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원전확대 후쿠시마 잊었나
[한겨레] 류이근 기자 등록 : 20111223 19:17 | 수정 : 20111223 22:20
[뉴스분석] 영덕·삼척 후보지 선정
일 원전사고 뒤 부지선정 처음
탈핵 흐름 거스른채 원전 강행
“일본 원전 사고가 생겼다고 (원전을) 안 되겠구나 하는 건 후퇴하는 것이다.”(이명박 대통령, 3월21일)
“핵발전소의 설계가 자연의 힘 앞에서는 충분치 않다. 안전이야말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3월15일)
지난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대하는 한국과 독일 두 정상의 엇갈린 태도는 이후 두 나라의 상반된 원전 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다. 독일은 노후된 원전 8기를 가동중지했고, 2022년까지 9기의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다. 이와 달리 한동안 숨을 고르던 우리 정부는 23일 신규 원전 후보지로 경북 영덕과 강원도 삼척을 선정했다. 앞서 지난 2일에는 신규 원전인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에 대한 운영 허가를 내준 데 이어 신울진 1, 2호기의 건설을 허가했다. 지난달에는 ‘원전 기술국가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세계 원전시장을 선도해 2030년 미국·프랑스와 함께 세계 3대 원자력 강국이 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멈칫했던 원전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다시 가동한 것이다.
영덕과 삼척을 신규 원전 후보지로 선정한 것은 1982년 전두환 정권 이후 29년 만의 일이다. 이미 가동을 시작했거나 지어지고 있는 원전들은 박정희 정권 때 터가 지정됐던 것들이다. 각국이 탈원전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원전 확대 정책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스위스·이탈리아·벨기에·타이 등은 기존 원전을 폐쇄하거나, 새로 지으려던 계획을 아예 백지화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국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을 짓겠다고 새 부지를 선정한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삼척과 영덕에 원자로 8기가 들어서게 되면, 우리나라의 원전은 현재 가동중인 21기를 비롯해 건설중(7기), 건설계획(6기)에 있는 것까지 모두 42기로 지금의 갑절로 늘어난다. 전체 발전량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도 현재 31%에서 2030년에는 59%로 훨씬 커진다. 안전에 대한 우려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30여년 동안 원전 강국인 미국·일본·러시아 3국에서 대형 원전 사고가 일어난 것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정부는 이에 대해 “일본과 달리 경수로 방식의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고리 3호기, 울진 1호기가 가동중 불시에 정지되는 등 사고가 잇따르면서 불안감은 한층 커지고 있다.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통령 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안전 요건을 좀더 살피겠다는 취지일 뿐 원전 정책 자체를 재검토할 의사는 전혀 갖고 있지 않다. 후보지로 선정된 삼척 등지에서 일고 있는 주민 반대도 걱정하지 않는 태도다. 진상현 경북대 교수(행정학)는 “정부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정책 비판에 대해 무대응이나 밀어붙이기 전략을 계속 펴고 있다”며 “(세계 추세와 달리) 나 홀로 원자력 의존 정책으로 가겠다는 행태”라고 말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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