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9863
군사주권 없는 ‘통일대박론’은 ‘악마의 호수’
[정상모의 흥망성쇠] ‘강대국 전쟁판’의 ‘졸’을 애걸한 박정권
입력 : 2014-11-06 10:45:37 노출 : 2014.11.06 14:15:49 정상모(평화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 sang_16@hanmail.net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무기한 연기는 국가주권의 핵심인 군사주권의 사실상 포기다. 이는 또한 1970년 1월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처음 강조한 ‘자주국방’의 포기다.
군사주권도, 자주국방의 의지도 없는 나라를 어찌 정상적인 독립국가라 할 수 있겠는가. 어느 국제회의에서 아프리카의 대통령들이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런 반응에 이제 뭐라고 답해야 할까.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와 역내 안보환경이 안정적인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부합할 때’ 전작권을 한국이 되찾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북한이 감히 야욕을 못 갖도록 하는 모든 조건을 갖출 때까지 전작권을 보류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국군의 능력과 주변 환경 등의 조건이 갖추어질 때가 과연 오겠는가. 이는 사실상 영원히 전작권을 갖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한민구 국방장관은 “전작권 전환의 기본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거나 “전작권 전환의지가 확실하다”고 강변했다. 기만적인 억지 주장에 할 말을 잃는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몰래 미국에게 전작권 환수 시기를 연기해 달라고 애걸하다시피 요청해 협상을 진행해 왔다. 작전권 환수를 차질없이 추진하겠다는 국민과의 공약을 파기해놓고 또다시 국민을 속이려는가. 군사주권의 포기로 인해 치러야 할 혹독한 대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 모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SCM) 결과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안보협의회에서 전작권 전환시기를 재연기하기로 합의했으며, 이에따라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 있는 한미연합사령부 본부 등을 존치하기로 했다. ⓒ 연합뉴스
현행 군사지휘체계에서 전쟁 조짐이 보여 ‘데프콘3’가 발령되면 작전통제권이 미국인인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넘어간다. 한반도 전쟁 개시 여부를 실제 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미국의 군 지휘관이 판단하게 된다는 뜻이다. 한민족의 운명이 미국의 결정에 따라 좌우된다는 얘기 아닌가.
미국은 한반도 유사시 핵무기의 사용을 배제하지 않을 방침이다.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사용을 놓고 한국과 미국의 입장이 엇갈릴 때 전작권을 가진 미국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미국의 국익과 전략에 따라 결정하지 않겠는가.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공동으로 군통수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미국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한국 주권의 포기 사태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미국의 일방적인 의사에 따라 진행돼 온 게 한-미 군사동맹관계의 현주소다. 미국은 미국의 국익과 자존심이 걸린 상황에선 한국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전면전을 각오한 대규모 무력시위를 벌이면서도 1968년 1.21, 1983년 버마 아웅산, 2010년 연평도 포격 사태 때 한국 정부의 대북 응징 요구를 철저하게 억눌렀다. 오죽하면 ‘동맹을 깰 거냐’는 따위의 발언으로 한국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미국의 연합사령관은 “대한민국의 총독에 가깝다”는 말까지 나오겠는가.
한국의 전작권 전환 재연기 요청을 마지못해 들어준 척한 미국의 요구로 한국의 군사비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게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은 우선 전작권 전환 조건의 하나인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 구비’를 명분으로 미사일방어의 핵심 무기 체계인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의 한반도 배치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남한 전역을 방어하기 위한 사드 포대 배치에 4조-8조원이 추산된다. 한국형 미사일방어, ‘킬 체인’ 구축비용 17조원에다 전작권 재연기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한 첨단 무기 도입, 주한 미군 이전과 주둔 비용 증액 등까지 계산하면 한국의 군사비 부담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세계 8대의 무기수입국인 한국은 미국산 비중이 80%로 이미 미국 무기의 2대 수입국이다.
한국은 이처럼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돈을 들여 무기를 도입해 왔으면서도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감당 못해 미국으로부터 작전권을 환수할 수 없다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한국군이 2013년 기준으로 북한의 33-34배나 되는 국방비를 쓰면서도 독자적인 작전권 행사의 준비가 안 됐다면 이를 어떻게 납득할 수 있겠는가. 어쩌다 우리 군이 자주국방의 정신을 팽개친 채 오로지 미국에만 의존하려는 ‘혼 없는 군대’가 돼 버렸는지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참사 때 문제가 된 통영함의 비리 사태와 관련해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의 책임론이 거론된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의 정치 관여 사건을 비롯해 1군사령관 음주 파문과 강제 전역, 군 지휘관의 성폭행과 성추행, 이로 인한 여군 장교의 자살, 가혹행위, 비리 등 군에서는 무능하고 부패한 군대의 박람회처럼 온갖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국가안보는 미국에게 맡겨놓고 엉뚱한 데나 골몰하는 ‘혼 없는 군대’의 필연적인 결과다. 참으로 한탄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한-미가 전작권 전환 조건으로 ‘역내 안보환경’을 처음으로 합의했다는 점이다. ‘역내 안보환경’은 중국과 주변국들, 일본 사이의 갈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패권 의도가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번 전작권 재연기에서 한-미-일 군사 정보공유 방안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체제를 강화하기로 했다는 뜻 이다.
한국이 미국 편에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에 연루되겠다는 것인가. ‘강대국의 전쟁판’의 ‘졸’이 되겠다는 것인가.
이언 모리스 미국 스텐퍼드대 교수가 최근 한국의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서양에서 동양으로 힘의 축이 이동하는 앞으로의 수십 년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가 될 것”이라며 “역사적으로 부와 힘이 옮겨갈 때는 예외없이 폭력과 전쟁이 일어났다”고 강조했다. 세계은행에서 발표한 올해 중국 경제 규모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의 국력이 커질수록 미국과 중국의 패권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두 강대국의 패권 갈등이 심해질수록 북한의 전략적 가치도 높아져 북한 문제의 해결도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는 임진왜란 이후 동북아의 패권전쟁터가 돼 왔으며 그 결과가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이었다. 강대국들의 패권 갈등 구조에서 한반도의 통일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오히려 제2의 한반도 패권전쟁이 우려된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론’을 널리 홍보하며 강조한다.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어 통일 이후의 장밋빛 구상과 계획, 일정을 내놓는가 하면, 광복 70년을 맞는 내년 ‘통일헌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1972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에 편승해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를 구성했다. 그러나 독일이 교류와 협력으로 진정한 통일을 지향하며 자주적 역량을 축적한 것과는 정반대로, 북한과의 적대적 대결과 대북 적대감을 통치력 강화의 에너지로 삼아 분단독재의 절대적인 권력을 추구하지 않았는가.
박근혜 정부의 군사주권 포기로 한국의 대외적인 위상과 외교, 협상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북한부터 전작권을 가진 미국과의 협상에 더욱 비중을 두려고 할 것이다. 한-미-일 관계에서도 전작권이 없는 한국은 미-일의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붕괴론’에 따른 통일을 바라며 북한과의 적대적 대결 기조를 펼치는지 모르지만, 북한의 붕괴 과정에서 벌어질 내란과 전쟁으로 민족의 절멸과 또다른 분단의 재앙이 닥칠 위험성이 높다. 박근혜 정부는 군사주권을 포기하면서 한국이 미국의 전진기지로 전락해 ‘강대국 전쟁판’의 ‘졸’이 될 여지를 만들었다.
통일을 위한 자주성과 주도력을 상실한 박근혜 정부가 ‘통일대박론’을 실현할 수 있겠는가. ‘통일대박론’의 가능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와 강대국들의 패권 갈등과 전쟁에 휘말릴 안보 재앙의 위험성만 높아지지 않았는가.
박근혜 정부가 ‘통일대박론’을 민족 번영의 ‘오아시스’처럼 요란하게 외치지만, ‘통일대박론’이 신기루처럼 현실로 나타날 전망은 결코 보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은 민족 절멸의 재앙을 부르는 ‘악마의 호수’다. 중동사람들은 죽도록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신기루를 '악마의 호수'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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