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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순사에서 빨갱이 잡던 경찰로, 최태민의 과거
[리뷰] SBS '그것이 알고 싶다'... 검은 유령과 혼군, 개인사에 집중해 시스템을 놓쳤다
장슬기 기자 wit@mediatoday.co.kr 2016년 11월 27일 일요일
       
박정희를 쏜 김재규의 발언이 재조명되고 있다. 김재규를 대리했던 변호인은 “김재규 면회를 갔더니 최태민 목사 얘기를 꺼냈다”며 “박정희를 쏜 이유도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면 교통사고라도 내서 처치해야 할 놈이라고 분개했다”고 전했다. 한국 사회는 1979년 대통령 암살사건 충격이 가린 김재규의 메시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역사는 망각을 새로운 기억으로 바꾸는 것이다. 최태민 일가와 박근혜 대통령의 40여년을 되짚는 작업은 한국사회 모두에게 필요하다. 미화되고 잊힌 둘의 관계를 기억해 다시는 이런 비극을 맞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지난 26일 방영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악의 연대기, 최태민 일가는 무엇을 꿈꿨나?)는 SBS가 쓴 반성문이다.


▲ SBS 그것이알고싶다 26일자 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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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이날 방송 시청률은 13.9%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방송분(19%)에 비해 5.1%P 하락한 수치지만 두 자릿수 시청률을 유지하며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다. 최태민 일가에 대한 얘기는 이미 많이 나와서 특별할 건 없지만 증언들을 채집해 생생하게 구성했다.

최태민은 “검은 유령 같았던” 사람이었다. 1979년 중앙정보부에서 그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7개의 이름을 사용하고 6명의 부인이 있었으며 각종 비리와 범죄사실이 있다. 일제강점기 황해도 경찰서에서 순사로 활동했던 기록이 있다. 친일혐의자들은 애국시민이 되기 위해 개명을 많이 했다. 최태민은 해방 후에도 3년간 경찰로 활동했다.

최태민은 청산하지 못한 일제의 잔재이기도 하다. 극우단체 서북청년단 출신 채병률 구국봉사단 최태민 총재 특별보좌관은 “(최태민은) 경찰에서 공산당 잡는 사찰계(형사)였다”며 “우리에게 ‘○○이가 아주 악질 빨갱이인데 손 좀 봐야겠다’ 싶으면 우리가 두들겨 패는 것”이라고 말했다. 채씨에 따르면 최태민은 유능한 형사였다.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진은 최태민이 신흥종교 이단문제 전문가인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했다. 최태민은 탁 소장에게 ‘구국선교단이 순수한 반공단체이며 다른 목사들과 함께 구국선교단을 이끌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사이비교주로서 최태민에 대해 함구하라는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 사진=SBS 제공

최태민이 청와대에 접촉한 기록은 육영수 여사 생전에도 발견된다. 1973년 박근혜 ‘영애’ 공식 비공식 행사에 최태민이 등장하는데 경호인 증언에 따르면 최면술 시범을 보여주기 위해 최태민이 섭외됐다. 이 인연으로 육영수 사망(1974년 8월15일) 이후 박근혜와 구국선교단을 이끌며 기업들에게 돈을 걷었다.

최태민 입장에서는 “샤머니즘의 색깔을 지우고 기독교 색채를 가져가는 역할”을 할 수 있었고, 박정희 정권 입장에서는 “당시 기독교계 민주화 운동이 거셌는데 ‘그렇지 않다, 기독교계에서도 박정희와 유신을 지지한다’”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게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설명이다. 부당한 권력에겐 이를 메워줄 효과적인 사기꾼이 필요했다.

육영재단, 영남대 등은 박정희 정권이 부당하게 빼앗은 재산이다. 이는 박근혜에게 승계됐고, 최태민 일가가 실세로 군림했다. 육영재단 직원은 “(최태민이) ‘여성 최초로 (박근혜) 이사장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여러분은 전부 청와대로 들어갈 사람이니까 이사장님 조금 잘못이 있더라도 수긍하고 넘어가면 좋은 일이 된다”고 전했다.

최태민의 목적은 육영재단과 영남대를 주무른 것처럼 박근혜를 대통령 만들어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 아들 최아무개씨는 “아버지 방안에는 철문으로 된 금고가 있었다”며 “‘순실이는 유치원도 사주고 하는데’하면 아버지가 ‘이거 내 거 아니야’라고 했다”고 전했다.

최태민 재산의 실제 주인은 누구일까? 최태민 의붓아들 조순제 녹취록에 따르면 박정희 사망이후 ‘뭉텅이 돈’이 들어왔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사람들은 박정희, 육영수 재산이 0원이라고 생각한다”며 “추론이 사실이라면 (최태민에게) 명의신탁 된 거, 차명으로”라고 말했다. 부정한 권력이 모은 검은 돈은 무능한 권력을 세우는데 사용됐을지도 모른다.

최태민 일가와 현 정권의 나쁜 행태들에 대해 국민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다만 방송에서는 부패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 이번 방송은 그 나쁜 사람들이 사라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담지 못했다.

방송에서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민주화 이후 사회작동 원리에 맞지 않는 박정희식 통치 방식을 다시 반복했다”고 말했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대통령 내려오라는 것은 새 나라 만들자는 것”이라며 “나라가 굴러가는 시스템을 새롭게 하고 가치관을 새롭게 세워야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SBS 그것이알고싶다 26일 방송 화면 갈무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한국사회 구조가 얼마만큼 취약한지, 얼마나 ‘좋은 지도자’에 기댈 수밖에 없는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지 드러낸 사건이다. 김 교수의 표현처럼 대통령이 “최선을 다해 사익을 추구”한다면? 제2의 박근혜, 제2의 최순실은 다시 등장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 방영된 26일 시민들은 전국에서 190만 촛불을 켰다. 이미 JTBC가 최순실 태블릿 PC를 공개한지 한 달이 넘었다.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진은 최태민을 ‘검은 유령’으로 표현했고, 심리학자 황상민의 입을 통해 박근혜를 ‘혼군’으로 인식한 시민들의 생각을 전했다. 이런 메시지로는 부족하다.

물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 정경유착의 문제점을 어떻게 끊어낼 것인지, 후보자 검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 권력구조의 문제는 없는지, 최고지도자의 만행은 통제할 수 있는지, 어떻게 민심이 권력자를 겨눌 수 있는지… 그것이 알고싶다 정도에선 이런 질문을 녹이길 기대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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