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41205125905045
사자방 회피, '이명박근혜' 자초하나
시사저널 | 유창선 | 시사평론가 | 입력 2014.12.05 12:59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사업)이 정국의 이슈로 부상했다. 야당은 사자방 국정조사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고, 여당은 이를 거부하다가 최근 들어서는 조심스럽게 고려하는 듯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사실 사자방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가리자는 얘기가 이제야 정국의 관심사가 된 것은 늦어도 너무 늦은 일이다. 이들 사안은 대부분 이명박(MB) 정부 시절에 빚어진 일들이다. 따라서 MB 정부에서 박근혜정부로 정권이 바뀌었으면 응당 집권 초반기에 직전 정부 때의 잘못된 일들이 정리되고 바로잡히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그것을 하지 않았다. 집권 초기에 밝힐 것은 밝히고 책임 지울 것은 책임 지워 매듭지었어야 할 일이 이제야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 없다"는 MB맨들, 무책임하고 뻔뻔
사자방은 그냥 덮고 갈 일이 아니다. 사자방을 거론하는 것이 정치 보복으로 해석될 일도 아니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국민 혈세를 낭비하고 그 과정에 비리까지 개입되어 있는 의혹이라면 마땅히 국민 앞에 그 모든 것을 밝히고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 그래야 어처구니없는 실정에 경종을 울리고 향후 그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재발 방지의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2013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환송하기 위해 함께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자원외교는 결국 '깡통 투자'에 불과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방송에 직접 나와 아랍에미리트 유전 개발을 위한 본 계약이 체결돼 '우리 유전'을 갖게 되었다고 요란을 떨었지만, 자원외교를 통해 들어온 석유는 지금까지 없다. 2조원 주고 산 에너지업체를 200억원에 되팔았다는 보도가 나오니까 석유공사는 350억원이라고 반박했지만, 200억원이든 350억원이든 투자금 대부분을 날린 것은 매한가지다. 야당의 추산에 따르면 MB 정부의 자원외교에 들어간 돈은 5년간 총 41조원이었고, 앞으로도 31조원이 더 들어갈 것이라 한다. 현재까지 들어간 돈에 대한 회수율은 불과 13%. "사실 사업성은 지금 잘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다. 감은 좋다"는 당시 공기업 이사회 회의록을 접하면 이런 꼴이 난 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는 판단이 든다.
많은 우려와 반대 속에서도 역시 국민 혈세로 추진된 4대강 사업에는 22조원이 투입되었다. 어떻게든 이 대통령 임기 안에 끝내려고 촉박한 일정 속에 밀어붙인 4대강 사업은 총체적 부실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고, 우려했던 대로 환경 생태계가 파괴되는 현상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4대강 사업은 MB 정부와 새누리당 그리고 건설사가 손잡고 저지른 초대형 실패작이다. 4대강 사업이 남긴 것은 예산 낭비에 그치지 않고 우리 환경 생태계를 파괴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는 점에서 여느 사업들과 또 다르다.
볼썽사나운 것은 이 전 대통령을 비롯한 MB 정부 사람들의 태도다. 이 전 대통령은 최근 측근들과 모인 자리에서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자원외교를 정쟁으로 삼아 안타깝다"며 "문제가 없다"고 장담했다고 한다. 그리고 'MB맨'들은 여당 일각에서 제기된 사자방 국정조사 실시 논의에 대해 부당성을 강조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새누리당 내 '친이(親李)계' 의원들은 이 전 대통령에게 "지도부가 4대강 국정조사를 받아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니 걱정 마시라"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두가 낯 두꺼운 모습들이다. 사업성 판단도 제대로 없이 수십조 원의 혈세를 쏟아부은 자원외교 실패에 대한 추궁을 정쟁으로 폄하하고 있는 것, 역시 22조원의 천문학적 예산을 낭비한 데다 생태계 파괴의 후유증을 초래한 4대강 사업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 한 시절 정권을 책임졌던 사람들의 이 같은 모습으로는 무책임하고 뻔뻔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를 이렇게까지 만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모호한 태도였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줄곧 사자방 문제에 대해 침묵했다. 최근 국무회의에서 "과거부터 내려온 방위산업 비리 문제, 국민 혈세를 낭비해온 문제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고 단호하게 가려내서 국민 앞에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 실패까지 가리키는 것인지 여전히 불분명하다. 새누리당도 사자방 국정조사에 대해 받을 듯 말 듯 '간 보기'만 계속하고 있다. "사자방이고 호랑이방이고 거기 들어가면 물려 죽는다"는 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의 말이 차라리 솔직하게 들린다.
특히 청와대가 사자방 문제에 대해 이렇게 몸을 낮추고 조심스러워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MB의 반격'에 대한 우려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들도 나온다. MB 측에서 지난 대선 때 있었던 일들을 포함한 'X파일'을 작심하고 공개할 경우 박 대통령도 타격을 입을 수 있기에 이렇게 조심스러워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그것이다. 꼭 그런 경우가 아니라도, 사자방 국정조사는 박근혜정부와 MB 측의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국정 운영이 범여권의 균열 속에서 큰 혼돈에 빠질 것을 청와대는 우려할 법하다.
사실 그동안 박근혜정부는 MB 정부와 갈등을 일으킬 소지를 모두 덮어버리는 전략 속에서 범여권의 결속을 도모해왔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아마도 그 같은 화평을 깨는 것이 내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자방과 같은 실정의 진상과 책임을 가리는 일은 결코 정치적 계산에 따라 좌우될 성질이 아니다. 여야 그리고 여권 내부의 문제라는 정치적 고려를 넘어 국가 운영의 기본이 되는 일이다. 모두 합해 100조원의 예산이 낭비되었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엄청난 실정의 경위와 책임을 가리지 못하는 국가는 불량 국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그 책임은 무한한 것이다. 정치적 치적에 눈멀어 앞뒤도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막대한 국가 예산을 낭비한 사람들, 그러고서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사람들, 이들을 국민의 법정에 세우지 않고서 어떻게 우리가 정상 국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이명박근혜' 프레임을 불러들이지 않으려면 사자방 문제에 대한 결단을 내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유창선 | 시사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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