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168319 

고구려의 재발견<13>연천 호로고루성
임진강 북안 삼각형 대지에 쌓은 평지성
2005년 11월 21일 (월) 이연섭기자  yslee@ekgib.com
 

 
임진강과 한탄강은 화산이 폭발해 생긴 용암대지로 깊은 협곡을 이루며 곳곳에 현무암 단애부가 발달해 있어 수직절벽이 자연적인 경계면을 이룬다. 이곳은 수량이 비교적 풍부해 한국전쟁 이전에는 고랑포까지 배가 다녔으며, 소형선박은 안협(철원)까지 운항할 수 있었다. 이들 하천의 합류지역에는 비옥한 평지가 많아 조성돼 있다. 이 지역의 고구려 성곽은 무려 20여개소에 이른다. 휴전선 이남을 기준으로 할때, 임진강 상류와 한탄강, 그리고 이들 하천이 합류하는 임진강 중·하류 유역으로 나뉘어 분포한다.

호로고루(瓠虜古壘)는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의 고랑포 북쪽에 위치한다. 이곳은 임진강과 지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삼각형의 대지를 형성하고 있다. 소하천으로 인해 임진강의 단애면이 끊어져 있으며 여울이 발달해 고대부터 중요한 교통로로 활용됐다. 성은 임진강 북안의 넓은 벌판 위에 우뚝 솟아 있어 재미산(財尾山) 혹은 재미성(財尾城)으로도 불린다. 또한 紫微城, 紫眉城, 二殘眉城 등으로도 불렸다. 현재는 북쪽의 것을 호로고루라 하고, 남쪽의 것은 이잔미성으로 구별해 부른다.

호로고루는 토지박물관이 지난 2000년부터 2001년 사이에 동벽 부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강안평지성인 호로고루성의 전체 둘레는 401m이다. 그중 남벽은 161.9m이고, 북벽은 146m이며, 동벽은 현재 남아있는 부분이 89.3m이고 진입로 부분을 포함하면 93.1m에 달한다. 성내부의 사용가능한 면적은 1천600평 정도다. 성벽은 평지로 이어지는 방향에 조성했고 나머지 두벽은 암벽의 윗부분에 4~5m 높이까지 편축식으로 쌓았다. 남벽은 임진강에 연해 있어 80도 정도의 기울기를 가지며, 북벽은 이 보다 약한 60도 정도의 기울기를 가진다. 동벽은 하단부 폭이 약 40m이고, 길이는 90m 정도이며 높이는 장대지 부분이 10m 정도로 가장 높다. 

현지를 찾으면 발굴조사후 차광막으로 어설프게 가려놓은 동벽의 모습이 눈에 띄며, 그 옆에 성돌들을 쌓아놓은 돌무더기가 있다. 성내부 조사를 위해 대충 가려 놓았는지 조사후 관리가 너무 허술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 동벽을 재미산이라 부르고 있다. 성벽의 정상부부터 동사면에 이르는 구간은 한국전쟁 이후 계속되는 진지구축으로 훼손됐으며 현재는 참호가 설치돼 있다. 성벽 정상부 주변에는 고구려 토기편을 비롯한 삼국~조선시대에 이르는 각종의 유물이 흩어져 있는데 전략적인 중요성이 사라진 이후에는 정자같은 것이 설치됐을 것으로 보고있다.

동벽의 남단은 절개돼 도로로 사용되고 있는데 성의 전체 횡단면이 노출돼 있다. 노출된 성벽의 단면은 약 1m 정도 점토+사질토를 판축한 기초 위에 좌우 대칭으로 성벽을 쌓았다. 남쪽과 북쪽에는 2개의 치가 설치돼 있다. 남쪽의 치는 반원형으로 구축됐는데 이 반원형의 치 안쪽에서 원래의 치와 외벽이 확인돼 2차에 걸쳐 보축됐음이 밝혀졌다. 현재 출입구로 이용되는 동벽의 함몰부 이외에 다른 출입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성 내부는 전체적으로 평탄하며 크게 3개의 평탄지로 나뉜다. 이중에서 가장 동쪽의 평탄지가 가장 심하게 훼손됐다. 하지만 이곳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지표하에는 유구가 존재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밖에 우물이 있었다고 하나 확인되지 않았으며, 지표 아래 2.4m 지점에서 저수시설로 추정되는 뻘층이 노출됐다. 기타 유구로는 병사들의 소형막사로 추정되는 토광유구 2개소에서 신라토기편이 집중적으로 출토됐다.



고구려 기와편과 토기편은 주로 성의 동북쪽과 서쪽 하단부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비해 성의 중앙부에서는 신라 기와편이 많이 출토되고 있다. 고구려 토기류는 대형호와 시루 등이 주류를 이루고 대상파수가 부착됐으며 외면은 매끄럽게 마연돼 있다. 그러나 성내부의 고구려 관련유구가 대부분 파괴되어 작은 조각 상태로 출토되고 있다. 

성내부에는 현재 종교시설에서 쓰던 버섯재배사가 여러 동 방치된 채 놓여있다. 이 버섯재배사를 설치하느라 평탄작업을 하면서 지표면을 1m정도 밀어 곳곳에서 유구와 유물이 노출되고 있다. 고구려 문화층이 밀려나가 여기저기서 고구려 기와 등이 나뒹굴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기와류는 전형적인 고구려 양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니질의 태토로 산화 소성된 적갈색의 기와로 수키와의 경우 표면문양이 없으며 암키와의 표면에는 승문, 거치문, 횡선문 등이 시문됐다. 그밖의 유물로는 지표조사시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가 채집됐고, 원삼국시대 토기편부터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토·자기편이 두루 출토됐다. 발굴조사 과정에서 금동불상 한점이 출토됐는데 현재까지 출토된 예가 없는 특이한 형태로 중앙의 불좌상 좌우에 보살상이 한구씩 배치됐으며 그 사이에 합장한 인물상이 하나씩 서있는 독특한 양식의 삼존상이다.

백종오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유물을 통해본 호로고루의 축조시기는 4세기 말경 토루나 목책 등 초보적인 형태의 방어시설로 구축됐다가 고구려 남진이후 본격적인 축성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이때부터 7세기 중반까지 고구려 영역에 속했다가 고구려 멸망 이후 신라에 의해 임시적으로 운영됐던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씨는 “호로고루는 고구려 기와가 출토된 몇 안되는 유적이며 장기적인 안목에서 축조된 중요한 전략거점으로 활용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판축토 위에 석축을 덧붙여 쌓고 보축한 형태의 석축방법은 축성사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을 갖게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기도기념물 제174호인 호로고루는 최근 고구려 유적지로서의 중요성이 인정돼 문화재청 등에서 조사를 마치고 곧 사적 지정을 앞두고 있다. 

글/이연섭기자 yslee@kgib.co.kr
사진/전형민기자 hmjeon@kgib.co.kr


■ 고구려 기와의 특징



임진강 유역 다량출토 새끼줄무늬’ 대표적 

기와는 각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어 당시 문화상을 밝히는데 중요한 고고학적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삼국 중에서 고구려는 백제나 신라보다 먼저 기와를 사용했다. 고구려 수도였던 중국 지안의 국내성과 그 주변 무덤에서 기와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중국과의 빈번한 접촉을 통해 국내성 도읍기에 이미 기와를 제작해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독자적인 발전과정을 밟아 중국이나 한사군과는 다른 문양의 막새나 특수기와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고구려에서 사용된 기와는 지붕 구조에 따라 여러 종류가 제작됐다. 고구려 기와의 종류는 크게 기본기와, 막새기와, 서까래기와, 마루기와, 특수기와로 나눠진다. 기본기와는 암키와와 수키와로 나뉘고 막새는 수막새, 암막새, 이형막새로 구분된다. 이러한 고구려 기와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막새의 경우, 같은 막새 안에서도 문양이 조금씩 바뀌고 크기도 소형에서 대형으로 변화하고 있다. 막새와 짝을 이루는 평기와는 국내성기에는 격자문(格子文) 계열이 주류를 이루지만 평양성기가 되면 새끼줄무늬(繩文) 계열이 많이 나타난다.

고구려 기와의 색깔은 적색계통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그밖에 황갈색과 회청색 계통이 매우 적은 양으로 나타난다. 국내성기의 성곽과 건물지에서 출토되는 기와류가 적색계통인데 반해 고분에서 출토된 기와류는 회색계통이다. 사용처에 따른 색깔 차이에서 고구려인들이 기와에 나름대로 상징성을 부여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남한지역에서 고구려 기와가 출토되는 곳은 대부분 경기지역으로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한강유역에 위치한 홍련봉 보루나 몽촌토성, 풍납토성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으나 임진강유역에 비하면 그 양이 매우 빈약하다. 임진강유역에서 고구려 기와가 출토된 곳으로는 호로고루를 비롯해 당포성과 무등리 1보루, 덕진산성, 칠중성, 아미성 등이다. 임진강유역에 집중하는 양상은 양주분지 일원과 한강유역과는 다른 성격을 반영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임진강유역 보루 중에 둘레가 50m 정도 밖에 되지않는 두루봉 보루에서도 기와류가 확인돼 소규모의 위성 보루에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임진강 유역의 고구려 성곽이 양주분지나 한강유역과는 달리 그 사용시기가 오랫동안 지속됐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또한 거점성으로서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경기지역의 고구려 기와는 승문 위주에 격자문계열과 톱니무늬(鋸齒文)가 주요 문양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중에서 승문은 기와가 출토되는 남한지역 모든 고구려유적에서 확인돼 고구려의 대표적 문양이라고 할 수 있다. 승문은 지안과 평양지역에서도 주요 문양을 이뤄 고구려 평기와가 출토되는 유적에서는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다음은 무문이 다수를 점하는데, 대부분 수키와이다. 수키와에서 무문 비중이 높은 이유는 고구려가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내리는 추운 지역에 위치하기 때문에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수키와의 경우 등면에 문양을 시문하지 않거나, 문양을 쓸어내어 지우는(素文化) 방법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다. 암키와의 경우도 내면의 와통의 모골 연결끈 흔적을 세로로 얕게 남겨 빗물이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게 했다. 이밖에 남한 출토 고구려 기와의 주목할 특징으로 기와의 분할 흔적에서 찾을 수 있다. 기와 측면을 보면 1~6회에 걸쳐 쪼개낸 다음 다시 깎아내 말끔하게 마무리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완전분할 또한 고구려 평기와의 특징이다. 

이러한 고구려 기와의 특징은 고구려인이 기와를 사용하는 곳에 따라 각각의 의미를 부여했음을 알게 해준다.

백종오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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