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85694


이인규 '단독' 보도한 <경향신문>, 불편했던 까닭은?

[분석] 이인규가 꺼낸 '그때 그 이야기', 의도적 발언인가

15.03.01 14:01 l 최종 업데이트 15.03.01 17:11 l 지용민(hanfan)


검찰에 도착했다.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잔 내놓았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 문재인의 <운명> p403


문재인이 <문재인의 운명>을 출간한 지난 2011년 6월, 한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는 '이인규'였다. 전 대검 중수부장이자 노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총괄했던 인물, 바로 그다. 문재인은 책에서 노 대통령 수사를 지휘한 이인규에 대해 큰 불쾌감을 피력했다. 평소의 신사 이미지를 고려할 때 그의 거친 표현은 의외였다. 책의 내용이 공개되자 문제의 인물 이인규가 "나는 노 대통령에게 예의를 지켰다"며 바로 반격에 나섰다.


문재인이 '건방졌다'고 하니 발끈한 이인규  2011년 <문재인의 운명>에서 '대단히 건방졌다'며 비판받자 즉각 '수사비화' 등을 공개하며 반격에 나선 이인규. <조선일보> 2011년 6월 17일자

▲ 문재인이 '건방졌다'고 하니 발끈한 이인규 2011년 <문재인의 운명>에서 '대단히 건방졌다'며 비판받자 즉각 '수사비화' 등을 공개하며 반격에 나선 이인규. <조선일보> 2011년 6월 17일자 ⓒ 조선일보pdf


당시 이 전 중수부장은 자신이 노 전 대통령에게 보인 예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2009년 4월 30일 대검찰청으로 조사를 받으러 온 노 전 대통령이 수사 책임자인 자신의 방에 들어와 앉을 때 '상석'을 비워두었다고 밝혔다. 즉, 자신이 상석에 앉지 않았다는 설명이었다. 그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같은 날 노 전 대통령이 조사를 마쳤을 때 올라가서 앉아 있는 노 전 대통령 옆에서 20여분 정도 서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이게 그가 말한 예의였다. 


이 전 중수부장의 반격 가운데 '화룡점정'은 수사비화 공개였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검찰조사에서 미국에서 집을 산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바로 그날 오후 5시경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가 미국 뉴저지에서 160만 달러짜리 주택을 구입했다는 미국 당국의 조회 결과가 한국 검찰에 도착했다. 이를 추가 확인하느라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고 말했다. 


문재인의 '대단히 건방졌다'는 비판에 대해 이 전 중수부장은 '수사비화'를 꺼내 들고 반박에 나섰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더욱 격분했다. 그는 "(이인규 주장에 대해) 택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어서 '예우를 다 했다. 공손하게 잘 모셨다'고 말한 이 전 중수부장에 대해 "겸손이 뭔지도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겸손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거듭해서 비판했다. 이것이 20011년 6월의 일이었다. 


다시 보는 명장면, "(국회가) 내가 만만한가 본데"


<문재인의 운명> 출판 1년 전에도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2010년 8월 이 전 중수부장은 당시 김태호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증인 출석'을 국회로부터 요청 받았다. 그러나 그는 출석하지 않았다. 김 후보자가 박연차 전 회장의 돈을 받았는지 여부와 같은 시기 경찰청장 후보자였던 조현오의 '노무현 차명계좌'발언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이 전 중수부장이 국회로부터 증인채택이 됐던 것이다. 


이 전 중수부장은 "내가 나가면 '노무현 청문회'가 되지 않겠느냐"는 등의 발언을 남긴 채 청문회 증인에 출석하지 않았다. '노무현 청문회' 발언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더욱 재미있는 대목은 이제부터 등장한다. 국회는 그가 청문회에 불출석하자 관련법에 의거해 고발조치하기로 의결했다. 이에 이 전 중수부장은 "황당하다, 믿지 못할 세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내가 현직 검사가 아니라서 만만해 보이는가"라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의 '노무현 언론플레이'는 거듭해서 등장한다. 청문회 불참 직후인 2010년 9월 <중앙선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가 발언해 논란이 됐던 '노무현 차명계좌'와 관련해 "틀린 것도 아니고 맞는 것도 아니다"라는 폭탄발언을 했다. 이어서 "꼭 차명계좌라고 하긴 그렇지만. 실제로 이상한 돈의 흐름이 나왔다면 틀린 것도 아니지 않나"고 덧붙였다. 


이 발언이 보도되자 유시민 전 장관은 SNS를 통해 "뒤늦게 이인규씨의 인터뷰를 보았는데…. 이 분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고 사람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는 전직 검사이네요"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2009년 조사 때뿐 아니라 2010년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도 그렇고, 2011년 '수사 비화' 공개도 그렇고 그에게 노무현은 '예의'를 차리는 대상은 아니었다. 


<경향신문>의 이인규 '단독',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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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국정원 비판하며, 다시 노무현 소환한 이인규 <경향신문> 2월 25일자 1면. 이 신문은 25일부터 3일에 걸쳐 1면 기사와 사설 등을 통해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등과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했다. ⓒ 경향신문pdf


노 전 대통령이 고인이 된 이후에도 그 당시 수사 내용을 언급하는데 거침이 없었던 그가 다시금 언론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나섰다. <경향신문> 2월 25일자 1면에 등장한 그는 "(노 전 대통령) 그 사건을 맡은 것 자체가 내겐 불행이었다"고 말하며 "이후 내 진로도 틀어지고 가족들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힘겨움을 토로한 것이다. 


이 신문은 25일부터 27일까지 3일에 걸쳐서 노 전 대통령 검찰 수사 당시의 비화를 단독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 전 중수부장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에 이어 26일 또 다시 관련 내용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경향신문>은 '국정원이 '논두렁 시계'로 언론보도 조작했다니' 제목의 사설을 통해서는 "(언론 공작을 한 것으로 주장된) 원 전 원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을 다시 법정에 세워 노 전 대통령 수사의 진상과 정권 차원의 개입 여부를 철저히 가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향신문>은 27일에도 1면에 '국정원 직원과 검사, 멱살잡이 했다'는 기사를 게재해 2009년 노 전 대통령 조사 당시 국정원의 적극적 수사개입 행태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당시 대검 중수부 관계자 증언을 바탕으로 검찰은 '노 대통령 구속수사'를, 국정원은 '불구속수사' 입장을 각각 주장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인규, 노 전 대통령 소환하자는 것인가 


그 날까지의 과정이 견디기 힘들어서 그렇지, 막상 검찰이 기소를 하고 나면 법원에서의 승부는 자신을 했다. 검찰과 언론이 아무리 '여론재판'이나 '정치재판'을 해도, 법은 법이다. '사실'이 갖고 있는 힘이 있기 때문에 무리한 수사나 조작은 한계가 있다. 그 사건이 그랬다. 이길 수 있었다. – 문재인의 <운명> p404


위 내용은 <문재인의 운명> 중 '치욕의 날' 편에 등장한다. 노 전 대통령측은 법리를 가지고 다투는 재판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듯 싶다. '사실'이 갖는 힘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스스로 자기방어를 할'피고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경향신문>이 이 전 중수부장의 주장을 통해 새롭게 밝힌 내용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MB정권의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매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점과 언론보도까지 관리했다는 점이 당시 고위 검찰간부의 입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접근하는 방식에는 대단히 신중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전직 대통령이 연루된 민감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 수준인 30%대 초반을 기록하고 있다. 총리를 바꾸고 비서실장과 청와대 주요 수석비서관을 교체했지만 지지율은 반등하지 않고 있다. 특기할 대목은 박 대통령이 새롭게 임명한 민정수석이다. 이인규 중수부장 당시 직속부하로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던 우병우 당시 중수1과장이 바로 새 민정수석이다. 그가 민정수석에 임명되자마자 이인규가 '그 때 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이는 과연 우연일 따름일까?


이 전 중수부장의 발언이 알려지자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역임한 새정치연합의 박범계 의원이 "우병우 민정수석 취임 직후라는 점과 MB정부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점, 공무상비밀누설 공소시효 5년 경과 뒤 작심발언이라는 점, 문재인 대표의 지지율 고공행진 국면에서 나온 점 등을 종합하면, 다목적 다용도 의도적 발언으로 보여진다"고 경계하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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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병우'가 민정수석 된 직후, 언론에 등장해 '수사비화' 공개한 이인규 이 전 중수부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당시 '수사비화'를 공개한 시점에 주목하게 된다. 2009년 대검 중수 1과장으로 근무하며 이인규 중수부장의 직속부하였던 우병우가 2015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임명된 직후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2009년 5월 1일자 ⓒ 조선일보pdf


정리해 본다. 2009년 당시 이인규의 태도를 잊지 못한 문재인은 2011년 <문재인의 운명>에서 그를 비판했다. 그러자 이 전 중수부장은 즉각 '수사비화'를 꺼내 들고 응수했다. 2010년 국회로부터 고발당하자 '현직 검사가 아니라서 만만한가 보다'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불출석 사유를 '노무현 청문회'가 될 것이라는 반협박성 발언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다. 


그가 박근혜 정부 3년차에 들어선 2015년 2월 한 진보성향 일간지와 인터뷰를 갖고 다시금 '시계'를 꺼내 들고 나섰다. 국정원을 비판한 듯 하지만 당시 MB정부 국정원장은 이미 구속된 원세훈이다. 그가 더 잃을 것이 있을까. 대신 '검찰은 노무현 구속 입장'이었음을 밝히며 당시 수사가 대단히 정당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자신과 박근혜의 실세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은 민감한 수사를 대단히 잘 처리한 사람이 되는 셈이다. 


전직 대통령이 연루된, 피의자 부재에 따라서 수사가 종결된 건이 이런 식으로 언론보도화 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지지율 급락에 개각과 보좌진 개편을 감행한 집권세력은 국민이 원하는 '이명박 파일'이 아닌 '노무현 파일'로 현 위기상황의 반전을 모색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국정원이 당시 검찰수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만 5년이 지난 건에 대한 실정법 처벌이 가능할 지도 의문이다. 이 때문에 새정치연합에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연루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도의적 책임'을 언급했던 것이다. 


<경향신문>의 갑작스러운 이인규 전 중수부장의 '노무현 사건' 관련 인터뷰를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인규는 '2009년 노무현'을 소환하려 하는 것인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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