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3139


왜 언론은 ‘순수한 집회’를 강조할까?
[비평] 좌파시민단체와 평범한 시민들 선 긋기… “보수언론의 프레임 전략, 연대 방식도 진화해야”
정민경 기자 mink@mediatoday.co.kr  2016년 11월 08일 화요일


“(촛불집회에) 각종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 시민까지 가세할 가능성이 크다.”(조선일보 10월29일자 1면 기사)
“좌파 시민단체보다 일반 시민의 참여가 더 많은 양상”(조선일보 11월5일 사설)
“아기를 업고 나온 부모부터 (…)참가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시민입니다.” (SBS 5일 8뉴스)
“기존 집회와 달리 단체들과 무관한 시민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촛불집회는 현재 민심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MBN 5일 뉴스8)

신문·지상파·종합편성채널은 지난달 29일과 5일 두 차례 열린 박근혜 대통령 사퇴 촉구 집회를 주요 소식으로 전했다. 일부 보도는 이번 집회가 '좌파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시위가 아니며 '평범한 시민'의 참여가 더 많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의 사설 등에서 보여지듯 언론은 ‘평범한 시민’의 반대항에 ‘좌파 시민단체’를 놓았다. 


좌파 시민단체의 주도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참여를 강조한 언론보도. 

이는 보수언론들이 써왔던 ‘외부세력 프레임’의 연장선상이다. 이번 시위는 좌파 시민단체가 아니라 순수한 시민이 주도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좌파 시민단체, 이른바 '외부세력’을 배제하려는 의도다. 

외부세력 프레임은 2011년 강정마을 해군기지, 2013년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 2014년 세월호 집회, 2016년 성주 사드 반대 시위, 이화여대 시위까지 굵직한 사회현안에 모두 끼어들었다. 

최근 기사로는 '시위 문화 바꾼 이대생, 외부 세력 내쫓고 민주주의 맞아들이다'(조선일보 11월5일)가 대표적이다. 이 기사는 "외부 세력 모두 나가라, 세월호·위안부 팔찌도 정치적 시비 부를까 배제했다"라며 "이로 인해 학내 민주주의로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썼다. 외부세력을 배제함으로서 집회는 순수해졌고 이 때문에 이들이 원하는 바에 집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5일 조선일보 B6면.

외부세력이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집회에 접근한다는 것도 전형적 레퍼토리다. 8일 조선일보 '웬 혁명? 촛불집회서 외면당한 좌파들'이라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이 신문은 "촛불집회를 '체제 전복'과 같은 정치적 선동의 무대로 활용하려는 일부 좌파 단체가 일반 시민들에게 외면받고 있다"며 노동자연대, 사회진보연대, 환수복지당을 열거했다. 

이렇게 평범한 시민과 사회운동을 분리하는 프레임은 사회참여에서 진보진영의 참여를 배제시키고, 사회를 우경화하는 결과를 나을 수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박근혜 정권은 '외부세력론'을 이용, 배제과 억압의 전략을 통해 정치적으로 다양한 환경이 조성될 여지를 차단함으로써 입헌적 민주주의를 침탈하고 있다"라며 "하나를 배제함으로써 다른 분파를 견제하고, 그 결과 진보진영 전체의 활동공간을 최소한으로 위축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 교수는 "정부는 국가와 안보라는 명분하에 현 체제에 대한 그 어떠한 도전도 불법화·무력화시킨다"며 "노동자 권리를 위한 주장은 물론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안전사회의 요구조차도 '좌파'라는 낙인으로 배척하는 현상은 이를 대변한다"고 비판했다. 



▲ 8일 조선일보 '웬 혁명?… 촛불집회서 외면당한 좌파들'의 삽화.


한 교수의 지적처럼 외부세력 프레임은 사건 당사자들이 아닌 이들의 사회참여를 막는데 용이하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이 지난 8월 발표한 '조중동의 외부세력 프레임, 이젠 지루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외부세력 프레임을 강조하는 보도들은 '외부세력은 폭력을 조장하고 문제해결을 방해한다', '외부세력에 의해 집회가 정치 투쟁으로 변질됐다'는 주장을 공통적으로 한다고 분석했다.

민언련은 보고서에서 "외부세력 프레임을 강조하는 보도는 외부세력이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 어감을 통해 연대를 순수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다"며 "이는 연대의 가치를 훼손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보고서는 "외부세력 프레임은 연대활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며 투쟁의 주체들조차 ‘정치적으로 순수해야 하며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자기검열에 시달리게 만든다"며 "연대가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시위의 동력은 저하되고 목소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7일 미디어오늘에 "약자들을 지원하는 사회단체나 정치세력의 뒷받침 없이 모두 개인의 순수성만 모은다면 거대언론·거대 기업·거대 관료와 같이 이미 단단하게 조직된 세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라며 "보수언론은 자신들처럼 힘을 가진 조직된 세력이 반대쪽에서 만들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사진출처: pixabay

한편 '외부세력 프레임'을 사용하는 언론에 비판이 필요한 동시에 기존 시위 문화에 반성 역시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지난 5일 집회 이후에 페이스북 등에는 다양한 시위문화를 만들자는 제안이 쏟아졌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의 연령이 낮아진 점 등을 고려해 민중가요와 함께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자는 제안, 청와대 행진을 하지 말자는 제안, 유명인사들의 발언을 줄이고 일찍부터 행진을 하자는 제안, 중앙무대 없이 여러 지점에서 모여 한 곳으로 모이는 시위를 하자는 제안들이 나왔다. 이는 1980~1990년대의 시위를 경험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 문화적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성주의적 시위문화나 청소년 시위자들을 무시하는 ‘꼰대적’ 시위문화가 사라져야한다는 문제도 꾸준히 제기된다. 보수언론 등이 강조하는 ‘외부세력 프레임’, ‘순수한 집회’ 프레임에는 “더 많은 연대”를 외치되, 시위를 진행하는 방식에 대해 더 다양한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약자들에 대한 혐오에는 더 민감해져야 한다는 것.

박상훈 대표는 "사회운동이 이전과 똑같이 하려고 하는 것에 비판이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며 "본인들의 의도를 위해서 시민들의 의견들을 동원하려 하기 보다는 본인들의 생각을 시민의 의견 속에 관철하는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대표는 "사회운동을 하는 주체들이 시민의 다양한 의견 속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도록 다원적인 접근을 해야 외부세력 프레임의 효과를 통제할 수 있다"라며 "보수언론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통해 집회 소식을 1면에 보도하는 등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진화했다면, 그에 맞서는 이들도 진화해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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