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0609

옆집이 방폐장이어도 ‘숨통이 트인다’고 할까
[비평] 경주 방폐장 운영승인, 보수언론이 말하지 않는 사실은
입력 : 2014-12-12  17:43:45   노출 : 2014.12.12  17:43:45 정철운 기자 | pierce@mediatoday.co.kr 

‘최초. 진통 끝에. 28년 만에. 숨통 트였다. 안전. 성공모델….’ 12일 언론이 경상북도 경주시 중 저준위 방폐장 운영 허가소식을 전하며 붙인 단어와 수사들이다. “방폐장 첫 운영 허가로 포화상태에 있던 중·저준위 방사능폐기물 처리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란 프레임(개념틀)이 일반적이었다. 원전세력으로부터 광고를 많이 받아온 언론일수록 방폐장 안전 우려를 찾기 어려웠다. (관련기사=<신문과 방송의 ‘원전사랑’, 돈 때문이었다>)

경주방폐장은 국내 첫 방폐장이다. 인천 옹진군과 전북 부안군 등에 건립을 추진했으나 주민들의 거센 반대로 무산됐다. 참여정부는 경주시에 특별지원금 3000억 원을 지원하고 한수원 본사의 경주 이전을 약속하며 경주 방폐장 건립을 확정했다. 그만큼 방폐장 건설은 전국적인 반대에 부딪히는 사업이었다. 본능적으로 시민들이 위험성을 인식한 결과다.

하지만 12일자 조선일보는 “정부와 경주시가 지역 이기주의와 일부 반핵 단체들의 반대를 이겨냈다”고 보도했다. 핵발전소와 방폐장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일부 반핵 단체들의 반대’와 ‘지역 이기주의’ 프레임으로 평가절하 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의 집 옆에 고준위 방폐장이 들어와도 ‘지역 이기주의’를 운운할 수 있을까. 

▲ 조선일보 12일자 3면 기사.
 
같은 날 세계일보는 “역사문화도시 경주가 에너지와 첨단과학중심의 역동적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의 홍보자료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싶은 정보는 방폐장의 안전성이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에 주목해온 몇몇 언론과 시민단체는 경주 방폐장의 문제를 수년 간 짚어왔다. 총사업비 1조 5657억 원. 이 엄청난 사업의 이면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경주에 들어서는 중 저준위 방폐장은 원자력발전소와 병원 등에서 발생한 방사능 폐기물을 보관하는 시설이다. 운영사업자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 2007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대우건설과 삼성물산이 시공을 맡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원전별 폐기물 포화율은 한빛원전 96%, 한울원전 90%, 고리원전 83% 등이다. 11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투표를 통해 200L 드럼통 80만개를 처분할 수 있는 전체 시설 중 1단계인 10만 드럼통 규모의 지하 동굴 처분시설에 대한 운영허가가 내려졌다. 

2009년 당시 진보신당과 환경연합 등은 경주 방폐장 부지 조사 결과 방폐장 부지로 결격사유인 단열대, 파쇄대 등 불량 암반 상태가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경주의 부지안전성은 4개월간의 짧은 시간에 이뤄졌다. 암반의 문제를 시공기술로 보완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공사기일이 2번이나 연장됐고 설계변경도 12번 이뤄졌다. 

▲ 경주 방폐장 조감도. ⓒ연합뉴스
 
2005년 경주지역 지반을 평가한 보고서에 등장한 암질지수(RQD, 특정 지층 내 굵은 암반의 포함 비율로, 수치가 높으면 암반이 단단하고 낮으면 암반이 무르거나 빈 공간이 많다)가 부풀려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보고서엔 RQD가 60~80%의 범위를 보인다고 적혀있지만, 실제 수치는 30%를 넘지 못했다. 김혜정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은 2014년 JTBC와 인터뷰에서 “부지선정위원회가 암질지수(RQD) 결과를 과장해서 문서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방폐장이 지진 위험이 있는 지층 바로 위에 건설된 사실도 드러났다. 방폐장은 콘크리트 구조물인 ‘사일로’라는 6개의 저장탱크로 구성돼 있다. 이곳과 인접한 곳에 지진발생 가능성이 있는 단층이 수년 전 발견됐다. 지난해엔 시설물 바로 밑을 지나가는 또 다른 단층대가 새롭게 확인됐다. 윤석구 과학기술대 교수는 JTBC와 인터뷰에서 “지진 단층대 위에서 충격을 견뎌낼 구조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원전이나 방폐장은 이런 단층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경주 방폐장 수명은 300년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민들은 300년 간 지진을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

사용후핵연료인 고준위 폐기물 처리는 아직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 김익중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동국대 의대 교수)은 “방폐장 1단계 동굴식 처분장은 폐쇄 후 짧게는 십수년, 길게는 수십 년 내로 방사능 누출이 시작된다. 방폐장 건설이 지하수가 풍부한 곳에 동굴식으로 건설됐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김익중 위원은 “지하수 많은 곳에 동굴식으로 결정된 것은 한수원의 거짓말 때문”이라며 “2005년 경주 주민투표 당시 한수원은 부지의 암반이 양호하다고 선전했지만 지하수가 많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말했다면 최악의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주장했다. 

▲ KBS 12일자 보도의 한 장면.
 
사일로에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한 이후 60년이 지나면 사일로를 폐쇄하게 되는 데, 폐쇄 후 지하수로 인한 침투로 인해 방사능 물질이 누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도 방폐장 폐쇄와 동시에 사일로에 지하수가 유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규제기준을 초과하는 방사능물질 누출은 없을 것이라 주장한다. 2008년 처분시설 안전성분석보고서 기준의 삼중수소 방사능의 누출 그래프를 보면 방폐장 폐쇄 후 11년 뒤부터 누출이 시작되고 80년 후 정점에 도달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삼중수소의 경우 단 반감기 핵종(반감기 12.4년)으로 수 백 년 이후에는 누출되는 핵종의 양이 매우 적을 것”이라 밝혔다. 그러나 300년 뒤 이 주장에 책임 질 사람은 없다. 김익중 위원은 “300년 간 안전성을 유지하는 구조물을 만드는 것 자체에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고 말하며 “원전업계의 도덕성이 떨어진다. 방사능이 새어나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경주 방폐장에서 방사능이 나오면 동해바다가 더 오염돼 국민 전체가 피폭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핵발전소 업계, 일명 ‘원전마피아’를 대변하는 언론은 방폐장 가동 결정에 신이 난 것 같다. 전문가들은 조선일보를 통해 “사용 후 핵연료 처분 시설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되는 만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사용 후 핵연료 보관을 위해선 고준위 방폐장을 또 지어야 한다. 중 저준위보다 훨씬 위험하다. 건설비용은 또 수조원대로 들 것이다. 그리고 수백 년 간 안전을 걱정해야 한다. 이렇게 위험한 에너지를 왜 사용해야 할까. 일본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3년을 살았다. 핵 발전이 꼭 필요한 걸까? 많은 언론이 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대신 원전이 안전하다고 반복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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