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606
‘북한은 지상낙원’ 발언은 TV조선이 했다
[기자수첩] 직접 인용 없이 멋대로 해석… 오모군 폭탄 배후는 언론
입력 : 2014-12-12 15:41:36 노출 : 2014.12.12 16:53:56 조윤호 기자 | ssain@mediatoday.co.kr
일어나서는 안 될 끔찍한 테러가 벌어졌다. 지난 10일 전북 익산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에서 19세 오모군이 사제폭탄을 던졌다. 주변 관객들이 불을 끄고 오 군을 제압하면서 큰 화재로 이어지지 않았으나 몇 명이 부상을 입고 아수라장이 된 큰 사고였다.
이번 사건에서 충격적인 점은 오군이 폭탄을 던지기 전 남긴 말이다. 오군은 토크콘서트 도중 갑자기 일어나서 신은미씨에게 “북한이 지상낙원이라고 했습니까”라고 물었고, 신씨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답했다. 그 뒤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말은 어디서 나온 말일까. <민중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테러 이후 피해자 황선씨가 오군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황씨는 “나는 맹세코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신은미씨도 황씨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데, 이 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 신은미-황선 토크콘서트 전,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가해자가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게시물.
몇몇 언론은 지난 11월 21일부터 신은미‧황선의 토크콘서트를 ‘종북’ 콘서트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21일 ‘TV조선 뉴스9’는 <서울 한복판 ‘종북 콘서트’>라는 꼭지의 기사에서 “엊그제 UN본부에서 ‘북한 정권의 인권 범죄를 국제형사재판소에 세우자’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그 날 서울 한복판, 종로 조계사에선 ‘종북 토크쇼’가 열렸다”고 두 사람의 토크콘서트를 소개한다.
TV조선은 “(이들이) ‘진짜 인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북한 상황은 참 다행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두 여성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에 대해 찬양만 늘어놨다’ “‘북한 사람들은 젊은 지도자에 대한 기대감에 차 있고 희망이 넘치는 게 보였다’며 감격스럽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TV조선은 “이 두 여성이 묘사한 북한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라며 침이 마르도록 찬양을 이어갔다”고 덧붙였다.
다음 날 채널A에도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채널A는 11월 22일자 뉴스스테이션 <황선·신은미…‘北 3대 세습’ 왜 거론 안 하나?>에서 “북한을 다녀 온 두 여자가 대중 앞에서 북한정권을 옹호하는 발언들을 늘어놓았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북한은 지상낙원 같다”고 말한다.
황태순 위즈덤센터 수석연구위원은 YTN라디오에 출연해 토크콘서트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은미라는 사람은 재미교포, 미국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북한을 6차례 정도 탐방하고 여러 군데에서 ‘북한을 다녀왔더니 북한이 지상 낙원이더라’ 이런 말을 하더라. (중략) 북한이 그렇게 살기 좋은 지상낙원이고 인권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북한에 가서 이런 이야기하면 어떨까?”
이에 같이 출연한 박상병 정치평론가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냐. 그런 말 한 적 없다. 이야기 들어봤냐”고 하자 황 평론가는 “들어봤다” “다 자료로 나오고 중계방송도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자료와 중계방송은 찾을 수 없었다.
황선‧신은미 두 사람이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다는 내용은 여기저기 등장한다. “신은미‧황선씨는 이런 북한을 지상낙원 국가인 것처럼 호도하며 대한민국을 조롱하며 돌아다니고 있다”(성준경 정치평론가의 미디어펜 칼럼) “호남의 소년이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호도하고 통진당 해산 심판에 영향을 끼치려는 종북 세력의 준동을 단신으로 저지시켰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종택 뉴스타운 객원논설위원)
11월 21일자 TV조선 뉴스9 갈무리
하지만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황선‧신은미 두 사람의 멘트를 따서 기사화하거나 인용한 보도는 없다. 두 사람이 한 말이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말한 것과 다름없다는 식이다.
어느새 두 사람의 콘서트는 ‘종북 콘서트’로, 황선‧신은미 두 사람은 ‘종북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람으로 규정된다. 언론에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이들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자극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북한사회를 인권·복지국가인 것처럼 묘사했다”(22일자 TV조선)
“찬양고무죄는 반국가단체나 지령을 받은 자를 찬양해야 하는 것인데 북한에서 개발한 맥주가 맛있다거나 북한에서는 산모를 비행기로 데리고 온다더라는 식의 표현으로 국가보안법을 교묘하게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21일자 TV조선 최단비 변호사)
“그렇게 좋으면 북한으로 가시면 될 거 아닙니까”(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YTN 인터뷰)
두 사람의 발언에도 분명 비판받을 대목이 있다. 탈북자들의 주장대로 그들이 말하는 북한이 북한의 실체가 아닐 수도 있다. 팩트가 틀린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을 ‘종북’으로 규정한 채 ‘북한으로 가라’거나 대한민국에서 공존할 수 없는 존재로, 마치 대한민국 체제를 뒤흔드는 세력으로 묘사할 일일까. 폭탄을 던질 만한 이유는 더더욱 될 수 없다.
언론에는 오모군의 ‘배후’를 의심하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오모군에게 테러를 지시한 사람이 있다면 경찰수사로 밝혀내야할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배후는 따로 있다. 두 사람의 콘서트를 종북으로 규정하고 같은 나라에서 공존할 수 없는 이들로 몰아간, 근거도 없이 “북한 지상낙원”같은 말을 써가며 두 사람을 비난한 이들이 오모군의 배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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