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0341.html
지금 대학가는 운동권 총학생회 후보 ‘수난시대’
[하니Only] 허재현 기자 등록 : 20111215 15:12 | 수정 : 20111215 16:22
석연찮은 이유로 후보 박탈당하거나 선거 자체 무산돼
한대련 “반값등록금 위축 의도…뉴라이트 개입 확인중”
≫ 8월 12일 오후 반값등록금 실현을 촉구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본관 앞에서 기습 시위에 나선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소속 한 대학생이 500만원이 넘는 액수가 찍힌 2학기 등록금 납입 고지서를 인쇄한 펼침막을 펴든 채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대학가 총학생회 선거에서 반값 등록금 실현을 공약으로 내건 학생운동권 후보들이 피선거권을 박탈당하고, 일부 대학에선 석연찮은 이유로 선거가 무산되는 일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한겨레>가 14일 파악해본 결과 전남대, 건국대, 국민대, 동의대 등에서 운동권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피선거권을 박탈당했고 성신여대는 학교가 개입해 총학생회 선거를 파행으로 몰고가 잡음이 일고 있다.
# 전남대, 무더기로 사라진 인문대 선거인명부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선거에 ‘액션’(운동권)과 ‘전설’(비운동권) 두 선거운동본부(선본)가 나와 경쟁을 벌였다. 11월 29일 진행된 투표에서 ‘액션’ 선본의 권민영(환경공학과 4학년)씨는 48.41%를 득표해 46.95%를 얻은 ‘전설’ 선본을 박빙의 차로 제치고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선거관리위원회는 권씨의 당선을 무효화했다. ‘액션‘ 선본 관계자가 개표장 안에서 소란을 피우는 등 ‘액션’ 선본에 경고 3회가 누적되었다는 게 이유였다.
소란은 인문대학 선거인명부가 사라진 데서 비롯됐다. 선관위의 실수로 투표 중 인문대학 선거인명부가 사라져버렸고 선관위는 이 때문에 인문대에서 나온 투표를 모두 무효표 처리하려 했다. 인문대학에서는 ‘액션’ 선본이 ‘전설’ 선본에 비해 많은 표를 받았고, 인문대 투표함을 열지 않으면 박빙 승부였기 때문에 두 후보간 득표수가 역전될 수도 있었다. ‘액션’ 선본은 이에 항의했고 선관위는 ‘선관위 개표 방해’를 이유로 이들을 징계했다. ‘액션’ 선본은 피선거권도 박탈당했다.
전남대학교 선관위는 12월 7일~8일 ‘전설’ 선본만을 후보로 인정하고 재투표를 강행했다. 투표율이 17%밖에 안 됐지만 선관위는 투표가 성사된 것으로 보고 이번 주말까지 개표를 벌여 당선자를 확정할 예정이다.
올해 전남대 총학생회 간부들은 반값등록금 운동에 비판적인 비운동권이었다. 선관위원도 비운동권 학생들로 다수 채워졌다. 보통 선관위원들은 총학생회 간부와 각 단과대 학생회장들로 구성된다.
# 건국대, 운동권 후보 피선거권 박탈
건국대학교에서는 이번 총학생회 선거에 ‘더 체인지’(운동권)와 ‘정’(비운동권) 두 선본이 나와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더 체인지’ 선본은 지난 1일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이 선본의 박솔지 총학생회장 후보(정치외교학과 3학년)가 학생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대 후보를 비방하며 투표독려 행위를 했다는 이유였다.
선관위는 징계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첫 번째 징계 회의에서 경고 10표, 피선거권 박탈 11표가 나와 ‘선관위원 3분의 2 이상의 표를 받아 징계를 의결해야 한다’는 선거 세칙을 충족시키지 못해 ‘박 후보의 피선거권 박탈 징계건’이 부결됐다. 더 체인지 선본 쪽은 1차 표결로 부결되었다는 입장이었지만 선관위는 가결 때까지 투표를 계속할 수 있다는 선거 세칙상 회의규정을 들어 ‘피선거권 박탈’ 의견이 3분의 2 이상 나올 때까지 중복 의결을 계속한 끝에 박 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했다.
‘더 체인지’ 쪽은 징계결정에 이의를 제기해 결국 피선거권을 회복했으나 12월 9일까지 진행된 투표에서 투표율이 50%에 미달해 학생회 선거는 무산됐다.
올해 건국대 총학생회는 비운동권이었기 때문에 선관위원도 비운동권 학생들로 다수 채워졌다. 박솔지씨는 “비운동권 후보가 당선되게 하려고 선관위원들이 노력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 선본은 반값등록금 거리 투쟁보다 학교와의 협상을 통한 등록금 투쟁을 선호했다.
#국민대, ‘상대 후보 비난’?… 운동권 선본 피선거권 박탈
국민대학교에서는 ‘99%의역습’(운동권), ‘바꿔싹바꿔’(운동권), ‘사고뭉치’(비운동권), ‘호감’(비운동권) 선본이 나와 경쟁을 벌였다. 그러다 11월 23일 투표일 9일을 앞둔 14일 ‘99%의역습’ 선본이 후보 자격을 박탈당했다. ‘상대 후보들이 등록금 인상을 옹호했다’는 내용을 담은 신문을 배포하는 등 경고 3회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이 학교 선거 세칙에는 “상대 후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99%의역습’ 선본 총학생회장 후보였던 이아예(공법학과 4학년)씨는 “올해 총학생회가 학교와 등록금 인상에 합의해버렸던 전력들을 비판한 선본은 우리밖에 없다. 그래서 표적 징계를 하고 피선거권을 박탈시킨 것으로 의심한다”고 주장했다.
올해 국민대 총학생회도 비운동권이었고, 선관위원들은 비운동권이 대부분이었다. 국민대 총학생회 선거는 무효표가 너무 많이 나와 무산됐고 내년 3월 재선거가 이뤄질 예정이다.
#동의대, 허위 사실 유포?… 운동권 선본 피선거권 박탈
동의대학교에서는 지난달 17일 치른 총학생회 선거를 위해 ‘두근두근체인지’(운동권)와 ‘나비효과’(비운동권) 선본이 나와 경쟁을 벌였다. 그러나 ‘두근두근체인지’ 선본은 지난달 8일 피선거권을 박탈당했다. 정책 자료집에 등록금인상률을 잘못 적는 등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였다.
‘두근두근체인지’ 선본은 정책 자료집에 “올해 등록금이 3.9% 인상됐다”고 적었으나 정확한 인상률은 3.5%였다. 또 “총학생회 장학금을 반납하고 가계곤란장학금으로 학우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선관위는 이 공약에 대해 “학교 규정상 현실 가능성이 없다”며 허위 사실 유포라고 규정했다. 결국, 총학생회 선거는 ‘나비효과’ 선본만 후보로 인정받은 상태에서 치러졌고 이들이 당선됐다.
‘두근두근체인지’ 선본 부총학생회장 후보 정종식씨는 “선관위는 정책자료집에 한대련과 함께하는 공동정책을 빼라고 요구하는 등 편파적인 요구를 해왔다. 운동권 후보의 당선을 막으려고 사소한 트집을 잡아 우리의 후보 자격을 박탈했다”고 주장했다. 올해 동의대 총학생회도 비운동권이었다.
≫ 12월 12일 성신여대 학생들이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개입에 항의하며 삭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제공. 트위터 @giselleje)
#성신여대, 학교쪽 선거인명부 제공 거부
성신여대에서는 ‘후마니타스’(운동권), ‘1만의확신’(운동권), ‘동행’(비운동권)의 세 선본이 나와 지난달 28일 총학생회 선거를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올해 선거는 학교가 개입해 파행을 겪고 있다. 학교가 선관위에 선거인명부 제공을 거부해 선거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 학교 선관위는 단과대별 투표소마다 투표인명부를 모두 배치하려고 총 10개의 투표인 명부를 학교 쪽에 요구했다.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학교는 “부정선거가 이뤄질 수 있어 한 개 이상의 투표인명부는 줄 수 없다”고 맞섰다. 비운동권 선본인 ‘동행’도 학교 쪽에 투표인명부를 다량 배포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다 ‘동행’ 선본이 경고 누적으로 후보자격을 박탈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교 쪽은 선관위에 “총학생회 선거가 불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동행’ 선본의 억울한 입장을 구제할 방법은 없는지 확인해달라”고 요구했다. 선관위는 이를 거절했고 결국 학교 쪽도 투표인명부 제공 거부를 철회하지 않으며 맞섰다. 애초 예정됐던 총학생회 선거는 파행을 겪고 있다.
김미희 성신여대 총학생회장(현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학교는 지금까지 계속 학생회를 탄압해 왔다. 학교가 어용 후보 당선을 위해 선거개입을 하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지난 12일부터 투표인명부 없이 총학생회 선거를 강행하고 있다. 그러나 투표인명부 없이 치러지는 선거라 적법성 논란 소지가 남아 있고 16일까지 진행되는 선거에서도 투표율이 50%를 밑돌아 총학생회 선거는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이 학교 총학생회는 운동권이었다.
# 파행 선관위 “운동권 후보 탄압과 관련 없다”
총학생회 선거 파행과 관련해 해당 대학들의 선관위는 일제히 “운동권 후보 탄압과 관련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윤재영 전남대 선관위원장은 1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비칠 수는 있겠지만 운동권 후보를 낙선시킬 의도로 후보 자격을 박탈시킨 것이 아니다”고 밝혔다. 국민대 선관위원장도 “‘99%의역습’ 선본이 선관위의 시정 권고를 12시간 내에 하지 않아서 경고조치를 했고 징계가 누적돼 최종 후보 자격을 박탈당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성신여대 학생지원팀 관계자는 “선관위 명부를 안 줬기 때문에 선거에 개입한 것이라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선관위가 운동권에 우호적인 후보들을 지원해 운동권 후보들만 당선되어왔다. 이제 더 이상 부정선거를 방치할 수 없다”고 선거 개입 이유를 밝혔다.
그동안 반값 등록금 운동 등 학생운동을 주도한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 쪽은 잇따른 운동권 후보들의 피선거권 박탈을 놓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대련은 총학생회 선거에 대한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한봉필 한대련 정책위원장은 “반값 등록금 실현을 공약으로 내건 한대련 후보가 나온 총학생회 선거에서 비슷한 일들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며 “반값 등록금을 외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위축시키려는 조직적 행동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또 “뉴라이트 진영이 학생회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학교 외에도 한대련 활동을 지지하는 총학생회 후보가 피선거권을 박탈당한 일은 조선대, 한양대 등 10여 개 이상의 학교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반값등록금 운동을 지지하는 운동권 총학생회 선본은 전국적으로 서울시립대, 숙명여대 등 31곳에서 당선돼 예년과 비슷한 규모를 보였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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