 뒤늦게 실토했다. 군은 유도탄고속함이 포사격을 하다 불발탄 때문에 포가 작동하지 않아 뒤로 물러섰다는 사실도 공개하지 않다가, 이날 의원들의 추궁에 “그런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다. 합참은 뒤늦게 “당시 유도탄고속함의 76㎜ 함포 14발, 40㎜ 함포 29발 발사 뒤 불발탄이 생기는 바람에 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작전 중 발생한 실수나 잘못을 감추려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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