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한 시위대? 경찰이 한 짓을 봐라
보통 아줌마, 2015년 4월 18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분노하다
15.04.19 16:49 l 최종 업데이트 15.04.19 16:49 l 장향란(az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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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하늘 서울역사박물관 마당에서 올려다본 하늘 ⓒ 장향란

생각없이 지내는 하루였다. 생각없이 하늘을 쳐다봤고, 눈이 부셔서 사람의 몸이라는 것이 세월 흐르면 다 사그라지는 거다, 함부로 쓰지 말자, 괜히 쓴웃음 지었던 그런 오후였다.

4월 18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하늘을 살짝 가리는 제법 오래된 커다란 건물까지 낯익게 바라보다 박물관을 찬찬히 둘러보고 나온 건 오후 다섯 시. 청계천 인근에서 만나기로 한 식구와 통화를 하고 빠른 걸음으로 광화문역쪽으로 향하다 정말 희한한 광경을 봤다.

아, 이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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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로 사거리 끝도 없는 경찰 버스 ⓒ 장향란

이, 이건 뭐지? 어쩐지 낮부터 교통이 막히긴 했다. 그런데 이렇게 종로 저 끝 보이지 않는 곳까지 경찰 버스가 길 양쪽을 꽈악 막아서 아무런 차량 통행도 이루어지지 않는 광경은 처음 봤다. 처음엔 그저, 집회에 대비해 경찰 버스가 정차하고 있는 그런 상황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서울 시내 광화문 네거리에 일반 차량 하나 없이 경찰 버스가 좌우를 막고 서있는 그런 광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거다.

대체 무슨 상황인가? 어쨌든 나는 걸어서 네거리 한 가운데에 섰다. 왼쪽 옆에서 열 댓 명이 외치는 세월호 관련 구호가 들려왔다. "세월호 진상 규명하라." "박근혜 정권 물러가라."

얼뜨기 시민에 불과한 나조차 뭔가 이 가당찮은 차벽과 물샐틈없는 의경들의 굳건한 인의장벽 앞에서 갑자기 막막하고 답답해졌다. 이건 뭐냐구.

조금은 상급자인 것같은 사람한테 물어봤다. 

"이건 대체 뭐죠? 누가 이렇게 시키는 거죠? 이게 뭐하는 건가요?" 

집회 때문이라고 하는 것같았다. 집회? 누가? 어디서? 내 눈에 보이는 건 끝도 없는 경찰버스 뿐인데?

아무튼 나는 교보문고 앞에서 머나먼(!) 동아일보 앞으로 가야만 했다. 버스가 거의 붙을 듯 길을 막아서 사람 하나 들어갈 틈이 없어 이동은 지하도를 이용해야 한단다. 

지하도로 내려갔다. 광화문 역의 지하 교보문고 앞은 참으로 한가하게도 보이더라. 머릿속부터 혼란스러워진 채 5번 출구, 6번 출구. 시청 방향, 덕수궁 방향 표지판을 읽으며 숨을 고르며 5번 시청 방향 출구로 갔다.

텅 빈 광화문 광장... 지하차도까지 막은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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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지하도 애꿎은 의경들 ⓒ 장향란

허, 지하도가 막혔다! 갈 수가 없다. 나는 오늘 아무 생각 없이 길을 나선 시민이었다.

"이건 아니지. 여기가 대한민국이야?" 

다들 집회 때는 애꿎은 의경들이 불쌍하다고 한탄한다. 나는 아들같은 그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었다.

"생각들을 좀 하자고. 이게 맞아? 이게 민주공화국이야? 이건 아니지."

상급자 시늉을 내고 있는 이에게 또 물었다.

"지금이 1980년인가요? 이건 아니죠. 이런 꼴은 처음 보네요.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줘야죠. 이런 건 제대로 된 나라가 아니야!"

이상한 아줌마로 비춰졌을까. 나는 화가 났고 내 화를 표출했다. 그리고는 또다른, 6번 출구로 갔다. 거기도 똑같았다. 사방은 항의하는 사람들 투성이다. 외국인들이며, 주변 사무실에서 근무한다는 사람들, 아이를 길 저 편에서 만나야 한다는 젊은 엄마 등등.

대체 그 지하 통로를 왜 막아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는데, 그건 그 길을 막고 있는 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긴 항의 끝에 겨우 한 줄 틔워줘 다시 도로로 나왔다. 이쪽저쪽이 막힌 채 광장은 비어 있다. 그 빈 광장에서 마구잡이 횡단을 하며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잃었다.

지금이 전쟁상황인가? 경찰은 뭐가 두려운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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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로 네거리 비어있는 광장 ⓒ 장향란

지그재그로 돌아다니다 저 조선일보 앞에 있다는 가족과 통화를 하고 그 쪽으로 향했다. 조선일보 코리아나 건물 모퉁이에서 또 막혔다. 모퉁이 건물과 경찰 버스는 또다시 사람 반쪽도 못 지나가게 붙어 있는 상태였다. 거기도 갈 수 없단다. 서울 한가운데에서 삼팔선도 아니고 휴전선도 아닌, 경찰버스와 의경에 가로막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됐다. 

자, 대체 나는 어떻게 해야 내 식구를 만날 수 있나요? 덕수궁 뒤로 멀리 돌아서 가셔야 한다고 친절히 일러준다. 감사한 경찰이다! 코리아나 호텔에서 오른쪽으로 멀리 가는 동안 길목, 골목까지도 죄다 경찰버스와 의경들이 꽉 막고 있다.

도대체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인가?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내 눈에 시위대라고는 보이지도 않는데 일반인들의 도로 출입을 지상이고 지하고 죄다 막고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향을 잃게 만드는 4월의 어느 토요일 서울 한복판.

어느 길로 돌았는지 아무튼 덕수궁을 뱅 돌아 겨우 시청역까지 갔다. 그러는 동안 과격한 시위대를 보았느냐고? 노란 리본을 단 일행 열 댓 명. 나이든 어른과 젊은 여자아이들이며 다양한 사람이 섞인 한 무리. 그리고 처음에 봤던 광화문 광장의 노란 만장 아래의 열댓 명. 그게 전부다.

대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찰 버스와 의경, 경찰대를 동원해서 그들(이,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이 막으려고 했던 시위대는 다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내가 오늘 허깨비들 속에 있었나? 울분과 분노에라도 나는 이 저녁 그 집회에 섞여야 했지만, 하찮은 가정사에 묻혀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길게도 아닌, 단지 매일의 작은 평화만을 바라는 평범한 시민의 일상을 깨고 분노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리적으로 사방이 막힌 철벽 앞에서 마치 정신나간 아줌마처럼 분노해서 소리질러야 했다.

"지금이 무슨 계엄인가요?" 
"1980년이냐구요?!" 
"이건 대체 누가 시키는 거지?"
"이게 대체 누구를 위한 짓이냐고?"

대체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 광화문에서 실제로 본 것은 허깨비같은 공권력. 허깨비같으면서 부정적인 상황을 조장하는 그런 공권력, 그게 전부였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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