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맛따라 금융상품 ‘간판 바꿔바꿔’
‘기술금융’으로 이름만 바꾼 ‘녹색금융’
이경화 기자lkh99@ekn.kr 2015.04.14 17:44:09

정권교체기마다 ‘간판 바꿔달기’식의 금융정책이 반복되면서 금융권 안팎에선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매 정권마다 추진됐던 금융정책은 정권이 바뀐 다음 슬그머니 막을 내렸고 그에 따라 명멸하는 금융상품이 속출하면서 임기응변에 그쳤다. 

실제 2009년부터 시작된 녹색산업 금융지원은 2012년 정점을 찍고 난 후 2013년부터 하락세를 보이다 현재는 금융 시장에서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녹색산업은 모험적 성격이 강하고 초기위험과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민간의 자발적인 투자가 활성화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 이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녹색금융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인 2009년 저탄소 녹색성장의 기치 아래 ‘녹색금융’을 부각시켰다.

녹색금융이 출범한 2009년에만 국내 은행권에선 42개의 녹색금융 상품이 쏟아져 나왔고 녹색성장 관련 펀드도 86개가 출시됐다.  

이에 더해 금융회사·금융정책당국 대표들로 구성된 녹색금융협의회까지 만들어졌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 대통령 재임 기간 IBK기업은행·KDB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정책금융공사가 지원한 녹색금융 규모는 2009년 6조2000억원, 2010년 9조원, 2011년 12조원까지 확대됐고 정권말기인 2012년에는 17조7000억원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녹색금융은 정권이 바뀐 2013년 지원 규모가 16조4000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9월 말까지 12조4000억원이 지원되는데 그쳤다.  

현재 녹색금융은 대부분의 은행에서 판매를 중단·통합했고 녹색금융협의회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7월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도입한 ‘기술금융’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기술금융(기술신용대출)이란 기술력은 있으나 담보나 현금 창출 능력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에 기술신용평가기관(TCB)의 평가서를 바탕으로 신용대출을 해주는 금융정책이다. 

일각에선 기술금융의 빠른 양적 성장이 MB정부 때의 녹색금융 대출에서 간판을 바꿔 단 효과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 김기식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새정치민주연합 간사)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실체가 불분명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인프라와 조직이 부족하다보니 녹색금융을 창조경제로 간판만 바꾼 꼼수"라고 비판한 바 있다.  

녹색금융과 기술금융 모두 기업금융의 일종으로 총량을 크게 늘리기 어려운 기업 금융의 특성상 한쪽이 증가하면 다른 한쪽은 감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금융위 관계자는 "녹색산업은 제도적인 측면보다는 산업적인 측면이 강하다"며 "녹색산업과 관련지어 녹색금융의 개념이 명확하지가 않아 수요대비 공급이 제한적인 건 사실이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기술금융은 녹색산업과는 지원하는 목적물이 다르다"면서 "은행 여신 프로세스에 유망기업들의 기술력에 대한 평가를 더욱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부터 기술금융 확대에 올인하고 있는 모양새다. 

금융위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은행 혁신성 평가 방안에선 기존 평가 항목이던 녹색금융 실적을 슬그머니 빼버렸다.  

대신 금융위는 당시 도입된 지 2개월밖에 안 된 기술금융의 은행별 실적을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시중은행의 기술금융대출을 늘리기 위한 사실상의 압박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재촉에 떠밀려 시중은행들의 기술금융 대출이 대폭 늘었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기술금융 대출의 70% 이상이 담보와 보증을 통한 대출인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들은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사실상 기존에 거래하던 우량기업의 담보대출을 기술신용 대출로 바꾸는가 하면 이명박 정부 때 나간 녹색금융이 만기가 되면 기술금융으로 포장만 바꾸기 하는 등 정부압력에 의해 ‘퍼주기식’으로 이뤄졌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8일 "박근혜 정부의 기술금융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금융을 떠올리게 한다"며 "집권 1년차에는 창조금융, 2년차에는 기술금융으로 작명소도 아니고 이름만 갈아타고 있다.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기응변식 금융정책의 문제는 비단 녹색금융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김대중 정부 때의 IT 벤처 육성책, 노무현 정부 때의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 등 5년 정권을 주기로 금융정책과 관련 상품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일이 계속 반복됐다.

기술금융도 녹색금융처럼 정권교체기 즈음 또다시 간판만 바꿔달고 흐지부지되는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이다.  

이경화 기자 lkh99@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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