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500&key=20080111.22015193314

이영식교수의 이야기 가야사 여행 <48> 함안의 아라국
50여기 왕릉 고분 대열 … "아! 정말 가야구나"
확인 가능 고분 합치면 100여 기
가야시대 통틀어 지속적 번영
국제신문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2008-01-10 19:34:36/ 본지 15면

아라가야의 대형 고분들이 밀집한 경남 함안 말산리·도항리고분군.

현대의 가야왕국

2000~1500년 전의 가야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곳이 있습니다. 합천 해인사의 가야산이 유명하고, 메트로폴리스의 부산에도 가야동이 있습니다만, 우선 경치를 보기만 해도 "아! 정말 가야구나"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은 경상남도 함안의 가야읍이 유일할 겁니다. 남해고속도로의 함안IC에서 내려 읍내로 들어가다 보면, 오른쪽 군청 건물 뒤쪽으로 거대한 고분들이 남쪽을 향해 파도치는 대열이 보입니다. 500년 이상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리드해 왔던 아라국 왕릉의 언덕입니다. 아라국의 왕릉묘역이란 점에서는 모두 같은 성격의 고분들이지만, 행정구역에 따라 고속도로에 가까운 쪽이 말산리고분군, 그 남쪽이 도항리고분군으로 나뉘어 불리기도 했습니다. 군청에 들어가서 청사를 바라보고 왼쪽에 있는 가파른 시멘트계단을 오르거나, 군청사거리를 조금 지나 보이는 안내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고분공원에 도착하게 됩니다. 북에서 남으로 뻗어 내린 주능선과 주능선의 몇 군데에서 서쪽으로 갈려 내려간 지맥의 높은 곳에는 예외 없이 대형고분들이 웅장한 대열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름 10m 이상의 봉분이 확인되는 대형고분들만도 50여 기에 가깝고, 고분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을 모두 합하면 100여 기 이상의 고분이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유적입니다.

끝산이라구요 ?

그런데도 이곳의 지명과 고분군의 이름이 끝 말 자의 말산(末山)이라는 것은 말이 되질 않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면 이곳이 원래부터 말산은 아니었습니다. 일제시대까지도 말이산(末伊山)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말이산이 줄어 말산으로 되었던 겁니다. 말이산이란 '마리산'에 대한 한자음 표기에 불과하고, 이곳에 아라국 역대의 '우두머리'들이 잠들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마리산은 '머리산'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아라국 역대 왕릉이 '끝산(末山)'이라니요? '우두머리의 산'을 '끄트머리의 산'으로 전락시켰던 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오히려 이러한 이름은 아라국의 건국사정을 반영하는 지명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가야사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김해의 구지봉에서 가락의 9촌장들이 모여 '머리를 내어라' 라 기원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우두머리'가 머리 수(首)에 나타날 로(露)의 수로(首露)왕이었다고 얘기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함안 아라국의 '머리산'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라국의 건국신화는 남아있지 않지만, 되찾게 되는 '머리산'의 이름 하나가, 바로 여기가 아라국 건국의 무대였음을 알게 해주는 단서가 되는 겁니다.

아라국의 왕궁터

사실 고분군의 북쪽 끝에도 역대 왕들이 아라국을 다스리던 왕궁에 관련되는 지명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가장 큰 4호분에서 서북쪽을 바라보면 세 개의 봉우리가 보이는데, 삼봉산이라 합니다. 삼봉산 아래쪽으로 가야읍 가야리 가야동이 있습니다. 삼봉산과 가야동 사이가 '선왕동'이고, 가야동 앞에는 서에서 동으로 흘러 함안천에 합류하는 '대문천'이 있고, 그 사이에 '진터'가 있으며, 남서쪽으로 '남문·남문 내· 남문 외'라는 지명이 있습니다. 가야동의 서북쪽에는 '궁 뒤'라는 이름도 남아있고, 가야동 동쪽 끝에는 새 마을이란 뜻의 '신읍'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야읍 가야리 가야동이라는 너무나 '철저한 가야'의 지명과 말산리·도항리의 '머리산고분군'은 이곳 함안이 가야왕국의 옛터임을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그동안 김해나 고령에 치여 별로 주목받지 못한 억울함도 있을 겁니다. 전기가야에서의 김해와 후기가야에서의 고령과는 다르게, 가야의 전 시기에 걸쳐 지속적인 번영을 구가했던 곳은 이곳의 아라국뿐이었습니다. 어느 가야국에 비해 문자기록이나 고고자료도 적지 않습니다. 

다음 주부터 이러한 아라국의 가야사를 더듬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제대 인문사회대학 학장·역사고고학과 교수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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