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69167.html

‘김정은 붕괴’ 대신 ‘박근혜 붕괴’의 동북아
등록 :2016-11-07 16:41 수정 :2016-11-08 09:53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클린턴이 박근혜를 만날 때를 상상해보길 바란다. 박근혜와 그 외교안보팀이 그대로 남는 것은 모골이 송연하다. 내년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박근혜의 외교안보팀을 먼저 갈아치워야 한다.

“현 정권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박근혜와 청와대, 내각은 총사퇴하라.” 27일자 북한 <노동신문> 주장이다. 박 대통령 스캔들에 대한 북한 언론의 보도와 주장은 한국 언론과 별 차이가 없다. 과거와 비교하면 북한 언론이 점잖을 정도다. 북한이 조롱하는 박근혜 정부 붕괴는 듣기 괴롭다.

‘김정은 북한 정권 붕괴론’을 밀어붙이던 박근혜 정부가 붕괴되고 있다. 아니, 붕괴됐다. 외교·안보적으로 그렇다.

조시 어니스트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박근혜 스캔들과 관련한 양국 관계에 대해 “강력한 동맹의 특징 중 하나는 다른 사람, 다른 인물들이 그 나라를 이끌 때도 영속적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미 동맹을 강조한 원론적 발언이라고 하나, 원론의 초점이 중요하다.

이럴 경우 보통 ‘한국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 안정을 찾기 바란다’는 정도가 모범답안이다. 외교 수사는 표현의 이면을 봐야 한다. ‘두 정상이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는 말은 ‘두 정상 사이에 이견이 있다’는 의미다. ‘상당한 진전을 보았다’는 말은 ‘상당 부분에서 진전이 없었다’는 뜻이다.

어니스트는 “오바마 대통령이 그것을(한국 상황을) 공개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고려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박 정부의 운명에 관심 없다’라는 뜻이다. 그는 오바마가 “아시아에서 돌아온 이후 박 대통령과 얘기한 적은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짙은 회의다.

박근혜 정부 4년의 미·중·일 외교는 ‘줄 건 다 주고 뺨 맞은’ 행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위안부 문제로 정상회담도 거부하며 일본과 전례 없는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다가, 지난해 말 갑자기 졸속 합의를 한 뒤 일본에 ‘합의를 이행하라’는 추궁을 당하고 있다.

중국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의 대미 일변도 외교를 교정하는 듯하다가 북핵 문제와 사드 배치를 놓고 적대국 수준의 험한 말을 서로 주고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참여하고, 전승절 열병식 행사에 참여한 뒤 한 달 만에 미국을 찾아간 지난해 10월부터는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책임을 추궁하고는 사드 배치를 결정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박 정부 출범 1년 반 만에 ‘박 정부 외교안보팀의 수준이 낮다’는 내용의 정보지가 돌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박 정부가 일본에 위안부 문제를 놓고 무릎 꿇고, 대중 강경입장을 천명한 것은 터져 나오는 미국의 불만 앞에 허둥댄 것이다.

당선이 유력시되는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대외정책에서 매파 현실주의자다. 그에 비하면 오바마는 비둘기파 이상주의자다. 현실주의자는 가치보다는 국익을 우선하며 압박과 대화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통상은 군사력을 포함한 압박을 앞세운다. 그는 천안함 사건 때 미국 항공모함을 중국의 입장에서는 내해인 황해에 파견하자고 주장하는 등 군사력을 외교 수단으로 삼는 데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현재 미·중 갈등의 시작인 ‘아시아 회귀정책’은 오바마가 입안했으나, 그 집행은 국무장관 클린턴이 했다. 아시아 회귀정책은 지금 위기다. 미국에 그 중심 동맹인 필리핀이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이후 친중으로 급속히 돌아서고 있다. 일본은 북방 4개 섬 반환을 고리로 러시아와 관계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남중국해 등 아시아 전역에서 중국과의 군사적 알력은 커졌지만, 이에 비해 미국의 외교적 이익은 늘어난 것이 없다.

클린턴은 ‘올코트 프레싱’으로 중국 관계를 다룰 것이다. 이것이 반드시 대중 관계 악화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모든 자원을 동원한 관계 재조정 과정을 추구할 것이다. 한국은 그 소용돌이의 옆에 있다. 박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에게 맡기고 외교·안보는 그대로 담당하자고 한다. 그는 오바마와의 회견에서 질문을 못 알아듣고 “아, 저, 거기, 그러니까…”로 일관했다. 오바마에게 ‘불쌍한 대통령’이라고 농담성 놀림을 받았다. 클린턴이나 트럼프가 박근혜를 만날 때를 상상해보길 바란다.

붕괴한다던 김정은 정권이 박근혜 정권 붕괴를 조롱하는 것을 보는 국민은 ‘이러자고 국민이 됐나 하는 자괴감도 들고 괴롭다.’ 그렇지만, 박근혜와 그 외교안보팀이 그대로 남는 것은 모골이 송연하다. 내년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박근혜의 외교안보팀을 먼저 갈아치워야 한다.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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