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취임 직후 대북전략국 해체…·‘휴민트’ 붕괴 불렀다
[한겨레] 이태희 기자    이순혁 기자  등록 : 20111221 19:12
   
북 전문요원 200명 국내 파트로…‘화이트’ 50명도 소환
원 원장 “우린 기술적 정보 분석” 인적정보망 실종 인정
야당 “MB, 북한보단 국내정치에 관심 쏠린탓” 지적도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북한 발표 이후에야 알게 된 국가정보원의 대북 정보 수집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국가정보원 전경. 청와대사진기자단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2009년 2월 취임 직후 3차장 산하의 ‘대북전략국’을 없애는 등 대북 교류 및 정보 기능을 크게 줄인 사실이 확인됐다. 북한 정보 수집에 핵심적인 구실을 했던 인적정보 수집망(휴민트·Human Intelligence)이 무력해진 주요 원인 중의 하나로 꼽힌다.

국정원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21일 “원세훈 원장이 취임 직후에 3차장 산하의 대북전략파트를 해체했다”며 “남북회담, 남북 비공개접촉, 교류협력 하던 파트였는데 이를 없앤 것”이라고 전했다. “대북전략파트에는 오랜 시간 북한 문제를 다뤄온 요원 200여명이 근무중이었는데, 실무자들은 대부분 국내 파트로 전출됐고 고위급들은 대부분 옷을 벗었다”고 전했다. 원 원장은 대신 감청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 정보와 대북 공작·심리전 분야를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17대 국회에서 정보위를 맡았던 한 야당 인사는 “엠비(MB) 정부 출범 직후 국정원에서는 해외에 근무중이던 ‘화이트’(상대국에 등록한 국정원 소속 외교관) 50여명을 일괄적으로 소환해 국내 근무로 돌린 바 있다”며 “이들이 현지에서 대북 업무에 종사하던 이들인데, 이런 과정을 거쳐 대북 정보가 크게 약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국회에서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모든 정보기관의 정보는 90%가 수요자의 의사에 따르는 법’이라고 말한 바 있다”며 “당시 김만복 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사에 따른 정보를 생산했다면, 지금의 정보체계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중에 맞춰 재편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관심이 북한보다는 국내 정치에 쏠리다 보니, 국정원은 대북 정보 수집보다 국내 정보 수집에 무게를 더 두게 됐다는 것이다. 이 인사는 “2008년부터 국정원과 기무사부터 검찰과 경찰까지 ‘과학정보 시대를 열겠다’며 엄청난 예산을 들여 인터넷 패킷 감청, 이메일 감청 등 감청장비를 대거 구매했다”며 “결국 이런 투자에도 불구하고 대북정보망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은 이런 감청장비들이 국내 일에 쓰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세훈 원장도 국회에서 북한 내부의 인적정보 수집망이 무너진 사실을 인정했다. 원 원장은 지난 20일 국회 정보위에서 “우리 정보는 북한 권부에서 흘러나오는 정보가 아니라, 기술적 정보를 분석해서 파악하는 정보”라고 말한 것으로 복수의 정보위 소속 의원들이 전했다. 원 원장의 이 발언에 대해 의원들은 “기술적 정보에만 의존한다면 ‘김정일 칫솔질’ 등의 정보는 어떻게 나올 수 있느냐. 권부 주변에서 나오지 않은 정보라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며 따져 물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8년 뇌졸중으로 추정되는 질환으로 쓰러진 뒤 정부 쪽을 출처로 해서 ‘왼손으로 칫솔질이 가능할 정도로 회복됐다’는 식의 보도가 줄을 이은 바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이런 인적정보망의 붕괴가 ‘김대중·노무현 정부 탓’이라고 주장했다. 윤상현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한국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난 노무현, 김대중 정부 때 이게(휴민트) 완전히 붕괴됐다”며 “그다음에는 이게 제대로 복원이 안 됐다”고 말했다. 최재성 민주당 간사는 이에 대해 “북한과 같은 폐쇄사회에서는 상주하면서 정보를 모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북한을 드나들기 쉬워야 인적정보가 모일 수 있다”며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정부 간 대화뿐만 아니라 민간대화까지 모두 끊기는 바람에 인적정보망이 무너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정원 수뇌부에 정보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서울시청 공무원 출신인 원 원장은 정보에는 문외한인 인물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6월 리비아 주재 대사관 직원 신분이었던 국정원 요원의 신분노출, 올해 2월 국정원 요원들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노출 파동 등을 거치며 “정보기관의 기본이 무너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이 나온다.

이태희 이순혁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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